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자르고 뽑을 때 살아납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장 29-30절)
예전에 아폴로라는 이름의 우주선이 달나라에 다녀오던 시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큰 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당장 우리가 달나라에 가게 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도 지금은 일어나지 않고 있죠?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럼 왜 달나라에 그 많은 돈과 인력 노력을 동원해 사람을 보냈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뭔가 정치적인 쇼라도 벌인 느낌입니다.
하지만 만일 보다 큰 그림이 있어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사람을 보냈다면 그것은 지금도 착착 진행되고 있을 것이고 우주선의 달착륙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요? 큰 그링은 단번에 그려지지 않습니다. 레오날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아네네 학당’(르네상스 3대화가)가 그려지는 과정은 장대함과 함께 섬세함이 어우러져야 되는 정성어린 한 땀 한 땀을 필요로 하였을 것입니다. 아폴로 우주선 발사라는 한 땀이 장차 그들이 그리는 큰 그림의 어느 부분을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모여 대작이 탄생할 것을 기대하며 우리는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도록 합시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성공적이지 않아서 실수와 실패도 자주 하기 마련이지요. ‘실수하시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빛나기 위해서는 ‘실수투성이의 인간’이 필요합니다. 이에 비해 동물은 실수할 만한 것을 아예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지만 선악과를 따먹는 실수를 비롯하여 너무나 많은 실수를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아울러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실수를 우리는 책망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얼마나 인간이 동물과 다르고 하나님께 가까워졌는지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유인원의 차이는 어쩌면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만큼 아니 그 이상 클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 하지만 못 하는 것도 많습니다. 거짓말을 못하시고 죄를 짓지 못 하시고. ‘죄를 짓지 못하다니? 뭔 소리야? 안 짓는 거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불가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에 비해 인간은 거짓말도 잘 하고 죄도 잘 지으니 하나님보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우위에 있다고 한다면 불경죄로 제가 지옥에 떨어지게 될까요? 웃자고 하는 소리니 너무 얼굴 붉히지 마시고 실수로 우리가 컸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저의 진심을 이해바랍니다.
하지만 실수가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공통점이 자신들이 로마제국의 완전한 부활을 가져올 영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둘다 그러기 때문에 황제가 되거나 황제와 같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정권은 자신들을 신성로마제국과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에 이은 제3제국이라고 했지요? 신성로마제국 자체가 로마제국의 부활로 여겨졌고 독일제국은 신성로마제국의 부활과 같으니 결국 그가 원한 것은 로마제국의 완전한 부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이 끊임없이 추구한 로마제국의 꿈은 유럽연합의 결성으로 반쯤으로 실현된 셈인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들 독재자들의 공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단 이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유럽이라는 지역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따라서 고대로마제국시대의 팍스로마나에 대한 동경심이 더욱 커져 결국 연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제2차대전과 그로 인한 냉전구조는 유럽연합의 길을 직접적으로 마련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 두 인물이 세운 제국은 그 자체로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유럽을 피바람으로 흔들리게 한 두 인물의 최후는 나란히 비참했습니다. 많은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사람들에 대한 대가로서는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편향된 이념과 야망의 대가로 유럽 나아가 인류가 겪은 비극의 아픔에 비하면 너무 관대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히틀러는 죽는 순간까지 제왕적 지위를 유지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가 자국인들에게 폐위되고 체포되어 처형되는 아픔을 겪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왜 독일인들은 마지막까지 총통을 그토록 지켜주려고 했을까요? 오랜 기간 외세에 시달린 그들의 민족적 상처를 그나마 치료해 준 은인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만일 이 둘을 역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인류의 실수를 가져온 사람들로 평가한다면 그 실수는 결과적으로 위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날드 다빈치가 위대한 명화를 완성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수많은 실수처럼 인류는 이 둘과 같은 인물과 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실수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권력은 그 잘못도 위대하다” 이 말은 유명한 기독교 영화 ‘벤허’에서 본디오 빌라도 역을 한 배우의 대사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도 잘못도 없겠지만 남는 것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실수를 아쉬워 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야망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훨씬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실수나 잘못이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을 용인한다면 성숙은 커녕 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예전에 섬기던 목사님이 “허락받고 개구쟁이가 된다면 그건 개구쟁이가 아니라 그저 철없는 아이일 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탕자가 실패를 허락받고 방탕한 삶을 살았다면 그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전혀 다른 새 사람이 되어 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을 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신체를 잘라내면 천국에 들어가기는커녕 나 자신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머리 속에서 죄를 짓는 것도 죄라면 뇌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것도 죄라고 하셨으니 눈은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뇌도 문제 아닙니까? 그럼 뇌를 제거해야 하나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무뇌아’가 되는 겁니까?
우리는 이 어려운 가르침을 위대한 실수와 결부시켜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 코스프레를 하니까 실수와 죄를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원숭이 같은 유사품이라고 여겨지는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실수나 죄를 합리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눈을 빼라 오른손을 찍어 버리라는 것은 죄와 실수에서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함으로써 죄와 실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에 대한 왜곡이 될까요?
눈을 빼고 손을 잘라버리는 것은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럴 여지를 송두리째 뿌리뽑으라는 것입니다. 히틀러나 나폴레옹 같은 인물과 그들이 세운 야망의 제국 그리고 엄청난 살육과 약탈이 가져온 비극은 한치의 용서도 없이 제거시키고 그럴 여지도 남기지 않아야 할 것 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역사에 알게 모르게 아쉬움과 향수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직 그들을 뽑아내지도 잘라 버리지도 않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향수인가요?
우리는 죄인이며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해서 그러한 자신에게 일말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에 대하여 자르고 뽑고 하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을 씀으로써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죄와 실수의 여지를 단호하게 자르고 뽑으십시오. ‘깨진 유리창’이론처럼 작은 여지가 큰 잘못을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와 실수의 여지를 철저히 자르고 뽑아 버림으로써 자신을 죄와 완전히 멀어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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