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그는 왜 그녀를 17층에서 떨어뜨려 죽였을까? 사랑과 욕망

닥터 양 2022. 7. 14. 18:10

그는 왜 그녀를 17층에서 떨어뜨려 죽였을까? 사랑과 욕망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사무엘하1314- 17)

  어느 중앙일간지에 여성 심리학자가 연재한 남자를 위하여라는 컬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성심리학자로서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들에게 유익한 조언을 준다는 취지로 쓰여진 것입니다. ‘내가 여자니까 여자를 잘 아는 입장에서 남자들이 좀 더 현명하게 사는 법을 알려줄게라는 것이죠. 마치 여사친이 여성의 입장이지만 남사친을 위해 여성의 비밀까지 알려주며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해 주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여사친이 제법 있었지만 좋은 여사친들은 여성들의 이익보다 저를 위한 조언을 해주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하자면 여성의 배신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저를 아껴준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여사친이 있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도 매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마치 아빠가 딸을 엄마가 아들을 성별을 떠나 돕는 것과 같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녀를 계급적 이해관계만으로 바라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유대관계 때문에 마치 노사관계처럼 남녀관계를 계급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큰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그녀가 쓴 글 중에 가장 충격을 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선물을 줄 때 자신이 그 날밤에 여자를 쓰러뜨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결국 남자를 위하여라고 하며 마치 남성들의 이익을 옹호할 것 같지 주장하지만 그녀 역시 여자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엄밀히 말하면 남성비하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란 그저 여자란 섹스를 하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적 존재이고 여자에게 잘 하는 것도 잠자리를 위한 것이라는 원색적 비난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그 문장을 바꿔 보겠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쓰러뜨릴 때 자신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여성이라고 할 때 선물 하나 주지 않고 데이트 비용도 자신에게 부담시키는 구두쇠 남자와 교제를 계속할 마음이 있습니까? 제가 살펴본 바로는 남자는 돈 안 내는 않는 여자는 용서해도 섹스 안 해주는 여자는 용서 못 합니다. 반대로 여자는 섹스 안 해주는 남자는 용서해도 돈 안 내는 남자는 용서 못 합니다.

  강남의 어느 지하철 역 부근에는 온통 성형외과가 들어서 있습니다. 저도 우연히 가 보았는데 정말 성형외과 천국이더군요. 물론 그곳을 찾는 단골고객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젊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겁니다. 그녀들이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성형수술을 받을까요? 그저 남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으려고? 아니면 취업에 도움이 되니까?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그게 다일까요? 아마도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일 것입니다. 부잣집 딸이라면 모를까 월급 받아 모은 돈으로 성형수술 받는 여성들이 그저 남의 칭찬이나 바라고 그 비싼 것을 하겠습니까? 취업용? 예 취업이죠. 돈 많고 능력있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처럼 여성에게 매력적인 취업이 어디있겠습니까? 취집이라고 하죠.

  그렇게 여성들은 미모로 남성은 재력으로 서로에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자 합니다. 남성은 재력으로 여성을 쓰러뜨리고여성은 자신의 매력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그것을 허락합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거래(?)를 하기는 머쓱하니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관계를 미화시키려고 하지요. 이것이 자본주의적 연애가 되는 것인가요?

  남녀관계가 자유로워지면서 결혼이라는 연애의 주목적이 어느 덧 뒷전으로 밀리고 연애 자체가 목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연애가 그 자체로 쾌락이 되어버렸기에 사랑이라는 연애의 핵심요소조차 빠져버린 느낌입니다. ‘사랑해서 연애하나? 연애하면서 사랑하는 거지.’라고 하는 생각이 주류를 이룬 것 같습니다. 분명히 사랑 연() 사랑 애()가 결합하여 연애(戀愛)라는 단어가 성립되는데도 사랑이 연애의 가장 핵심은 아니게 되고 연애를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 쾌락이 연애를 하는 주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굳이 말하자면 오늘날의 연애는 남녀가 함께 하는 사랑놀이 쾌락게임 정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감정이 고조되면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 고조된 감정이 사그라들고 흥이 식으면 사랑이 식었다고 하여 이별을 합니다. ‘영화보고 차 마시고 밥 먹고를 기본코스로 갖가지 이벤트를 즐기는 것(섹스는 그것의 하이라이트일까요?) 그렇게 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곁들어짐으로써 더 즐거워지지만 참다운 사랑은 찾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연애의 실체가 아닐까요? 그러니 쾌락에서 시작하여 쾌락으로 이어지다가 냉정으로 끝나는 것이죠.

  심리학자의 말대로 남자가 요금(?)을 낸 만큼 여자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한다면 일종의 성매매가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창촌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거래처럼 (“얼마면 되겠니?” “오빠 00원만 내!” “오케이 대신 잘 해 줘야 돼?” “화끈하게 해 줄게”)이루어지지는 않아도 서로는 주고 받은 선물과 각종 혜택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게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선물과 서비스의 균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때론 이러한 균형이 깨져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느 남성이 올린 글입니다. 그는 여자친구를 극진히 위해 주었고 심지어 잠자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둘이서 여행을 갔지만 관계는 하지 않았다네요.)아껴주었는데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별을통고 받아 억울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최소한 관계라도 가졌다면 덜 억울하겠다고 하더군요. 여성 심리학자의 말대로라면 쓰러뜨릴 자격을 충분히 가졌는데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큰 손해를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여자에게 이용만 당한 호갱이고 되고 만 것일까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이 먹은 골드 미스의 사연 그녀는 골드미스답게 돈이 많아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내 주었고 잠자리도 물론 남자가 원하는 대로 응했지만 결국 버림받았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녀의 주장의 요지는 돈도 쓰고 몸도 줬다는 것입니다. 돈을 쓰지 않았거나 몸을 주지 않았다면 덜 억울해 하겠지요? 아까 그 남자처럼. 이번엔 선물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데 그걸 받지 않아 손해 봤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남녀관계가 마침내 대형사고를 가져왔습니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잠자리를 거부하자 17층 아파트에서(그의 집인지 그녀의 집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밀어 떨어뜨려 죽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끔찍하지요? 아니 세상에 섹스 한 번 안 해 줬다고 죽이다니요? 그것도 17층에서 밀어 떨어뜨리다니. 아무리 여자라지만 그것은 단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는 얼마나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했을까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여자를 들어 올렸다고 해도 그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질 법도 한데 그대로 던져 버린 극악한 범죄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것은 선물과 쓰러뜨림의 법칙이 극단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요? 그 남자는 자신이 준 선물이 충분히 그녀를 쓰러뜨릴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녀의 거절에 엄청난 분노를 느긴 것이 아닐까요? ‘뭐가 어째?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거절해?’라고. 여자가 왜 거절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자신이 받은 선물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컨디션이 안 좋아 거부한 것인지 그냥 내키지 않은 것이지) 그녀 역시 선물과 쓰러뜨림의 법칙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남자 자신도.

  오늘의 본문에서 근친상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엄밀히 말하면 성폭행인데 나중의 전개를 보면 근친상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인 다말은 배다른 오빠 암논에게 정식 청혼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피해를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이고 성폭행을 합법한 관계로 바꾸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관계를 요구당했을 때도 무조건적인 거부가 아니라 정식으로 교제를 하자고 했지요? 한 마디로 나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암논의 사랑은 쓰러뜨리기 위한 정욕적 사랑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자 곧바로 누이동생을 밖으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다말은 성폭행보다 그것이 더 나쁘다고 하소연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가씨들만 입는 화려한 옷을 찢어발긴 채 다말은 자신의 처소에서 죄인처럼 슬퍼하며 지내게 됩니다. 일반 여성도 아니고 공주인 그녀에게는 더 할나위 없는 모욕이었겠지요.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에서 오는.

  하지만 더 문제는 그들의 아버지 다윗이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일반가정이라도 이것은 매우 큰 사건인데 하물며 왕실에서 왕자와 공주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면 얼마나 큰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화를 내기만 했지만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암논을 불러 귀싸대기라도 때렸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근친상간 근친혼이 합법이라고 해도 왕자가 공주를 (그것도 같은 아버지를 가진 남매)정식 절차도 없이 범했다면 말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다윗 집안의 엄청난 비극을 연이어 가져옵니다. 다말의 친오빠(같은 엄마를 가진)압살롬에 의해 암논에 대한 피의 보복을 부릅니다. 다윗의 미온한 조치가 부른 또 다른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그로 인해 자신을 외면한 아버지 다윗에게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로 인해 다윗 왕가는 훨신 큰 풍파에 시달렸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후궁들을 백주에 범하는 패륜까지 저질렀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비극은 압살롬의 죽음과 반란의 진압으로 끝났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에 압살롬아! 압살롬아1 내가 죽고 네가 살았어야 하는데 내가 살고 네가 죽다니라고 부르짖으면서 가슴을 치고 통곡을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자식을 잘못 아낀 것이 결국 집안의 비극을 가져오고 두 아들을 죽이고 자신의 명예를 완전히 실추시킨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사랑 잘못된 연애문화가 가져오는 문제점이 결국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17층 추락사 사건은 그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모른 채 쾌락만 추구하는 풍토와 가치관이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받쳐준 종교적 기반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한 어떠한 가치관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기에 남은 것은 쾌락뿐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쾌락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끝없는 쾌락의 추구는 이러한 비극을 가져오게 됩니다. 쾌락에는 끝이 없습니다. 또한 완전한 만족도 없습니다. 적어도 쾌락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면 말이죠. 결국 욕망의 끝은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치 마약중독자의 끝이 인생의 파멸인 것처럼 자신이 파멸하거나 누군가를 파멸시키고서야 끝날.

  이래도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까? 삶의 절제로 길들여진 사람은 결코 그러한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쾌락이 절제에 의해 통제되어 적정수준을 유지하게 된다면 인생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쾌락을 주신 것은 바로 그러한 뜻에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남용하면 쾌락이 불괘로 변하게 되고 마침내는 삶을 파멸시킬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쾌락주의를 통제할 절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인간은 믿음으로 살아갈 때만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회복이 최종적인 해결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회복을 통해 쾌락주의에서 벗어나 절제된 쾌락에서 만족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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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삶을 믿음으로 채움으로써 쾌락주의에 의한 불행을 막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