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죄의 근원을 잘라야 살 수 있습니다.

닥터 양 2022. 4. 5. 10:56

죄의 근원을 잘라야 살 수 있습니다.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사무엘 하 2022)

 

  우리는 팔다리를 자르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린다는 말을 듣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살벌한 말은 그리 환영받지 않기에 잘 안 쓰지만 과거에는 비교적 자주 들었던 말이지요. 때론 환부를 도려낸다는 말도 합니다. 이러한 말들은 전체가 다 죽어버리기 전에 또는 큰 타격을 입기 전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진 유리창의 비유는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창 하나가 깨져 있음으로 해서 그곳이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어 점차 건물 전체가 황폐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곰팡이가 엄청나게 번식하여 전체에 퍼져 음식이든 벽이든 그런 것들을 못 쓰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에는 곰팡이가 번식한 집을 마치 나병환자처럼 여기고 관찰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 역시 작은 부분의 문제가 전체로 퍼져 치명적인 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켜 거의 권력을 손에 다 넣었다가 패망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들의 반란으로 위태로워져 피난을 하게 되었을 때 그의 충실한 심복 몇이 남아 거짓 귀순을 하고 압살롬을 돕는 척하였습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압살롬에게 곰팡이와 같은 존재였는데 결국 그들의 계략은 성공하게 되어 압살롬을 패망케 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은 후새였습니다. 그는 압살롬이 전략회의를 할 때 아히도벨이 제안한 뛰어난 전략을 반대하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지금 즉시 다윗의 군대를 급습하면 그들은 제대로 저항할 힘이 없어 무너질 것이고 그것을 틈타 다윗왕만 죽이면 더 이상 압살롬의 권력에 대한 위협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이 제안이 채택되었다면 다윗의 운은 끝나고 압살롬의 시대가 열렸을 가능성이 매우 큼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지키시기 위해 압살롬과 그의 수하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버렸습니다. 압살롬은 신중을 기한다는 이유로 후새에게도 의견을 듣게 되는데 그것이 치명타를 가져왔습니다. 후새는 거짓으로 압살롬에게 귀순하였지만 여전히 다윗의 충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과 그의 수하의 용감한 장수들의 과거 경력을 들어 성급히 공격했다가 자칫 반격을 당하여 패하기라도 하면 대세가 다윗에게 기울어질 수 있으니 이스라엘 전체에서 군대를 모아 대열을 정비하고 치자고 합니다. 압살롬은 물론 그의 수하들 역시 다윗과 그의 수하의 과거의 화려한 전공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제안은 매우 합리적으로 여겨졌고 결국 아히도벨의 탁견은 무시되고 후개의 지공술이 채택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제안이 채택되지 않자 아히도벨은 패배를 예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후새의 제안의 채택은 곧 압살롬의 패배를 의미하며 그것은 곧 자신의 파멸이라고 판단에 의한 극단적 선택이었습니다. 압살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충신 하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입니다. 마치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부차라는 왕이 그의 충신 오자서를 죽게 한 사건과 유사합니다. 이 경우 월나라의 범려가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게 하였기 때문에 결국 부차는 충성스럽고 뛰어난 신하 오자서를 죽게 했고 그로 인해 월나라의 반격을 받아 패망하게 되면서 부차 자신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 점에서 아히도벨의 비극과 유사하죠.

  그렇게 해서 압살롬이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다윗의 세력은 대열을 정비하고 반격을 가함으로써 승리를 얻게 됩니다. 압살롬에게 공격을 당해 우왕좌왕하며 도망 나온 다윗의 세력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실력과 경험을 최대한 살려 전투에 돌입합니다. 작전은 멋지게 성공하고 압살롬은 패주하다가 상수리나무에 그의 머리칼이 걸린 채 요압이 이끄는 다윗의 군대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충신의 충언 대신 내부에 잠입했던 적의 스파이의 말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만일 압살롬이 과거에 다윗에게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후새에 대하여 좀 더 신중하게 대하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무리 귀순을 하였다고 하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고려하면 그가 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정탐꾼을 보내 적의 상황을 살펴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또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의 역사하심이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압살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부에 있는 적을 제대로 제거 못한 불찰이었습니다.

  반면 과감한 결단으로 재앙을 피하고 자신과 동료들이 삶을 지켜낸 경우도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결국 다윗의 출신인 유다지파와 타 지파들간의 반목을 가져왔고 이를 틈타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출신인 불량배 세바가 타 지파들을 결속시켜 반란을 획책합니다. 이에 다윗은 그가 큰 세력이 되어 압살롬보다 더 위험하기 전에 제거하라는 명을 군에 내립니다. 이에 세바는 벧마아가 아벨로성에 무리를 이끌고 가서 농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그 성벽을 공격하고자 토성을 쌓고 공격을 준비하였고 성읍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용기를 내어 이 성읍을 구합니다. 그녀는 요압장군을 불러 담판을 합니다. 요압장군의 의도가 성읍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바의 제거에 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 그 여성은 세바의 목을 베도록 백성들을 움직였고 결국 세바의 머리는 성벽에서 던져집니다. 그러자 요압은 약속대로 철수하게 되어 성읍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고 보존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인정이나 다른 것에 의해 시간을 지체했다면 요압의 무리에 의해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압살롬과 달리 결단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부차에게 죽음을 명받은 오자서는 이렇게 유언합니다. ‘내 무덤에 가래나무를 심어 그것을 목재로 왕관을 만들고 나의 눈을 빼어 동문에 걸어두어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하라라고. 오자서 그리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망하고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툴 때 항우의 참모로 활약하였지만 결국 비슷한 이유로 물러나고 죽어간 범증 그리고 압살롬에 의해 배제되어 고향에서 죽어간 아히도벨 이들의 공통점은 내부의 위험요소를 방치해 버린 어리석은 주군의 패착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죽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평범한 여인이 성읍을 파괴와 살육에서 구한 사건은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는 죄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잘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그것이 자라나서 결국 우리의 삶을 타락과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깨진 유리창은 우리 안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서둘러 유리를 갈아 끼워 더 이상 나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면 우리의 삶은 안전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과감성을 가지고 죄의 근원과 맞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