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넘치는 사랑 불행한 대한민국 작품 소개(3)

닥터 양 2021. 3. 30. 22:19

넘치는 사랑 불행한 대한민국 작품 소개(3)

 

목 차

 

5. 사랑도 재분배가 될까요? 넘치는 사랑을 모자라는 곳으로!

6. 본서의 집필 목적 -‘모두의 사랑을 위하여

 

5. 사랑도 재분배가 될까요? 넘치는 사랑을 모자라는 곳으로!

  논에 물이 없으면 벼가 말라 죽지만 넘치면 역시 썩어 죽겠죠? 홍수도 가뭄도 농사에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만일 한 곳에 물이 넘친다면 모자라는 곳으로 보내 주어 부족한 것을 채우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좋은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상생이라고 하죠.

  사랑에도 상생을 위한 재분배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과도해서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랑이 부족해 춥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랑비만사랑 결핍증이렇게 부르면 좋을까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윤택해도 불행한 것은 이러한 사랑의 양극화 때문입니다. 우리만의 사랑이 가득 차 그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착취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쳐서 과유불급의 상태러 문제가 되는 사랑을 재분배한다면 보다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1994년경에 일어난 희대의 살인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부유한 가정의 장남이 돈을 위해 부모를 마구잡이로 찔러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화재사건으로 위장한 사건입니다. 그는 왜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을까요? 부유한 부모덕에 호의호식하며 잘 살던 그가 왜 부모에게 그토록 잔인하게 굴 수 있었을까요? 마치 철천지 원수에게 하듯이.

  그것은 바로 사랑의 비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과도한 사랑을 퍼부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겐 사랑에 대한 고마움도 기쁨도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받을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의 욕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부모가 거부표시를 하자 그가 느낀 것은 분노였습니다. 그의 욕망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 커져 있었던 것입니다.

  비슷한 문제는 남녀 간에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남성이 도둑질을 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그에게 범행동기를 묻자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그랬다고 합니다. 왜 그는 도둑질까지 하면서 여자친구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의 사랑에 대한 욕구가 끝을 모르고 커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자 친구도 남성의 친절과 호의에 그만 욕구가 커져 무리한 요구를 하여 온 것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과도한 사랑은 사랑의 비만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앞의 경우는 사랑받는 자의 욕구가 과해져 사랑해 주는 사람을 해친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사랑 때문에 제3자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했습니다. 사랑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위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면 그 사랑은 과도한 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이 피해를 가져다주는 이유는 우리만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만좋으면 행복하면 되니까 그들의 사랑은 과도해져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조차 서슴지 않습니다. 어떤 여성은 가족을 위해 뇌물 100억을 받아도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만의 사랑은 이 사회에 해로운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사랑과 모두의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우리만의 사랑에 쏟아부으면 사회에 해가 되고 자신도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부모를 죽인 사람의 예나 도둑질한 남성의 사례는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르나 그것은 우리만의 사랑이 갖는 한계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분배를 보다 건전하게 함으로써 두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아울러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 천국과 지옥을 말해주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었죠. 천국 사람들 지옥 사람들 모두 팔이 묶인 채 살아가지만 천국 사람들은 모두가 식사를 맛있게 하고 지옥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이유는 천국 사람들은 서로에게 먹도록 하지만 지옥 사람들은 자기만 먹겠다고 하니 먹을 수가 없는 것이죠.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만의 사랑으로만 살면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삶은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길고긴 여행입니다. 자신이 지금 안전하다고 해서 언제까지 그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두의 사랑을 통해 사회를 평화롭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만의 사랑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서 해로운 사랑은 아닙니다. 모두가 모두를 동등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특별한 사랑을 가지는 것이 삶에 유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의 사랑으로 우리만의 사랑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6. 본서의 집필 목적 -‘모두의 사랑을 위하여

  내 가족이 남에게 잘못했을 때도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럼 질문을 하겠습니다. 내 가족이 내게 잘못한 것도 감싸줄 수 있습니까? 어렵겠죠? 그렇다면 당신이 자기 가족을 감싼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 가족이 공격을 당하면 그것이 나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미리 막자는 것이죠. 또 자신이 가족을 감싸주면 내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가족이 감싸주니까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요? 결국 가족의 잘못을 감싸는 것은 자신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행위라 하겠습니다.

자기 아이가 남의 아이를 괴롭히거나 폭력을 가했어도 철저히 자기 아이 편만 드는 부모 자신의 가족의 부귀영화를 위해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악덕 고용주나 사업주 자기 아이의 취업을 위해 권력을 남용한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변명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라고.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하였기에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사랑은 바로 우리만의 사랑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무죄일까요?

  저는 이런 사랑이 혐오스럽습니다. 그 사랑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자신들의 목적이 아닐까요?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려고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랑이면 뭐든지 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랑은 차라리 없는 게 이 세상을 위해 좋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특이한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이라고 내 편이라고 무조건 감싸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도리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누구인 줄 아시나요? 바로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유관순 열사에요. 저는 그 이야기를 읽고 용기를 얻었죠. 제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세상에는 저나 유관순열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가족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법과 질서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던 옛날이라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죠. 오늘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좀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법과 질서도 잡혔고 먹고 살 만큼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으니 우리도 좀 더 성숙해지면 안 되겠습니까? 언제까지고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려고 합니까? 왜 우리가 경제적으로 단군 이래로 가장 잘 산다고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할까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작은 것을 가지고 아귀다툼하는 것처럼 살아가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리석음을 바로 잡아야 할 종교조차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모두의 사랑을 전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몸소 우리만의 사랑을 실천하시니 신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자신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모두의 사랑을 말할 수도 없겠지요. 종교를 믿으면 복을 받고 천국에 가는 혜택이 있음만을 강조하는 종교지도자들이 모두의 사랑이라는 언 듯 손해보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저 자신 종교지도자의 길을 가고자 하였는데 종교의 민낯을 보고 그만 두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추악한 지도자가 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만의 사랑에 갇혀 점점 행복하지 못하게 되는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이런 글이 얼마나 힘이 될까 싶습니다. 아마 출판도 되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써야 하길래 썼습니다. 세계에는 우리와 달리 모두의 사랑을 통해 행복한 사회를 만든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쓰는 겁니다. ‘왜 우리는 저런 멋진 나라를 만들지 못합니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외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와 하던 논쟁이 기억이 납니다. 한국철학을 전공하던 친구인데 그는 유교적 가치를 저는 묵가적 가치를 주장했습니다. “가족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다. 물론 모든 사람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도 이상적으로는 훌륭하나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라고.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가족이 우선되는 것 자체의 중요성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상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가족을 중심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족이란 모두의 사랑의 출발점이라는 거죠.

  제 생각이 너무 이상적입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제 또래 사람들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치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멍청이가 된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희생해가며 자식들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희생이라는 것은 원래 값어치 있는 것이지만 그들의 희생이 과연 값어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욕망의 충족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처럼. 게다가 자식들은 그러한 희생으로 도리어 더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희생을 세상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합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여 부모를 버리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죠. 버젓이 대기업에 다니는 자식들이 여럿 있는데 어머니가 홀로 쪽방에서 최후를 마치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병들어 입원한 어머니를 위해 하루 한 시간 찾아뵙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도 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됩니까? 자식에 대한 정성의 반의 반이라도 들여서 부모님을 위해 쓰면 안 되겠습니까? 당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부모 아닙니까? 그런 분들을 외면하고 자식에게만 모든 공을 들이는 것이 사랑입니까 욕망입니까?

  부디 하고 싶은사랑만 하지 마시고 해야 할사랑도 해주십시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회가 아름다워지면 결국 우리 모두는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겠지요. 당신의 자그마한 모두의 사랑이 우리 사회를 대한민국을 나아가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힘이 됩니다. 함께 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