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미 ‘나를 보내소서!’

닥터 양 2022. 3. 3. 07:53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미 나를 보내소서!’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가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

 

 ‘특명전권대사우리가 흔히 대사라고 부르는 외교관의 정식 명칭은 바로 이것입니다. 엄청나게 멋진 이름이지요? 전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특별한 명을 받고 파견되는 대사라는 의미이니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직책이라 할 수 있죠. ‘하나님의 대사의 저자 김하중 선생님은 자신은 두 나라의 대사라고 자부하셨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로서의 대사이기도 하지만 하늘나라를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라는 직책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대사란 그런 것입니다. 김하중 선생님은 하나님의 대사라는 막중한 소임을 잘 소화해내신 신앙인의 귀감입니다.

  한 나라가 대사를 파견할 때도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전권을 위임하여 그가 본국의 훈련에 맞춰 소신껏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전장에 나간 장수는 왕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장이라는 급박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곳에서 왕의 명령을 일일이 듣다가는 승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대사도 현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황에 일일이 본국의 지시를 받으며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권을 위임받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전화 이메일과 같은 편리한 통신수단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도 그러한 특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대사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셔서 보내실까요? 엘리야 엘리사 등 구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사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능력을 받아 이적과 기사를 행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명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임을 증명하여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을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는 무려 66(성경권수와 일치)에 달하는 최고의 예언서 이사야서의 저자이기도 한 대선지자입니다. 그는 엘리야나 엘리사만큼은 아닐지 모르나 나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에게 7번 요단강에서 목욕하라는 지시를 내려 그의 병을 고칠 정도로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물론 그가 가진 능력은 자신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명전권대사의 전권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특명전권대사인 선지자를 보낼 사람을 찾고 계실 때 이사야는 망설임 없이 저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가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쳐 그랬을까요? 성경에 그에 대한 답은 적혀 있지 않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 자신도 아마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고 그랬을 것임이 명백합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대사들 중에 세상적으로도 뛰어난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300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승전한 기드온은 엄청나게 소심한 사람이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여러 번 하나님을 시험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괴력을 자랑한 삼손은 어떻습니까? 그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것을 어리석게도 여자의 꾀임에 빠져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죽음의 두려움에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기드온, 삼손, 베드로 모두가 세상적으로 인정받을 인물들이 아닙니다. 물론 사도 바울과 같이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뛰어난 인물도 없지는 않으나 오히려 소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기준으로 자신의 특명전권대사를 고르실까요?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처럼 저를 보내소서하며 주님의 부르심에 자원하거나 최소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지자는 아니지만 다윗의 경우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하나님께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윗에 가까운 왕은 칭송을 들었고 반대라면 책망이나 징벌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칭송을 들은 것은 오직 하나 그가 하나님에게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도 허물과 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죽도록 하는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대왕인 사울이 자신의 죄를 감추고 합리화시키기 급급했던 것과 달리 그는 죄를 인정하고 눈물로 회개를 하여 용서를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자신의 정적인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일 수 없다.’고 하며 그의 처분을 여호와께 전적으로 맡김으로써 순종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포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야. 그런 것은 더 훌륭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의 몫이야. 사도 바울도 다윗왕도 얼마나 훌륭해? 내가 감히 그 사람들처럼 나서다니 말도 안 되라고 스스로를 단정 짓고 포기하셨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권대사를 아무런 능력도 권한도 없이 파견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마음을 가진 것 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환영하며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비판에 대하여 저들을 침묵시키면 저 돌이 외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침례요한은 하나님은 저 돌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드실 수 있다고 하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에 우쭐대며 교만에 빠진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분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무소불위의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그런 든든한 분이우리의 상사인데 우리가 무기력하게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러니 자신이 아니라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심에 순종하도록 합시다. 능력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저는 요즘 기도 가운데 엄청난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나라의 믿음의 기초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세계로 뻗어나가는 나라로 만들어 선교대국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태평양 그리고 남북아메리카에 이르는 엄청난 넓이의 지역에 선교를 할 선교대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위해 일하라고 하십니다. 제 자신을 바라보면 가당치도 않는 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그런 능력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책임만 지어주고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상사나 고용주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경험으로도 지식으로도 확신하기에 그런 것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말이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여겨지십니까? 하지만 기독교는 바로 그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종교이며 희망의 종교입니다. 믿음이란 결코 검증이 된 일만 믿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는 것조차 믿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까요. 저와 여러분이 그런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명에 저를 보내소서라는 말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