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돼라‘순종할 기회’

닥터 양 2021. 11. 24. 07:28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돼라순종할 기회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62)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은 그럴 듯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특히 대표기도시간이 되면 너무나도 거창하게 자신의 신앙을 펼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애쓰게 마련이지요. 마치 신앙의 거인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에는 은혜와 사랑 거룩이 넘쳐흘러 세상으로 쏟아져 나가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어떨지요?

 ‘책읽는 사자의 신앙의 참견’(책 읽는’( 사자, 규장,2020)에는 신앙생활의 실천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참으로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담론적인 수준이 아니라 삶의 여러 가지 면 취업, 연애와 결혼 등등-에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 실천을 자세하고 논하고 있기에 특히 청년들에게는 신앙생활의 지침서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물론 신앙의 연조도 제법 있고 나이도 어느 정도 먹은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은 자신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과연 신앙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입니다. 신앙은 거창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으로 끝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과제라고 필자는 주장합니다. (물론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고 내가 요약한 말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해서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삶 가운데에서 실천되어야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을까요?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실제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실천하기 위해 영적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불신 결혼이 왜 죄인지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에 불신결혼이 죄라고 적혀있는지 궁금합니다. 성경 꽤나 읽은 사람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제 주변에는 불신결혼을불신 결혼을 통해 한 영혼을 구원받게 하고 그로 인해 크리스천 가정이 태어나는 기적이 제법 있기 때문에 불신 결혼을 죄라고 여기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사도바울이 전도를 위해 자신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행동했다는 고백을 하지요? 아울러 믿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나와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믿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교제하고 있다면 불신자의 전도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예배가 끝날 무렵 부르는 파송의 노래에는 가서 제자 삼으라라는 가사가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신자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닌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당장 믿음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이 원칙은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 없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신앙을 감추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일단 그렇게 해서 결혼을 하고 전도하면 된다”라고” 합니다. 일종의 전술이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는 그 전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까요? 아닙니다. 결국 그는 불신자로 전락해 하나님의 연단을 거쳐 겨우 신앙을 회복하고 아내도 크리스천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만져주지 시 않았다면 영원히 불신자로 살며 결국 둘은 물론 자녀들까지 지옥에 가야 할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취업에 대하여도 매우 유익한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고민할 것 없다.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라.’ 이것의 필자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넘어갈 생각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는 직업이라면 선택 자체를 보류하거나 포기하라고 합니다. 설령 모르고 들어갔는데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결단을 하라고 촉구합니다. 물론 기도로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키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길도 있지만 일부러 그런 삶을 선택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입니다. 유혹은 맞서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한다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적 자세라는 말은 공염불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유혹은 누구에게나 뿌리치기 어려우니 애당초부터 맞닥뜨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뻔한 진리를 외면하는 것은 그 자신이 믿음보다 세상의 유혹에 더 마음이 가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지적합니다. 거부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신앙이 그의 그녀의 삶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한마디로 당신의 신앙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죠. 진실은 그것이 시험당할 때 드러하는 것이죠. 세상의 유혹이 믿음과 배치될 때 단호하게 거부하고 뿌리칠 수 있으려면 믿음 자체가 확고하게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필자는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도 주를 위해라는 찬양과 신앙고백은 그러나 순교가 아니라 삶 속에서 그 신앙이 제대로 실천할 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기독교가 공인되어 순교라는 극단적인 믿음의 실천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난 너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상대의 허물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면 그가 그녀가 과연 진실한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됩니다. 삶에서 작은 문제에 대하여 신앙적 선택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순종할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야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일날 잘 먹으려고 굶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죠. 너무 굶으면 막상 생일에 제대로 못 먹습니다. 위가 쪼그라들어서.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 때 효도할 거야라고 하며 미루다가는 부모님의 초상을 치르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의 기회를 저버리는 것 자체가 효도할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선한 일은 서둘러 하라고 성경이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일 내일 하다가 그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때가 악하니 시간을 아껴라”고도합니다.고도 합니다. "오늘 할 선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해야 할까요?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작품은 작은 조각들이 모여 완성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순교니 뭐니 하는 거창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 삶 속에서의 작은 선택 행동 말이 어우러져 실천되고 완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작은 실천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 마침내 순교를 불사하는 큰 믿음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로마제국만은 아닙니다. 위대한 업적도 사소한 것에서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순종의 기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위대한 신앙을 완성시키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