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 마음의 중요성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
오늘 다락방의 필자는 코로나로 인해 5주간 자택에서 자가 격리를 한 후 직장에 복귀한 뒤에 겪은 혼란을 이야기했습니다. 격리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상식과 달리 필자는 그것을 즐긴 모양입니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 하루를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죠. 출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지냈던 것이죠.
그러다 출근을 하게 되자 자신의 삶이 지겹게 느껴졌습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도 싫고 하루 8시간 책상 앞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싫고 모든 것이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예전에는 당연히 하고 지내던 일상이 5주간의 색다른 삶으로 인해 다르게 보인 것이죠. 사람이란 편해지면 계속 편하게 지내고 싶어진다는 상식이 그대로 그녀에게 적용된 것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루를 매일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그녀의 글로 인해 새삼 느낌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의 교육이 필요한 것이죠. 노숙자가 왜 노숙자가 될까요? 그들도 처음부터 노숙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 노숙자의 편안함 –우리가 보면 불편한 것이지만-을 알게 되자 그 삶에 빠져 살게 되는 것이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삶의 달콤함은 그들에게 노숙자라는 오명을 이겨낼 정도의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냈습니다. 불평을 하는 대신에 범사에 감사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하자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그것 자체도 소중하지만 그로 인해 나타는 변화는 더 큰 것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지요. 돌아가신 황수관 박사님은 웃음은 기뻐서 나오기도 하지만 웃음으로서 기쁨이 생긴다고 하셨는데 감사도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감사함으로 마음에 기쁨이 넘쳐 실제로 마음이 변화되는 효과를 하져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감사할 거리가 차고 넘칩니다. 예전에 제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때입니다. 모든 것이 불평거리로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나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맨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냐? 가족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친구도 동료도 있고. 왜 그런 것에 감사하지 않느냐“라고.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자 불평도 원망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그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가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것이지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은 허언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을 보기보다는 불만 거리를 찾아 불평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 있습니다. 10개를 받아도 하나를 못 받은 것에 마음에 가기 때문에 감사를 하기는 커녕 불평만 늘어놓기 십상이죠.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라는 가사처럼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어두움과 고통에서 스스로 해방시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친구에게 제자들에게 나름 최선을 다했건만 왜 그들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가 불평을 하며 살았죠. 그것이 사랑을 기쁨으로 이끌기보다는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저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그 시절 그 순간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로 인해 아예 사랑을 포기하고 살려고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도 감사로 이겨냈습니다. ’만일 내가 사랑할 사람들이 다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니 끔찍 했습니다. 자식도 없도 친구도 없고 제자도 없으면 제 삶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존재가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세상에는 사랑할 사람조차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부터 저는 사랑이 더 이상 고통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맙고 또 저에게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저는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하여 보았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행복에의 감사’ (양의모)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넌 모를거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러니까 넌 행복한거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랑하게 되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넌 모를거야 그런 행복을 준 너에게 감사해
사랑이 깨져 헤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사랑해 준 것 고마워 오래오래 간직할게 난 너 때문에 행복했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 할 거에요
사랑하게 해 줘서 고마워 너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원히 간직해도 괜찮겠니?
사랑하는 것은 운명 사랑받는 것은 의무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속되니까요
사랑받는 의무를 잘 지켜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사랑하게 해 줘 감사해요
결국은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가 삶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이라는 말씀은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지 모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음이고 살리는 것도 마음입니다. 자살하는 것은 객관적 조건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은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러한 조건을 이겨낼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렸음을 각종 연구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이나 병이 아니라 마음이 자살을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못한 것도 감사를 잊고 주어진 환경에 불평과 불만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즐거움을 찾아 그것을 누린다고 해도 결국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을 다잡기보다는 자꾸만 외부적인 자극이나 즐거움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허무함과 공허함 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감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환경이나 조건을 이겨내고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키워드 – 코로나, 자가격리, 색다른 삶, 노숙자, 무료급식소, 감사하는 마음, 불만 거리,
생명의 근원, 외부적 자극, 허무함과 공허함,
기도 – 하나님!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행복을 누리게 하시어 우리의
삶이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하게 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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