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건물주!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12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사도행전 16장 12- 15절)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니까 4,50년 정도 되겠지요. 그 이전일은 기억이 희미해서 말씀드릴 수가 없고 그 후에는 세상이 바뀌어 상황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귀한 분을 집에 며칠이고 모시는 일이 흔했다고 기억합니다. 물론 흔하다고 해서 집집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가족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서 불평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대표적 교회 중 하나였는데 그 시작은 가정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에 와서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에서 여성들에게 묻자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장사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고 그것이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보통 가정교회라하면 목회자들의 가정에서 시작되기 마련인데 이 경우는 성도가 자기 집을 제공하여 시작되었으니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은 특이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등을 보면 당시에는 그런 일이 드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50년 전까지도 귀한 손님을 모시던 기억을 되새겨 보면 2천 년 전에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집이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이라고 여겨지기보다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 교회와 같은 방식으로 새롭게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공간을 제공하여 주어 그곳에서 교회가 출발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개척교회를 시작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매달 내는 임대료는 개척교회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설비야 중고품을 사서 또는 기부를 받아 좀 더 저렴하게 마련한다고 해도 임대료를 절약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방 도시에 가도 집값은 서울의 1/10이하라 할지라도 임대료는 잘해야 1/2 정도 수준이니 지방에서 개척을 해도 임대료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방식의 교회개척을 구상해 보았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이 방식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교회개척이 보다 용이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목사님들이 건물주가 되어 개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대료 문제는 해결 될 것이고 임대수익도 얻을 수 있으니 기본적인 생계문제도 해결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 건물주가 되는 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이런 반문을 해 올 분들이 많겠지요. 맞습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물주의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고 특히 저금리 시대에 있어서 건물주는 대단히 매력적인 직업(?)으로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임대료를 받는 것이 거의 일의 전부이니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것도 장점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겨우 주말에야 쉬는 직장인들에게는 꿈의 직업이지요.
하지만 건물주 =난공불락의 직업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건물주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이럴 때 늘 서울의 강남이나 적어도 서울근교에 있는 건물을 생각하여 자금의 크기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울이라고 해도 천양지차인데 하물며 다른 곳은 어떨까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장관이 서울 근교의 자기집이 5억이 안 된다고 했다가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근교는 고사하고 서울 안에도 여전히 3억이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서울에서도 3억 이하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면 지방은 어떨까요? 지방 소도시 읍단위의 장소라면 0자를 하나 빼도 좋습니다. 억 단위에서 천 단위로 내려간다는 것이지요. 믿어지지 않는다고요? 혹시 깡촌이 아니냐고요?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그렇지 않습니다. 청북 증편군 증평읍은 인구 2만이 넘는 읍(군청이 있는 곳)인데 그곳의 아파트는 새로 분양하는 곳이 아닌 이상 억을 넘지 않습니다. 심지어 2,3천 하는 곳조차 있고 4,5천짜리는 흔합니다. 증평읍에서 버스로 40분 이내로 시내에 도착할 수 있는 청주시의 경우도 인구가 85만의 대도시인데 아파트 가격은 1억 대의 아파트가 드물지 않습니다. (20-30평대)
아파트 시세로 건물 시세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소유하고 있는 안산의 다세대주택의 경우 시세가 10억을 넘지 않습니다. 현재 거주자는 13명이고 월세는 대략 300이 조금 넘는데 주변 아파트 시세는 청주보다 2,3배 정도 증평에 비하면 최소 7,8배는 됩니다. 이 정도면 청주나 증평의 건물 시세가 나올 것입니다. 같은 건물을 5억 정도에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지역의 특징에 따라 다르겠지요. 주거지역이면 좀 더 저렴하고 상업지구라면 좀 더 비싸겠지요.
또 시세에 해당되는 금액을 전부 지불해야 건물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주택이나 건물 아파트에는 대출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출금 잔액만큼 지불할 액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입니다. 게다가 건물의 경우 세입자가 지불한 보증금의 액수만큼도 차감하여 지불하게 되어 있으니 실제로 건물 구입에 드는 비용은 훨씬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부동산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면 ‘실입주금’ ‘실구입비’라는 항목이 있죠? 대출금 보증금 등을 전부 제하고 남은 금액이 실제로 주택이나 건물의 구입비인데 이것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거의 1/2이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실제 마련해야 할 건물 구입비는 훨씬 저렴해집니다.
이제 건물주가 되는 순서입니다. 자금이 풍부한 중대형교회가 개척교회 지원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지방의 중소도시나 읍에서 저렴한 건물을 구입하여 후보자를 공모하여 심사한 후에 건물을 개척을 원하는 목회자에게 제공합니다. 물론 월세 수입의 일부를 지원해준 교회에 건물 구입비로 다달이 지불합니다. 물론 자신이 사용하는 교회공간에 대한 월세는 내지 않습니다. 월세 수입의 일부를 유지비와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죠.
이러한 지원은 무기한이 아니라 3년이나 5년 정도를 정해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 안에 자립을 하도록 사전에 협약을 맺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도 자립이 어려울 경우 1년 정도 유예기간을 둘 수 있으나 대신에 제약조건을 부과하여 자립을 압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월세수입차감 등)일부 교단의 경우 지원이 너무 좋아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에 대한 별다른 노력도 없이 무사안일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기한을 정하면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한국교회는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신학생들이 배출되지만 그들이 교회를 개척하기도 부교역자로 사역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새로운 목회자들이 계속 배출되어 그들이 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이 세워져야 하는데 이러한 ‘인큐베이터’양육 방식은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중대형교회의 사명감이 얼마나 있는가입니다. 자체적인 성장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개척교회를 돕는 사업을 통해서 한국 교계 전체가 커진다면 우리나라 기독교의 쇠퇴를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월세수입의 일부를 나눠 받기 때문에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회수한 돈으로 새롭게 건물을 구입하여 같은 방식으로 다른 목회자를 지원할 수 있으니 지속성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계속해서 개척교회를 도울 수 있겠지요. 추가비용없이.
빌립보교회가 한 여성의 헌신에 의해 세워졌던 사실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미담은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몸집불리기보다 중소형도시 읍소재지 등에 작은 교회들이 불어나는 것이 훨씬 복음전파에 유리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런 개척교회에게 목회의 노하우도 전수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상생의 길이 아닐까요? 교계가 진지하게 이러한 것을 고민해 주기를 바랍니다. 뜻있고 능력있는 개인이라도 이것은 가능하니성전을 지어 바치는 마음으로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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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와 임대수익, 건물주, 증평읍, 청주시, 중대형교회, 인큐베이터 양육방식,
몸집 불리기,
기도 – 하나님! 교회의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새로운 방식의 교회개척을 통해 다시 한 번
부흥의 역사를 써갈 수 있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바꿔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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