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다!

닥터 양 2022. 8. 17. 20:06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다!

 

 들어가기 21세기의 위기와 우리의 미래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초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 세계최강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조금은 환타지소설과 같은 주장도 있으니 그리 비관할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 보고 있자면 그런 것으로 인해 현실을 마냥 낙관할 수는 없어 보인다.

  3월의 대선으로 5월에 정권이 바뀐 지 이제 3개월! 하지만 새로운 정부는 안정되어 의욕적으로 새 정책을 실시하려는 힘찬 출발을 하기는커녕 정권내부의 다툼과 대립으로 혼란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여당의 대표가 자체 징계로 당원권 정지를 당해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한 지 얼마 안 되 이번에는 또 다시 내분으로 그것마저 무너지고 비상대책위원회체제가 들어가고 그러자 위기를 느낀 전 당대표가 법원에 가처분소송을 내게 되어 또 다른 혼란에 빠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도발로 세계가 큰 혼란에 빠져든지 오래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버젓히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이 자행되고 있고 그것이 큰 제재 없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반인도적인 전쟁 범죄는 물론 식량문제 에너지 문제 등의 갖가지 어려움이 발생하여 세계는 혼란에 빠졌고 특히 제3세계의 고통은 날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77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전후에 꿈꾸던 평화롭고 행복한 시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보아도 결코 우리는 안심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구냉전시대의 적대세력들과 미국 일본의 동맹국가들간의 균열이 우리로 하여금 강요된 선택이 기로에 서게 하고 있다. 마치 17세기초에 친명이냐 친청이냐를 놓고 괴로워야 해야 했던 상황의 재현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들국가간에 벌어지고 있는 자원전쟁 기술전쟁 등은 우리를 촌각을 다툰 생존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과연 21세기 우리는 이러한 내외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전히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며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사례처럼 그 지위를 잃고 세계의 23류 국으로 전락하여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처지가 될 것인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도 여유도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과연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길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1. 우리가 모델로 삼야야 할 대상은 어떤 나라일까? (1)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모델이 아니다.

  위기일수록 우리가 모델로 삼을 나라가 필요하다. 해방 후 우리에게 모델이 된 나라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나를 꼽자면 미국 일본 그리고 서독이라 하겠다. 미국은 줄곧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본이 되어 주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고 또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학생을 비롯하여 많은 형태로 미국으로 건너가 기술이나 학문 등을 전수받고 돌아와 우리 나라의 발전에 큰 보냄이 된 것이 사실이다. 또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처럼 전쟁으로 폐허된 가운데에서 국가를 빠른 시간내에 재건하여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 나라로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우리의 경제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같은 분단국가로서의 아픔을 함께 하는 입장이었다는 점도 우리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비서양국가로서 최초의 선진국이 되면서 많은 비서양국가의 모델이 되었다.

  과거에는 중국이 우리의 큰 스승이었다. 동아시아 최대의 문명국 중국은 우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큰 모범이 되어 동아시아 문명을 이끌어간 문화종주국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중국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동아시아는 유럽을 위시한 다른 지역처럼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으로 날을 새는 역사를 써 내려가야 했을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의 이동으로 오랫동안 야만이 지배하던 서유럽의 역사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중국은 우리의 모델이 될 나라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은 근대화에로의 발전에서 뒤처지는 바람에 결국 열강에 의해 침략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근대화에 뒤늦게 국력을 다 쏟아부어 마침내 G2라 불릴 만큼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이전처럼 동아시아를 이끌던 지도자적 모습을 잃고 패권국가로서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중국은 이 세상에 존재 않는다.

  미국에게도 더 이상 모델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제2차 대전 이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유일하게 본토가 전쟁을 겪지 않은 선진국가로서 마샬플랜 등을 통해 전세계의 회복을 이끈 나라이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유세계의 번영을 가져왔다. 특히 우리는 그러한 미국의 희생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그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구호 아래에서 자국중심주의를 내세워게 됨에 따라 미국은 어느덧 최강의 국력을 가진 보통국가가로 전락한 느낌 마저 든다. 세계 대전 직후의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그럴 힘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실제로 미국이나 중국은 우리가 모델로 삼기에는 부적한 나라이다. 그들은 거대한 국토(우리의 50배 정도, 남한만 놓고 보면 100배 정도)와 풍부한 자원과 많은 인구 등을 가진 나라로 우리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조건을 가진 천혜의 나라들이다.   게다가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세계최강의 군사력(전세계 군사력을 다 합하여도 당하지 못 할 정도의)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훌륭한 두뇌 등을 바탕으로 하는 나라인만큼 우리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마치 재벌 집 아들과 서민의 아들과의 비교와 같다. 우리 속담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제격이라 할 것이다. 미국은 미국일 뿐이고 중국도 그에 버금간다. 그들처럼 나라를 운영한다면 일년이 못 가 망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게다가 이들 나라가 생각보다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훌륭한 모습도 많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점도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5천만의 국민(인구의 1/6 정도)이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고 의료보험이 없는 국민이 그 정도이며 매년 파산자의 절반 이상이 의료비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의료빈곤국이기도 하다. 평균 영아 사망률은 슬로베니아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고 평균 수명 역시 선진국 최상위는 아니다. 승자독식의 원리로 부익부빈익빈현상이 두드러져 생활의 질에서 과연 최강국의 지위와 걸맞는지 의문이 든다. 교육의 문제도 심각하다. 최상위 교육은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할 정도지만 교육의 전체적인 수준은 선진국 내에서도 그다지 높지 않아 이 역시 양극화현상이 심각한 상태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미국 유학파가 너무 많아 그들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미국에는 장점이 많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인지는 의문이다. 사이즈가 다르고 체질이 다른 상대를 쉽게 배워서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미국의 경제는 겉보기에는 매우 화려하나 미국이 가진 조건을 빼내어 버리면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 경제학의 성적이 미국의 경제성적은 결코 아니다.

  중국의 경우도 문제는 많다. 일단 일당독재의 문제는 심각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거시경제적 지표만으로 이 나라를 모델로 삼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게다가 패권국가로서의 모습은 차라리 과거 히틀러 시대의 독일처럼 결코 우리가 본받아서는 안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반면교사로서 삼아야 할 정도이다. 문화나 다른 점에서도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는커녕 과거에 가졌던 좋은 점마저 버리고 스스로 존경을 받을 수 없는 나라로 전락한 느낌이다.

 

2. 우리가 모델로 삼야야 할 대상은 어떤 나라일까? (2)우리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나라들

   인구 5천만 3만 달러 이상의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모두 7개국! 한국을 제외하면 일본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다. 이 중에서 미국은 우리의 모델로 부적합하다고 보면 일단 나머지 5개국이 된다. 독일이 인구 8,000만 국민소득 50,000달러, 프랑스가 인구 6.500만에 국민소득 43,000달러, 영국이 인구 6,800만에 국민소득 47,000달러, 이탈리아가 인구 6,000만에 국민소득 35,000달러 일본이 인구 12,000 에 국민소득 40,000달러. 우리가 인구 5,000만에 국민소득 30,000달러이니 다소 차이는 있어도 대략 비슷한 수준에 있는 나라들이라 하겠다. 굳이 말하면 독일이 조금은 수준이 높은 나라라 하겠으나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히 우리가 이들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얼마나 동경하던 나라들이든가? 그 때에는 미국은 물론이지만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는 감히 우리가 넘볼 수 없는 나라들이었지 않나? 독일어를 배우고 프랑스의 샹송과 영화를 보며 동경하던 나라를 우리가 그나마 따라잡은 것이니 우리 자신이지만 너무나 대견스럽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 네덜란드와 핀란드를 포함시키고 싶다. 네덜란드는 현재 국민소득 57,000달러 인구 1,700만의 이른바 강소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이다. 핀란드는 인구 555만 국민소득 53,000달러로 네덜란드에 비하면 사이즈가 훨씬 작아 강소국이라고 해도 차이가 크나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기에 과감히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는 서양사에서도 매우 특이한 역사를 보인 나라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바다 보다 낮아 고통을 당한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중세 이후 서양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나라이기 때문이다. 영국과의 패권다툼은 특히 주목할만한 가치를 가진다. 국토면적은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그런 나라가 상대적으로 큰 영국과 대등한 경쟁을 하며 오늘날까지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주목해야 한다 .

  우리가 경제발전을 한창 하던 시절의 특징은 개방성과 실용성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이런 점에서 뒤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시절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세계를 우리의 시장과 생산지를 만들어 버렸다. 네덜란드는 이미 그러한 시도를 수백 년 전부터 실현해온 것이다. 그러니 세계에서도 제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인 네덜란드가 오랫동안 번영을 구가한 것이다. 거기에 실용주의는 큰 힘이었다. 무엇이든 유연하게 사고하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저출산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민을 받아들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이 또한 신중해야 한다. 자칫 국가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더구나 우리처럼 단일민족체제로 오래 살아온 민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민에 대하여는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야 한다. 인구감소를 각오하고 대외적인 진출을 통한 개방성 확대로 줄어든 인구를 전제로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네덜란드는 인구 사이즈나 다른 여러 가지로 고려해 볼 때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우리를 아예 인구 3천만 정도의 나라로 보고 그런 전제하에 정책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잘만 활용하면 이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좁은 국내시장만 생각하면 길이 안 보이나 역발상으로 해외로 나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핀란드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이다. 550만의 인구 우리의 10분의 1 정도이지만 핀란드는 끄덕없이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전 인구를 엘리트화 정예화하는 것이다. 교육강국 핀란드는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키워나간다면 많은 인구에 못지 않는 정예국민을 길러내 국력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에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이상의 국가들 중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가 유럽국가들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국가들은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한 대립과 투쟁 그리고 그것을 통한 갖가지 교훈을 통해 오늘날 세계에서도 가장 삶의 질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 냈다. 비록 국가경쟁력에서 미국이나 중국에게 뒤질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삶을 누리면서 살기 때문에 행복지수나 기타 삶의 질의 평가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이 어디서 왔으며 그것을 우리가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핀란드의 학생들은 우리보다 1/3 정도의 시간만 학습에 투자하고 있으나 그들의 학력 수준은 우리와 맞먹거나 오히려 앞서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교육이란 바로 사회전체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믿어온 것이 전부가 아니며 세상에는 갖가지 대안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유럽형 국가로 가기 위한 교육 개혁 (1) 공동체 정신의 함양

  미국이라는 나라는 18세기 후반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나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원천적으로 자유주의를 건국의 이념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미국이 1776년에 독립을 선포한 것은 본국 영국의 중상주의적인 규제 때문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미국에 건너온 그들의 선조들에게 독립이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그들의 거창한 독립선언서는 그저 그들의 영업의 자유에 대한 명분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들이 독립을 한 이래 그들의 본국 영국과 유럽은 엄청난 사상적 투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숙에 성숙을 더해 갔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등등..그것은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갖가지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열한 대립의 결과물이었다. 그러한 역사를 거쳐 오늘의 유럽사회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러한 역사를 거치지 않았다. 미국이 독립한 이래 남북전쟁 이외의 어떠한 무력충돌도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광대한 국토, 풍부한 자원, 이민으로 유입되는 비교적 온순한 풍부한 노동력 등으로 그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을 이어갔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적 투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성숙시킬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마치 부자 아버지가 계속 자금을 대주니 실패의 교훈을 얻을 기회를 가지지 못해 미숙한 채 남아 있는 부잣집 아들처럼.

  그래서 미국에는 없고 유럽에는 있는 정신적 유산이 많아졌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 정신이다. 미국의 농촌을 생각하면 광대한 토지를 혼자서 경작하는 여유로운 농민의 모습이 연상되는데 비해 유럽의 경우는 많은 농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현실은 조금 다르지만 적어도 이미지로서는 그렇다. 그것은 공동체 저신의 유무를 의미한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함께 살면서 충돌과 대립을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공동체 정신을 만들어온 오늘날의 유럽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국이라면 그런 것이 필요없다. 넓고 넓은 땅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데 그런 정신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갖고 싶은만큼 토지를 가지고 열심히 경작해서 내 것을 만들면 되지,

  그런데 우리에겐 왜 공동체 정신이 결여되어 있을까? 우리도 땅이 좁고 인구는 많으니 당연히 그런 정신이 생겨났을 법도 한데. 동일하게 넓은 땅이 널부러져 있어도 중남미와 미국은 다르다. 중남미는 그런 땅을 소수의 지주가 다 독점하고 그것을 다수의 농민들에게 경작케 하는 소작농업이 발달했고 미국은 자유농이 발달했으니까. 왜 다르냐고? 시민혁명을 거친 영국인과 그것을 모르는 스페인사람들의 수준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땅이 좁고 인구가 많다고 해서 모두가 공동체 정신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공동체 정신이란 바로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정신이다. 유럽사람들은 개개인의 삶보다 전체가 함께 나아진 삶을 살고자 단합하여 기득권 세력과 싸웠고 우리는 그것을 개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소위 입신출세주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유럽에는 공동체 정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우리에겐 그것이 상대적으로 결여 되어 있다. 대기업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와의 대립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의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려면 국민들 사이에 바로 이러한 공동체 정신이 함양되어야 한다. 서로가 함께 잘 사는 사회에 대한 의지가 공유되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에 성공한 것은 바로 그러한 공동체 정신을 일시적이나 높여 모두가 미래에 눈을 하나로 집중시켰기 때문에 내부의 분열이 최소화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새마을 정신이고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의 정신인 것이다 만일 그러한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에서 경쟁의 원리를 최우선으로 하여 왔기 때문에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핀란드이 경우 중학교 이하에서는 석차를 절대 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공동체 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회자체가 그런 분위기이니 그것이 가능하지만 또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가 그렇게 된다. 사회와 교육이 하나로 어울러져 경쟁을 최소화하는 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의 국제경쟁력이 특히 약해졌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경제력은 물론 학력경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4. 유럽형 국가로 가기 위한 교육 개혁 (2) 보편적 가치에 대한 철저한 교육

  현재 우리 사회에는 사회를 지탱해 줄 보편적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아노미’(무질서)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기준이 될만한 그 어떠한 보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은 채 각자의 소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을 해 보라. 당신에게 판단의 기준이 될 보편적 가치가 있는지.

  과거에는 우리에게 훌륭한 보편적 가치기준이 있었다. 바로 유교 좀 더 정확히는 주자학이나 성리학이라 불리던 보편적 가치기준이 존재했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그 이후로 유교는 불교와 함께 우리의 삶의 보편적 가치기준이 되어 왔다. 그것이 성리학을 숭배하는 신진사대부들이 세운 조선 시대에 와서 국가의 정통이념으로 자리잡고 과거 시험을 통해 모든 엘리트들의 필수과목이 되면서 그 지위는 확고해졌다. 성리학의 공과는 별도로 그것이 우리 사회의 질서와 도덕 윤리의 기준이 되어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유교나 성리학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을 위해 변명을 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4대 종교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기준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불교-은 대부분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매우 고리타분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의 시험을 이기고 오늘에 이른 것은 그만큼 그것에 대체할만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성경을 보라. 골수 개신교도인 내 눈에도 고리타분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도 남을 정도로 기독교는 보편적 가치기준으로서의 자격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유교 성리학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오늘날에 적용시키는 신학자는 거의 없듯이 유교경전도 오늘날에 맞게 해석하면 얼마든지 적용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와 맹자 대학을 원문으로 읽는 나는 성리학의 초시대적인 가치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어줍잖은 지식 가지고 성리학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기 바란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성리학이 보편적 가치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님의 말씀이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사람들은 경의를 표했다. 효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덕목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리학의 윤리에 힘입은 바 크다. ‘불효자라는 말은 적어도 그 시절까지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비난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는 말에 많은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기도 했다. 이러한 자세가 우리 사회를 지탱한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이 나라에 불어온 민주화의 열풍이 성리학이 가졌던 보편적 가치로서의 권위를 붕괴시켰다. 자유와 권리를 내세워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를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으나 모든 것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처럼 민주화운동은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보편적 가치관마저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고 대책없이 파괴를 일삼게 하였고 결국 우리는 소중한 가치를 상실하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상이나 종교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외래종교인 기독교는 자신들의 세력확장과 성장에만 힘을 기울였을 뿐 보편적 가치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그럴 수도 없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았던 성리학과 달리 기독교는 결국 외래종교로서의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복과 내세신앙에 치우쳐 현세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기독교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것에 특화되어 도입되었기 때문에 오는 과정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서양의 기독교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서양의 기독교는 비록 종교적인 기능에서는 사회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과거와 같이 얻지는 못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삶 속에서 기독교는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잡고 있고 그와 더불어 서양철학의 전통이 함께 양대기둥으로서 삶을 이끌고 있다.

  결국 보편적가치를 잃은 우리는 허무주의와 쾌락주의 물질주의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성리학이 차지하던 공간은 그대로 비워져 있고 이를 채울 어떠한 보편적 가치도 없으니 우리는 거대한 결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것을 파고든 것이 쾌락주의이다. ‘인생 뭐 있어? 그냥 즐겨라는 것이다.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으니 우리는 삶의 목표도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보다 많은 쾌락을 즐기고자 하려면 보다 많은 물질이 필요하니 물질주의가 뒤따라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쾌락과 물질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상 그러한 시대는 반드시 부패와 타락 방탕으로 가득한 암흑의 시대가 펼쳐졌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보라. 천사들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남녀 노소가 모두가 그들과 쾌락을 즐기고자 하였다. 그 결과 신은 그 마을을 멸망시키고 말았다. 비록 신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그러한 쾌락주의가 가져온 재앙을 의미할 것이다.

  오늘날의 유럽을 세계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곳으로 만든 것은 그러한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프랑스 대학입시에는 하룻 동안 치루는 철학시험이 유명하다. 문제는 하나이고 정답은 없다. 그러기에 컨닝을 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위한 족집게 과외도 없다. 오로지 학생들이 그때까지 살아온 삶에서 발견한 답을 스스로 작성하여 내는 것이다. 이 철학시험은 유럽이 오랜 세월 보편적 가치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3.1독립선언서를 보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독립선언서이다. 처음 시작부터 끝나는 문장까지 보편적 가치가 이렇게 잘 서술된 독립선언서가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 독립선언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의 조상들은 보편적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라. 즐겨라 재밌게 살아라 편하게 살아라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몇 년 후에 있을 연휴를 계산하는 모습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들에게는 삶이란 그저 놀고 즐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소돔과 고모라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우리에게 삶의 기준이 될 보편적 가치기준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조상들은 무력에서 뒤져 식민지의 비극을 맛보았지만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세계최고의 문명국가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썼다. 3.1독립선언서는 그것을 상징한다. 다시 한번 이 땅에 그러한 가치가 실현되기 바란다.

 

5. 유럽형 국가로 가기 위한 교육 개혁 (3) 민족적 자부심의 고취

  프랑스는 제2차대전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초기에 독일에게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고 패전을 거듭하다 결국 항복하고 비시정부라는 독일의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는 등 그 위신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대로는 만일 연합국이 승리하여도 프랑스는 그 어떤 지분도 가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때 프랑스를 위기에서 건진 것은 드골의 뛰어난 영도력과 레지스땅스운동이었다. 드골은 런던에서 끊임없이 프랑스국민의 저항을 호소하였고 이에 호응한 레지스땅스운동은 프랑스의 혼이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전후 프랑스는 초반의 굴욕에도 당당히 승전국의 일원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세워지지 않았다는 알베르 까뮈의 한 마디에 1차 대전의 영웅 패탱원수를 비롯한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것은 프랑스 민족주의의 위대한 승리였다. 프랑스 민족주의는 중세 이후 치열하게 전개된 유럽의 패권다툼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것은 프랑스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것이 가져온 폐단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프랑스 제국주의의 침략은 역사에 길이 남을 오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국민에게 높은 긍지를 가져다 준 힘이다.

  프랑스는 그런 점에서 보편적 가치와 민족주의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국가 라마르세이즈의 가사를 보라.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운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내용이다. 실제로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 때 만들어진 혁명가이기도 하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우리 군대를 조직해 나가자 앞으로 나가자 적의 더러운 피가 밭고랑을 넘치게 하자~~우리는 폭정에 대항하나니 피묻은 깃발을 높이 들어라 들리는가? 듣는가? 저 흉포한 적들의 고함소리가 우리의 자식들과 우리 아내들 목을 따기 위해 저들이 포효한다 나가자 만들자 우리 군대를...”

   프랑스 혁명이 갖는 보편적 가치는 어떻게 프랑스 민족주의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오늘날 유럽이 갖는 매력인 것이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조화를 통한 발전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서로의 장점을 겨루면서 가장 좋은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야만의 상태에 빠져 버린 서유럽이 오늘날 세계를 모든 면에서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보편성에 대한 추구와 함께 우리의 민족적 자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보편성은 결코 특수성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특수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결과물인 것이다. 특수성을 가지지 않은 몰개성적인 민족에게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능력도 의욕도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민족적 자부심은 존재하는가? ‘헬조선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그다지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우리에겐 역사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도 결여 되어 있다. 이른바 반일종족주의로 대표되는 왜곡된 역사관이 가져오는 반민족적인 역사관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 전에 5천만 인구에 3만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3만달러 5천만인구 클럽에 가입한 멤버들의 면면을 보라. 그들은 한결같이 제국주의의 피에 더러워진 나라들 뿐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미국. 오직 우리만이 제국주의의 피에서 깨끗하다. 게다가 제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는 오직 우리뿐임도 알아야 한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그들은 남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지위를 얻었지만 우리는 그러한 희생 없이 오늘의 자리에 올라섰음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결여 되어 있을까? 고매한 선비가 길을 가다가 조폭에게 매를 맞고 돈을 빼앗겼다고 해서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선비의 책임인가? 아니다. 그것은 조폭들의 범죄행위에 피해를 입은 것에 불과하다. 왜 무술을 익혀 자신의 몸을 보호하지 못했는가 라고 선비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이유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계가 침략주의 제국주의라는 광기에 빠져 저지른 죄악에 의해 일어난 일임을 당당히 밝히고 그들의 죄악을 규탄해야 할 것이지 우리를 탓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는 과연 패악한 시대인가?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진 시대였던가? 과거 국무총리 후보자가 조선시대 500년간 우리는 세월을 낭비하였다고 하였지만 과연 그럴까? 조선의 관료는 학인관료이고 왕은 철인군주였다. 이것은 서양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점이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우리처럼 관료가 정치와 윤리 철학 등에 대한 학문을 배웠던가? 세계 어느 나라 군주가 우리처럼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워 왕도를 익히는 후계자 수업을 해 왔던가? 아마도 우리처럼 철두철미하게 그것을 해온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혁명? 오죽하면 백성이 들고 일어나 나라를 엎어버렸던가? 우리에겐 갖가지 언로가 있고 그것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들에 비하여 착취와 억압이 적어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미화일까? 하지만 적어도 왕의 목을 단두대에서 잘라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모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이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민족적 자부심이 프랑스 발전의 원동력인 것처럼 우리에게 그런 민족적 자부심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후손에게 우리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민족적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2차 대전 초기의 패배로 자칫 3류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프랑스를 구한 프랑스 민족주의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민족적 자부심이 필요하다. 민족적 자부심을 후손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6. 유럽형 국가로 가기 위한 교육 개혁 (4) 개척과 도전정신의 함양

  인류 역사에 찬란한 족적을 남긴 제국이나 강대국을 살펴보면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황금조합이다. 유목민의 개척과 도전정신 농경민의 안정성이 하나가 될 때 위대한 역사가 쓰여졌고 나는 그것을 황금조합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예외가 없을 정도이다.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예를 들어 보자. 몽골족은 유목을 주로 하는 민족이고 그러기에 개척과 도전정신은 늘 충만하였으나 그것이 가지는 한계는 명백하다. 바로 단결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궤어야 보배라고 했다. 흩어진 힘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가 무장을 하며 살아가는 집단이기에 하나가 되기가 어려웠다. 그것을 테무친이라는 청년이 지도자로 등장해 하나로 묶어 몽골제국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여정을 걷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몽골이 전세계 육지의 1/6을 지배하는 전무후무한 제국이 된 것은 단지 힘을 하나로 모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이끌어나갈 안정성이 필요했다. 징기스칸은 결코 파괴자가 아니었고 새로운 제국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통치자이기도 했다. 그는 점령한 곳의 문화를 수용하여 안정적인 통치구조를 만들어 갔다. 금나라를 멸하고 그곳의 인재 야율초재를 중용하여 중국대륙 지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이를 증명한다.

  중국의 중원을 노린 무수한 북방민족 중에 정복과 함께 통치에도 성공한 경우는 극소수인데 그들 모두가 징기스칸의 예를 따랐다 할 수 있다. 특히 여진족의 청나라는 중원을 거의 300년 가까이 지배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철저히 안정성이라는 것을 그들의 개척과 도전정신에 결합시킨 황금조합을 가장 훌륭하게 만들어낸 것에 그 원인이 있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위대한 황금조합이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고구려이다. 만주벌판에서 생겨난 고구려는 개척과 도전정신에 투철하였으며 역사가 길어지면서 그것을 안정성과 결합시키는 황금조합을 완성시켜 갔다.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에게 제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당나라나 수나라나 중국의 역사에서는 제법 위대한 제국이라 할 수 있으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황금조합을 구축하여 막강한 국력을 가진 고구려를 상대할 정도의 나라들은 결코 아니었다. 기껏해야 도적떼나 다름없는 반란세력을 평정하고 세운 나라가 동북아 대륙을 호령하며 갖은 풍상을 다 겪은 고구려에게 적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재 선생이 조선 역사 1천년의 사건이라고 한 묘청의 난을 계기로 우리 민족은 반도국가 농경민족의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반도라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웅크리고 사대주의로 국가의 안보를 보장받은 채 평화롭게 살아간 천년으로 우리의 황금조합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결국 일제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말았다. 물론 일제의 침략은 죄악이며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나 황금조합이 살아있었다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황금조합이 20세기에 다시 부활하였다. 그것을 이끈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는 일제의 교육을 통해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갖는 개척과 도전정신을 배웠고 그것을 우리 민족의 안정성에 접목시킴으로써 마침내 오랫동안 사라졌던 우리 민족의 황금조합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객관적인 조건은 바로 민족의 시련과 국제정세의 변화이다. 특히 냉전이 가져온 위기 북한과의 대치 상황은 황금조합부활을 보다 용이하게 했다.

  유럽이 오늘날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것 역시 바로 황금조합의 힘이다. 그들은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전세계로 개척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나아갔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바로 그들 내부의 안정적 발전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대립하고 충돌하면서도 그것이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개척과 도전정신이다. 한국인은 근면하고 성실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위대한 역사를 쓸 수 없다. 바로 개척과 도전정신을 살리는 교육으로 이 나라가 또 다시 황금조합을 부활시킨다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세계로 뻗어나가던 번영의 역사를 다시 반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왜 오늘날 서로에게 총질을 하며 대립하고 있는가? 서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가족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곳을 바라볼 때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외부를 향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로 뭉쳐 이 나라를 다시금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동의 사막 아래에서 땀 흘리며 나라를 일으킨 대우와 현대의 신화는 바로 그러한 대한민국의 황금조합을 상징하는 성공스토리인 것이다.

   공무원 교사 건물주가 꿈인 나라에 희망은 없다. 우리 후손들이 개척과 도전정신을 미덕으로 여기고 나아갈 수 있는 교육과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이 아쉽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개척과 도전정신을 가르치자. 그것을 통해 더 큰 꿈을 이루도록 그들을 응원하고 지원하자.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이 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7. 유럽형 국가로 가기 위한 교육 개혁 (5) 지식보다 능력향상의 교육

  참으로 놀랐다. 아직도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소개하는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 줄은 몰랐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지식이 놀랄 만큼 쉽게 손에 들어오는 세상인데 그걸 돈을 주면서 사다니. 그 책을 되팔려고 중고전문서점에 갔다 다시 놀랐다. 산 가격의 50% 이상을 되돌려 받았다. 그만큼 그 책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에전에 지식의 양과 질은 독서량과 경륜에 의해 결정되었다. 활자매체가 거의 유일한 지식전달수단이니 독서는 지식의 척도였고 오랜 경험이 이를 보완하여 주었다. 젊은이가 나이 먹은 사람들을 지식으로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지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면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이가 쉽게 나이 먹은 사람들의 지식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대이다. 인터넷은 지식혁명을 이루었다. 지식 자체는 더 이상 돈과 시간을 들여야 손에 넣을 수 있는 희귀재가 아닌 것이다. 음식으로 치면 식자재에 불과하다. 음식의 맛은 식재료의 가공에 의해 결정되지 식자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처럼 (물론 좋은 식자재를 쓰면 훨씬 낫지만).

  그런데도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되도록 많이 주입시키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비아냥이 나오지 않겠는가? 19세기의 교실이란 교실이라는 설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표와 과정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시험을 치루고 나서 채점을 하면 답안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눠진다. 아예 기본적인 지식이나 개념 생각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최하점 수준이 될 답안이다. 이것은 논외이다. 다음으로 지식은 잘 정리해 썼지만 생각이나 개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답안의 정체성이 애매한 답안이다. 최고점수를 주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지식이 잘 정리되어 있고 생각도 개념도 명확한 답안이다. 당연히 최고점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답안이다. 나의 경우 지식이 다소 미흡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이 확실하게 드러난 답안에게 더 나은 점수를 준다. 지식이야 검색하면 나오지만 생각이나 주관은 본인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이러한 답안을 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미 나와있는 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지식이라면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게 축적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 그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인터넷의 기능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 저작물의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

  현대는 HOW MUCH DO YOU KNOW?가 아니라 WHAT CAN DO YOU DO?즉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아닌가? 그렇다고 기초지식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하기 어렵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도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르나 가능하다. 실제로 나는 그런 학교를 경험하였다. 강의도 수업도 없이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교사는 이에 대한 조언을 해 줄 뿐인 학교에서 학생들의 문제해결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사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침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하고 있다. 마치 음식을 떠 먹이는 것에 익숙하게 해서 자신은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명문대를 나와 좋은 스팩을 가지고도 막상 현장에 투입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기력한 이른바 MZ가 탄생하였다고 하겠다.

  문제해결중심의 수업은 블록식 수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한 가지 과제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 여러 가지 지식의 효율적인 활용을 유도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수업은 그러한 몰입을 방해하고 단편적인 지식의 축적만 유도하기 때문에 효율이 매우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류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고 하는 시대에 우리만이 과거에 매달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포도주는 익을수록 팽창하는데 낡은 부대는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찢어져 결국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우리가 우리 후손에게 그러한 어리석음을 물려줘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8. 유럽형 국가로 가기 위한 교육 개혁 (6) 공교육의 비중확대와 강화

  최근 20년간 우리나라 공교육은 양과 질에서 퇴보를 거듭했다. 5일제 수업이 일반회되고 필수수업일수도 축소되며 교과의 비중도 축소되는 등 공교육의 위축은 눈에 띄게 두르러졌다. 일본에서 실시되어 실패한 이른바 유토리’(여유)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은 정말 유토리를 누리면서 살아왔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공교육이 스스로의 의무를 감소시키는 와중에도 입시와 성적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학부모와 학생에게 전가되었을 뿐이다. 이른바 효도방학이라는 이름의 휴일이 교사와 그 자녀에게만 혜택을 줄 뿐 일반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전가된 부담은 결국 사교육의 팽창으로 이어져 부담의 감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년간 계속된 코로나 19샤태는 공교육이 무책임하게 내던진 부담을 더욱 가정의 부담으로 전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학교는 열리지 않고 학생들은 수업을 받아야 해서 부득히 생긴 비대면수업은 가정의 양극화가 고스란히 교육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기현상을 가져왔다. 기현상이라고 해도 새로운 것은 아니고 공교육이 전가시킨 책임을 가정이 짊어지는 과정에서 부모의 능력이 곧 자녀의 능력차로 이어져 갔다는 것이다.

길어진 방학 늘어난 휴일은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낼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격차를 크게 만들어 가고 있다. 방학이 능력있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자개개발의 기회이며 갖가지 방법으로 실력을 향상시킬 기회라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실력의 하락 비행의 위험에의 노출을 가져오는 재앙의 시간들임을 공교육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책임을 방기하고 사교육이라는 교육계의 기생충을 증식시킬 기회로 만들어 버리는 이 무책임한 구조를 이대로 둘 것인가?

  사교육계에 오래 종사해온 나에게 현재 학부모들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맹목적인 희생을 하는 존재가 아님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그러히게 자녀 교육을 자신이 아닌 남에게 맡기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한다. 그 결과 사교육시장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교육이 아닌 육아의 개념으로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에 던져 넣는 부모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공교육의 축소가 얼마나 해악인가는 너무나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사교육을 전제로 그나마 줄어든 공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천인공로할 만행이 교실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특목고 입시를 위해 배우지도 않는 것을 시험에 내고 불안하면 사교육에서 배워라고 내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니 이것이 정녕 아이들에게 유토리를 주겠다는 공교육 축소의 명분에 합당한 모습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공교육은 입시와 성적을 위한 기준으로서 군림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기준을 제시하고 너희는 그것을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에 젖어 책임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시키고 안락한 지위에 머무는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공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관계자의 삶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인가?

  이제 정상화의 길을 가야 한다. 공교육은 질과 양에서 더욱 더 강화되어 사교육이라는 독버섯이 교육계에 기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는 입시학원도 사교육도 우리처럼 기승을 부리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충실한 공교육과 사회의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구조야 하루 아침에 바뀌기 어렵겠지만 공교육이 더 이상 사교육에게 자리를 내주고 뒷전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만큼은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안산에 있는 석수중학교의 예를 들어 공교육 강화가 가져오는 가능성을 소개하겠다. 한부모가정 70%라는 지극히 열악한 조건에서 개교한 석수중 그러나 교무부장님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주변 학교를 물리치고 학력 1위에 오르다. 비결은? 너무나 평범하다. 학생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다. 방학에도 아이들을 등교 시켜 오후 6시까지 가르쳤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학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을 뿐 아니라 비행에 빠지는 아이들의 수도 대폭 감소했다. 이것이 공교육의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현실은 어떤가? 아마 모든 직업군 중에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간 직업군이 교사들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외여행을 가라고 방학을 주었는가? 수업에 대한 연구와 실력을 갈고 닦으라고 준 것이 방학이다 그런데 그들은 해외여행에 바쁘다. 왜 그것을 가지고 세계관을 학생들에게 넓혀주고자 하려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의 세계관이 넓혀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우수한 자질을 가진 교사가 늘어나도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그 우수한 교사들이 수포자를 사상 최대로 만들었음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사교육에게 공교육의 책무를 전가시키지 말자. 공교육 강화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급한 과제이다. 유토리 교육은 실패했다. 결국 학생들간에 격차만 벌이고 말았다. 그것은 공교육의 무책임을 합리화키시기 위한 수단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공교육 강화로 우리는 교육의 정상화를 가져오도록 전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마무리 국가 발전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교육의 미래를 좌우한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경제발전에 올인하여 우리나라를 경제적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로만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기여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때로는 고속도로 현장에서 때론 공장에서 또는 각종 전략회의에서 활약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전부일까요? 그가 KAIST를 세워 과학기술인력의 양성에만 힘쓴 것이 아니라 정신문화연구원을 세워 인문학적 인재를 키워 이 나라의 정신적인 성장에 힘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KAIST의 과학기술인재들에게만 군면제와 전액장학금 전원기숙사비와 식비무료의 혜택을 준 것이 아니라 정신문화연구원의 인문학인재들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주었다는 것은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나도 몰랐다. 만일 그것을 그 때 알았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정신문화연구원의 문을 두들겼을지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발전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염두에 두고 이 나라 교육의 전체적인 모습을 만들어 갔다. 그 출발은 국민교육헌장이었다. 민정이양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지 6년 째인 196812월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은 2003년 정식으로 폐기 되기 전까지 이 나라의 교육의 근간이 되어 국민의 교육에 대한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 읽어 보아도 시대적 한계를 그다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이 헌장을 기본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혁명은 국가발전의 장기적 계획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이전까지 문과위주의 교육을 과학기술인재양성과 기능인력양성이라는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변화되어 간 것이다. 이전만해도 법과나 문과 중심이었던 우리 교육에서 천시된 실용적인 과학기술이 중시되고 기능공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으면서 산업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정책 덕분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실업계동계진학혜택이었다. 이는 공과대학을 의대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리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공업인재를 양성하는데 큰 힘이 되었고 금오공고 등 공업계 고등학교에 우수한 인재가 모이게 하여 솜씨 좋은 기능인력을 양성하게 하였던 것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에 대한 집중육성이 시작되어 자칫 부족하기 쉬운 공업인재를 이런 식으로 교육의 혁신을 통해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 경제발전의 성공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의 대한 혁신은 비단 실용성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메이지시대에 일본이 세계열강으로 우뚝 솟은 것은 투철한 국가에 대한 충성과 효도를 중시하는 유교적 윤리와 신도적 신앙심에 있음에 착안하여 학교에서 그러한 충효를 중심으로한 도덕교육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각급학교에서의 도덕교육의 강화 아울러 민족의 혼을 되살려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도록 하는 한국사교육의 강화 등은 조국근대화라는 과업을 그저 잘먹고 잘사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민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로 삼게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국가발전의 장기적 계획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 영향은 고스란히 교육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학기술인재양성은 뒷전에 밀려 이공계 인재들은 앞을 다둩어 의대에 진학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의학이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니 매우 소중하기는 하나 모든 이공계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는 현상은 국가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 하지 않으나 이를 위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과감한 정책은 제시하고 실현하는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나마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교육을 자본주의의 원리에 맡겨 버린 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 문제하면 거의 100%에 가깝게 입시문제라고 여겨버리게 되었다. 매년 입시문제가 정책적 과제의 우선순위가 되어 제도를 바꾸어 보지만 해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입시가 나라의 교육을 좌우하는 나라에서 장기적인 교육정책이 수립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승전 입시의 함정에서 헤어날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장기적 국가발전의 계획이 부재한 것이다. 개인도 자신의 삶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사느냐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것만 생각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타난다. 오늘을 충실하려면 멀고 먼 미래까지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그러니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미봉책을 가지고 교육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가운데에서 무슨 백년지계가 나올 수 있을까?

  유태인들을 보라. 수천년의 민족사 가운데에서 경험하고 축적된 지혜를 바탕으로 오늘의 시대에 맞춘 교육을 자녀들에게 실시하니 그들이 노벨상의 30%를 차지하는 기여를 하면서 존경받고 있지 않는가? 민족을 소중히 하면서도 인류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그들에게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끊임없는 교육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혁신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저 미봉책으로 한 해 한 해를 넘기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유태인의 현재와 미래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이 점에서 대하여는 모든 정파를 떠나 함께 공감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진다면 그것에 맞춰 현재 우리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결정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우리가 가야 할 미래에 대한 장기적 발전계획에 대한 합의가 곧 교육의 미래 나아가 현재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