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

닥터 양 2021. 10. 9. 05:30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

 

  어떤 사람이 은행에 100억의 현금을 입금시켜 놓았다고 합시다. 그에겐 갚아야 할 채무조차 1원도 없습니다. 따라서 100억은 그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순수 자산입니다.. 물론 자신이 살 집도 그곳에 필요한 가재도구도 완벽하게 갖춰놓았기 큰돈을 지출할 일도 없습니다. 그는 매우 건강하여 당장 생명에 대한 위협이나 걱정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친구가 자신에게 빌려간 100만원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걱정을 할까요? 만일 그 친구가 빚을 제대로 갚지 않고 있다고 해서 짜증을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당연히 답은 노입니다. “이봐 지금 돈이 없으니 나중에 형편대로 갚을 게이런 친구의 애원에 뭐가 어째? 어디서 그 따위 소리야라고 버럭 화를 낼까요? 역시 아닙니다. “그래 알았어, 형편 되는 대로 갚아라고 하거나 그냥 없었던 걸로 해... 괜찮아... 안 갚아도라고 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큰 자산이 있기 때문에 100100만 원의 채권이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이나 공격을 받을 때 그것에 의해 상처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은데 한 두 사람이 나를 공격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대수야. 괜찮아. 어디 마음대로 공격해 보시지. 난 끄떡없어라는 식의 자신감이 그에게는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사랑의 자산 100이 있기 때문에 남의 공격이나 비난에 여유를 가지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러한 자존감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내 아버지가 재벌이나 권력자라면 우리는 마음이 든든할 것이고 따라서 남의 공격이나 실수에 관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까짓 게 뭐라고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리어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나를 공격할까? 불쌍한 사람이야.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해 줘야 할 것 같네라는 식의 생각조차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을 공격하는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그는 분노에 차 있을 것이고 그러기에 남을 공격합니다. 그로 인해 가장 먼저 힘든 것은 바로 공격하는 자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그런 공격에 강하며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 나에게 화를 내고 노골적으로 괴롭히려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만나도 그것이 나의 삶에 위협이 될 수 없다고 믿기에 여유롭게 대처합니다. 도리어 그 사람이 걱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상대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습니다. ‘딱한 사람이네. 얼마나 힘들까? 나를 공격하면서 자신도 괴로울 텐데 이런 생각이 들면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더군요.

  “내가 너를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는데 누가 너를 정죄하리오 욕되게 하리오”(’ 내가”(’ 너를 사랑함이라 ‘에서)라는에서) 라는 가사를 아시나요? 이 노래를 접하고 저는 눈물이 울컥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토록 잘 묘사한 가사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은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거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조차 그것을 이유로 나를 공격해오기도 합니다. 비록 그것이 애정의 결과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에겐 고통이 아닐 수 없죠. 그렇게. 되면 자존감은 형편없이 떨어져 바닥을 치게 될 것입니다. ’! 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라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위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누가 감히 정죄하고 욕되게 하는가 하십니다. 전에 모재벌회장이 아들의 폭행피해에 분노해 사람들을 동원해 보복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지만 재벌 회장 아버지 덕에 아들은 자신의 아픔을 위로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벌 회장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분이시니 그런 분의 위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것입니다.

  “눈물 날릴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지만 주를 위해 참는 것”(’ 행복‘에서)”(’행복에서)

이 가사처럼 우리에겐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든든한 백이 있습니다. 그분의 위로는 그냥 말뿐인 위로가 아니라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힘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이라도. 이것이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행복‘에서)”(’행복에서) 그렇습니다. 세상은 이런 하나님의 위로의 행복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크리스천이 왜 행복하고 평안한 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 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행복을 누릴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특권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우리는 이 말씀을 모두 알고 있지만 정말 그 권세를 누리는 분은 생각보다 적지 않을까요? ’ 신들러의 리스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쓰지 않는 것이 진정한 힘이다라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실제 휘두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권세를 믿기에 세상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권세의 위력이 아닐까요? 마치 100억의 자산가가 느끼는 여유처럼 말입니다. ’ 넌 내게 깜도 안 돼.. 그러니.. 아무리 나를 공격해도 소용이 없어 ‘라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힘이 없으니 초조하고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주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 그것은 믿는 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권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위로가 있기에 우리는 거친 파도가 밀려와도 평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주는 힘으로 늘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