편함이 아닌 바름이 정답이다.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3장누가복음13장 24절)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의 일입니다. 넓고 넓은 미개척지가 널려있고 금광이 발견되어 부자가 될 꿈을 이룰 기회가 있는 서부를 향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그런 대열에 동참하게 된 한 무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들 사이에는 의견 대립이 발생했습니다. “아무리 서둘러 가야 한다고 해도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안식을 취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에요. 한가한 소리 말아요.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다 남들이 다 좋은 것 차지하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그들은 오랜 시간 논쟁을 벌였지만 의견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두 패로 나뉘어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패는 주일성수를 하고 안식을 취하면서 가기로 하고 또 한패는 쉬지 않고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기약한 채.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일을 지키며 하루를 안식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패보다 목적지에 늦게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좀 늦게 도착하면 어때?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지”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들은 느긋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다른 패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일성수를 한 무리 중에는 죽은 사람이 없었고 크게 아프거나 다친 사람도 없었는데 서둘러 간 무리 중에는 죽은 사람도 다치거나 아픈 사람도 여럿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 사람들이 승리한 셈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로마제국이 왜 망했을까요? 게르만족의 이동 때문이라고도 하고 기독교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비록 1도 영향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닙니다. 게르만족의 이동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도 아니고 그들은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에도 조금씩 로마제국의 땅에 들어오고 있었으니 멸망의 직접적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313년 콘스탄티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때 로마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가 멸망의 중요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그야말로 반기독교주의자들이 억지로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죠.
그렇다면 로마제국 멸망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명언을 아시죠? 그렇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8세기에 건국된 이래 적어도 500년 이상의 세월을 거쳐 제국이 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제국과 비교해도 긴 시간에 걸쳐 세워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있지만. 1453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면서 비로소 사라진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제국은 명맥을 이어갔으니 확실한 멸망은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의 문을 닫은 1806년이라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제국이라 할 수 있겠지요?
로마제국의 멸망 내지 쇠퇴도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편안한 길을 가게 된 것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는 원래 로마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처리해 온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로마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게르만족을 비롯한 용병에게 넘기고 세금을 회피하는 식으로 거부하게 되면서 로마는 더 이상 과거처럼 활기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제국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바른 길이 아니라 편안한 길을 걷게 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부로 떠난 개척단의 무리들 중에도 바른 길을 간 무리는 먼저 그것도 건강하게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렇지 않고 편한 길을 간 무리는 늦게 그것도 사망자와 부상자 환자를 남긴 채 도착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이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진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긴장감이 없는 조직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로마시민들은 과거 제국을 쌓아 올린 기상도 패기도 성실함도 잃고 말았기에 제국을 유지하여 나갈 힘이 없어졌으니 게르만의 침략에 대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전성기의 로마는 게르만족에게 빈틈을 주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내부의 적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로마제국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증명합니다. ‘넓고 편안한 길’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정체되지 않고 변화를 거듭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영원한 제국’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로마제국이나 바벨론 제국과 같은 제국의 멸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이 맞는 해석인지 모르나 그것은 역사적으로 엄연한 팩트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역사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게 일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편안한 길을 가시지도 않으신 채 우주만물을 움직이시고 계십니다. 그분에게는 천년이 하루 같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로마제국을 비롯해 수많은 제국이 나타났다 사라진 시간 동안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는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권력도 돈도 명예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것을 따라다니는 것은 당장은 편안한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영원한 것을 잃는다면 그 결과는 불행할 것입니다. 오늘의 필자는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성수한 개척단의 무리처럼 그것이 진정한 평안과 기쁨 행복을 얻는 길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링컨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내게 나무를 베기 위해 8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 날을 갈기 위해 7시간을 쓸 것입니다” 언 듯 이해가 안 됩니다. 8시간 중에 7시간이면 대부분이 아닙니까? ‘뭐야? 시간이 아깝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머지 한 시간을 완벽하게 하여 결국은 목적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주일성수한 서부 개척단의 무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이 진정 가야할 길일까요? 바로 바른 길입니다. 편안한 길은 넓고 좋아 보여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만 그것이 자칫 멸망의 길임을 로마제국을 비롯한 많은 제국이나 조직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축복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너희가 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라고” 하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고난 없이 얻어지는 축복이 얼마나 위험한 것임은 축복을 경험하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축복의 길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가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주님은 하늘의 창고를 열어 우리에게 한없이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인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얼른 서부에 가서 농사도 짓고 황금도 얻고 싶은 사람에게 주일성수와 안식은 어리석게 보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진정한 ‘편안한 길’이 되고 말았음을 상기해 주십시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공연히 나온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같습니다. 다만 그 진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이죠. 우리는 그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주신 바른 길=좁은 길을 걸으심으로써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십시오. 넓고 편안한 길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그런 현명한 선택을 통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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