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사람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계속 씨를 뿌리라’

닥터 양 2022. 3. 28. 10:23

사람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계속 씨를 뿌리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그 이름을 모르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위인전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 중 하나인 슈바이처 박사는 우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분이십니다.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며 존경받는 그는 노벨평화사을 수상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어떤 행사에 초청받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기차를 타고 간 그를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박사님이 1등칸에서 나오실 줄 알고 그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나왔지만 슈바이처 박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슈바이처 박사는 3등 칸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인물이 3등칸에 탔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내리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박사님! 3등칸에 타셨습니까?”라고. 아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자 박사님은 태연하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거야 4등칸이 없으니까요였습니다.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져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의 명성을 가진 사람이 3등칸에 탄 것도 화제가 되겠지만 그의 답은 슈바이처 박사가 얼마나 검소한 분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3등 칸에 탄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은 비용절약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아쉬웠습니다. 흑인원주민들에게 치료비용을 제대로 받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공짜로 치료하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담을 시켰지만 그것으로는 비용을 대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 청진기를 비롯한 간단한 의료장비를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의사들이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이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 이것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 가방을 가지고 기차 3등 칸에 탄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아 주었던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 환자를 돌보고자 하는  고귀한 마음으로 가득찬 슈바이처 박사의 숭고한 인류애가 엿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슈바이처 박사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살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그의 원래 직업을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파이프오르가니스로서 유명해졌습니다. 어려서 배운 파이프오르간을 배워 일찍히 유럽을 비롯한 서양세계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반주가 서투른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음악시간 반주를 대신 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병원의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학자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학문에도 뛰어나서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철하과 신학이었고 특히 오늘날까지도 그의 신학적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 위대한 신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입니다. 20대초반에 이미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자 한 30세에는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의사가 되고자 한다는 말을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않을 정도였죠. 심지어 그의 의대지망원서를 받은 의대에서는 정신 과진단을 받으라는 소견까지 냈습니다.

  그 정도로 그의 의대진학은 유럽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온갖 비방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더 이상 성공할 자신이 없으니까 도피처를 찾고 있다는 혹평도 따랐습니다. 실제로 슈바이처의 명성이 더 이상 공격받기 어려워진 오늘날까지 그러한 평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 명성을 올리려는 시도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가 자신의 분야에서의 성공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의사라는 전혀 다른 직업에 도전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명성도 올라가고 돈도 제법 들어오는 화려한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삶일가?’라고.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갖게 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 다툼이 일어나 몸싸움을 했습니다. 상대는 덩치가 훨씬 아이였지만 그는 거뜬히 상대를 쓰러뜨리고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였는데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죠. “냐도 너처럼 고기스프를 마음껏 먹었다면 이렇게 지지 않았어

  슈바이처 박사는 자신의 약점을 찔린 것처럼 아팠고 그것이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목사님이었던 아버지 덕에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고기 스푸란 조금은 사치로운 삶을 사는 자신을 나타내는 단어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슈바이처박사는 검소한 삶을 고집하게 되었고 어떠한 사치와 낭비도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그가 소명을 받게 된 것도 이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 그에게 세상적인 명성과 부는 절대로 충분한 만족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21살 무렵에 결심을 했습니다. 30까지는 이대로 살다가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을 받게 되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그리고 30세쯤에 아프리카에 의료선교사로 가겠다는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박사의 일대기를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쯤에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제 꿈이 의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난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갈거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론 그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지만 슈바이처 박사의 고귀한 삶에 대한 동경심은 유지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저는 원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아직도 우리가 가난한 나라였고 그래서 길에서 거지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굶어주는 사람들 돈이 없이 치료할 수 있는 병을 못 고쳐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산다는 소리를 듣던 시대였으니 제 형편을 짐작하실 겁니다. 심지어 저는 유치원도 나왔고 집에는 가정부가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리 나쁜 형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저에게 질병이나 기아의 문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아니 우리 집에는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데“ ”난 아파도 병원가기 싫을 정도로 병원에 가는데병약했던 저는 밥을 먹는 것이 힘들었고 병원에는 지겹도록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든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삶을 사는 제게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던 것입니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가라는 의식도 싹텄죠. 하지만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쓸데없는 생각말고 공부나 해라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날까지 그 쓸데없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 이어왔습니다. 제가 기독교에 입문한 계기 중의 하나도 예수님이 병을 치료해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을 먹이신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저는 희망을 본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말들이 이웃사랑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선물이나 과자 또는 결혼 등이 신앙의 입문을 가져왔다면 저 역시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는 슈바이처 박사처럼 위대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그분과 여러 가지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적 유복한 집안출신이라 가난에 대하여 몰랐다가 나중에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 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으로 삶의 만족을 얻지 못해 다른 길을 모색한 것 그리고 과거와는 어느 정도 단절한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 이런 것들입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그렇듯 제가 학문을 길을 간 것은 결코 제 자신의 순수한 의지는 아니고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처럼 저도 회의를 느꼈다고 해야 합니다.

  그가 그렇듯 저 역시 기독교적 소명을 통해 제 길을 수정했습니다. 유학생활 후반기에 들어서며 회의를 느끼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형식적 신앙에 머물러 있던 저에게 그것은 삶을 바꾸는 결단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소명을 거부했죠. 학자로서 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든 제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주님의 사역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만이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위대한 삶도 저의 보잘것없은 삶도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의해 지금까지 왔음을 인정합니다. 둘다 다른 계획을 세워 살아갔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오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내 모습을 저는 젊었을 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적어도 30세에는 결정을 했으니 저보다는 이른 편이지요.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슈바이처박사는 자신의 길을 걷다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저는 일부러 노벨평화상을 받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진로를 정했을 때에는 노벨상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있었더라도 그것을 일부러 노리고 아프리카에 가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노벨평화상을 꿈꾸도록 한 것이 슈바이처 박사인 것은 물론입니다. 어려서 가졌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분과 저는 인류의 행복 평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살게 되었기에 자신이 가려던 길을 과감히 바꾼 점에서도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그런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왜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낭비하느 이유는 그러한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의미를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즐거울까?(재미있을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술 오락 쾌락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단 그런 삶을 살면 그것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모든 것을 그런 것에 집중하게 되어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최근 빌게이츠의 이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등과 함께 IT혁명을 주도한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며 세계적인 거부인 그의 삶은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매우 처참했습니다. 절은 시절에 세계를 뒤흔드는 혁명을 일으킨 그이지만 더 이상 자신의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어느 덧 쾌락에 빠져 살아온 것 같습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방탕한 삶을 살 던 그에게 아내는 결국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반면 스티브잡스는 죽어가는 날까지 혁신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물론 그가 일찍 세상을 떴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 꿈을 찾아 살아라는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췌장암을 앓고 있던 그이지만 여전히 꿈과 희망에 가득차 있었기에 표정에는 열정이 느껴집니다. 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회사에 펩시콜라의 CEO 존 스컬리를 스카웃 할 때의 일입니다. 이미 얻을 것을 다 얻었다고 해도 좋은 존 스컬리에게 이제 떠오르는 벤처기업 애플로의 전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선택입니다. 우리로 치면 삼성전자의 CEO가 중소벤처기업으로 전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스티브잡스의 한 마디에 그는 결단을 내립니다. ”평생 설탕물이나 팔겁니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신의 대열에 참가하겠습니까?“

  저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평생 평범하게 즐거움이나 추구하며서 의미없는 살에 매달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마음으로 매일 설레이는 삶을 사시겠습니까?“라고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과연 어느 것일까요?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늦었다고요? 모세는 80에 이스라엘민족을 이끌었습니다. 강태공은 70의 나이에 세상에 나와 천하를 평정하고 제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80이 안 되었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강함을 가져옵니다. 약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할 것이고 그분은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꿈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한다면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소망을 찾아내어 그 길을 가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소명을 받고자 하십니까? 여러분은 어쩌면 이미 받았을지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여러분의 영적 안테나를 높이 세운다면 지금이라도 소명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마 그것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받았던 아니든 소명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기도와 간구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하게 바랍십시오. 언젠가 반드시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때론 말로 된 음성으로 또는 세미하게 들리는 신호로 또는 성경말씀이나 설교 주변 사람의 충고 등의 형식을 가진 레마의 소리로 들려올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를 실현하여 감으로써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명을 실현하여 감으로써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