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랑하기(6) 희생자 코스프레는 그만 하십시오.
어느 식당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 생각이 지나치게 커지자 마침내 ‘내 덕에 이곳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니 내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손님들에게 그것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당신 미쳤어?”라는 식의 반응만 나왔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화병이 나서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괘씸한 것들! 은혜도 모르고 이럴 수가’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아니 건강하던 자네가 왠일이야” 친구의 물음에 그는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자네가 뭘 착각했구만” “아니 내가 왜? 난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어. 그러니 감사를 받아야지” “하지만 자네는 그걸로 돈을 벌었잖나? 그러니 손님들이 자네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지” “....” “물론 서로가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맞아. 하지만 자네 이야기는 자신이 희생자라는 말이 아닌가? 그건 아니지. ”
갑자기 왜 뜬금없는 말을 하느냐 의아하게 느끼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이 사장의 주장은 터무니가 없습니다. 식당주인이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마치 무료급식소 소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게다가 ‘희생자’라니!
하지만 우리는 이런 터무니 없는 희생자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충분한 대가를 받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사랑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왜 낳고 키웁니까? 하늘에서 자녀들이 내려와 “저를 키워주세요”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키우고 있나요? 아니면 국가가 할당해서 키우게 했나요. 이도 저도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아서 아이를 낳았고 여러분들이 사랑스럽다고 느끼니 키우고 있는 것이죠? 자녀가 사랑스럽지 않다고 느낀다면 많은 분들이 자녀를 버렸을 것입니다. 아닐까요? 지금도많은 아이들이 버려집니다. 하지만 사랑스럽지 않다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버려질까요?
결국 여러분들은 자녀를 키움으로써 많은 대가를 받고 있습니다. 증거를 대겠습니다. 자녀가 어느 날 사고로 죽는다면 여러분은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세월호 사건의 유족들 중 자녀를 잃은 분들은 배상금을 거부하고 지금도 원인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배상금 받고 조용히 살면 편안할 텐데. 왜 그럴까요? 자녀가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큰 존재인가를 말해줍니다. 즉 자녀는 존재자체로 행복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빙의)제가 학습지교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대한민국 부모 중에 자신을 자녀에 대한 희생자로 여기지 않는 부모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엄마들은 자녀 때문에 자신이 희생되었다는 의식을 ‘내 청춘을 돌려줘’라고 하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이혼하게 된다면 “당신이 아이 키워 난 더 이상 희생하고 싶지 않아. 난 내 인생을 살거야”라고 하며 남편에게 자녀를 떠넘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녀가 주는 행복이 크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잘 못 키울 것 같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키운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서요? 그렇게까지 엄마들을 악한 인간으로 보고 싶지는 않네요. 양육비 못 받아도 엄마들은 아이를 데려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없는 삶을 생각하기도 싫으니까요.
예전에는 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를 뒷바라지하는 여성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가 고시에 합격하여 판검사가 되면 고생끝 행복시작이라 하였습니다. 그녀들은 희생자일까요? 아니겠지요. 그녀들은 희생을 했다기보다는 투자를 한 것입니다. 자신의 청춘을 투자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니 희생이라 할 수 없죠.
남편과 아이를 위해 뒷바라지를 한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뒷바라지 한 것은 남편이 돈을 벌어와야 자신과 자녀들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한 것은 아이들이 성공해서 자신을 부양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부모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자식 덕을 보려고 그러는 줄 알아” 예전 부모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자녀가 성공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서운해 했습니다. 그렇지요? 심지어 며느리와 다툼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녀의 성공을 부모가 나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성공의 대부분은 부모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을 마냥 희생적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였으면 합니다.
사랑에 있어 잘못된 희생자의식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결혼 전에 결심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이 말은 자녀에게 죄책감을 줍니다. 자신이 부모에게 짐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난 부모님에게 나쁜 존재인가’라는 자괴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제가 부모가 되면 저 말만은 하지 말겠다고.
이 결심을 잘 지킨 것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 부모의 행복을 몰랐습니다. ‘부모란 참 힘든 자리구나.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니’ 희생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희생을 마다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날씨가 더우면 부모님들이 저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재웠습니다. 그 때는 ‘저런 걸 어떻게 하지? 난 힘들어서 절대 못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부모가 되니 그 힘들어 보이던 부채질이 행복한 것이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서는 안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녀로 인한 행복이었습니다. ‘아하 이래서 부채질을 할 수 있었구나. 별 것 아니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맞벌이 하는 부모님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자랐음에도 이랬으니 그렇지 않는 분들은 더욱 그 기분을 잘 아실 겁니다. 한 번은 어버이날에 아이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놀라서 “아빠 왜 이래?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아빠 자식으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벤트는 두 가지 목적으로 했습니다. 어버이날인데 선물은커녕 카네이션도 안 달아주는 아이들에게 요새말로 ‘참교육’을 시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일날이 되면 부모에게 낳아준 것을 고맙다고 하여 선물을 하라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도 “내 자식으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고 하며 선물을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럼 서로 선물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자녀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녀를 원해서 부모가 낳은 것이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자녀로 인해 얼마나 많은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물론 자녀의 입장에서도 낳아주신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선물을 주는 어버이날 생일날이 된다면 더 행복한 가족이 되겠지요.
이래도 희생자의식을 계속 가지시렵니까?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대가입니다. 사랑으로 얻어지는 행복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자녀에게서 이미 그런 대가를 받고 있습니다. 부모만이 아니라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따로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자 코스프레를 그만 둬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빚’ (양의모)
너는 내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고 빛이 되건만
난 네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구나 기쁨도 빛도 그리고 사랑도 줄 수 없어
언제까지나 나는 너에게 사랑의 빚쟁이로 살아가야 할 것 같아(이하 생략)
여기서 필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행복한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상대에게 빚을 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상대가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데 자신은 막상 상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으니 마치 빚쟁이가 된 느낌입니다.
왜 그는 빚쟁이가 될까요? 물론 그는 상대에게 선물을 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이 사랑함으로 인해 얻는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충분한 대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빚쟁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것은 괴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해주고 생색을 내기 쉽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잘 했는데’라는 식으로. 그것을 알아주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주지 않으면 자신은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랑으로 인해 얻은 행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희생자 의식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녀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의 사랑이 주는 행복은 잊어버리고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희생자의식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버리십시오. 이런 거짓된 희생자의식을. 그것이 어려우면 희생자의식을 가질만큼 상대에게 베풀거나 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사랑은 자랑도 교만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랑을 하면 상대는 그 자랑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집니다. 자신의 무기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난 남의 신세나 지는 못난 존재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내가 얼마나 너를 위해 애쓰는데”라는 식의 말을 들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이것이 과연 마음의 사랑일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배워서 남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요? “애들만 가르치느냐 막상 나 자신은 챙기지 못했어. 내 인생을 돌려줘”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선생님의 인생입니다”라고 저는 답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애들을 가르쳐 훌륭한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내 인생을 돌려줘라는 말은 가당치 않습니다. 이해되시나요? 안 되면 그냥 외우십시오.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그 자체가 인생입니다. 그런데 무슨 ‘내 인생을 돌려줘’라고 합니까? 더구나 선생님과 달리 남의 자식도 아니고 자기 자식을 키운 것인데. 선생님의 보람이 제자들이 잘 되는 것인 것처럼(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아닙니다)부모의 보람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인데(자기 자식 아닙니까?) 왜 자기 인생을 돌려달라고 합니까?
사회란 어차피 누군가를 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은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원시시대에나 가능한 일이지요. 자급자족을 하며 살던. 그러니 모두가 남의 일을 해 주고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내 인생을 돌려줘’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자급자족의 사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일만 하는 그런 사회. 좋으십니까?
마음의 사랑은 사랑 자체로 행복하기 때문에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이 대가입니다. 마음의 사랑을 하십시오. 사랑이 대가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자의식 따위는 버리십시오. 당신은 사랑으로 인한 행복으로 충분히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사랑이 만일 없다면 당신이 느낄 허전함 외로움 쓸쓸함을 생각하십시오. 그래도 좋습니까? 아니겠지요. 자녀도 애인이든 배우자든 사랑하는 상대로 인해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희생자 코스프레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동산 어떻게 해야 하나?(3)저금리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 (0) | 2021.01.11 |
---|---|
마음의 사랑하기(7) 상대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0) | 2021.01.10 |
마음의 사랑하기(5)사랑할 수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0) | 2021.01.10 |
마음의 사랑하기(4)사랑을 즐기십시오 (0) | 2021.01.10 |
마음의 사랑하기(3)아름다운 사랑을 배우십시오. (0) | 2021.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