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복음의 가치 ‘축복에 참여하기’

닥터 양 2022. 3. 1. 07:07

복음의 가치 축복에 참여하기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 전서923)

 

   지난 10여년 간 저는 전도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이른바 전도라는 활동을 하지 않았을 뿐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권면하는 전도는 하였지요. 주로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전도를 나름 하던 제가 대형교회를 다니면서 전도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를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물론 핑계에 불과하지요. 전도는 영혼 구원을 위한 활동이니 교회규모가 크니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니까요.

  마음속에서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면서 살던 저는 오랜만에 노방전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하나님께서 저를 강권적으로 이끄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에서 개척교회 수준의 교회로 옮긴 것과 제가 참가한 영성훈련프로그램의 과제로 하루 한명 전도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저를 노방전도에 나서게 하였습니다. 수십만의 교회에서 성도도 거의 없는 교회로 옮겼으니 당연히 전도의 압박을 받았는데 숙제가 떨어지니 도리가 없었습니다.

  노방전도를 하면서 저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할 때와 너무나 다른 반응 때문입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전도활동이 많은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행복전도(고생하지 않고 하는 전도)거의 예외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탄이 역사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전도를 달갑지 여기지 않기 때문에 전도자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비난과 반발 냉소 등은 어차피 전도자가 각오해야 할 시련이라는 점을 제가 모를 리가 없죠.

  하지만 너무나 달라진 상황에 부딪히며 저는 엄청난 절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전도지나 전도책자를 그냥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분들이 제법 계시더군요. 예전에도 간혹 그런 분이 있었지만 요즘은 예외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제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ㄴ다. 물론 코로나 19로 인해 조금 더 예민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좀 심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주님께 뜨겁게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주님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사람들이 왜 이렇게 강팍해졌습니까? 아무리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예민해졌다지만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제 마음은 더 뜨거워졌습니다. 환경과 과제 때문에 타의로 시작한 전도이지만 기도하면서 점점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 영혼 구원이라는 사명에 대한 열정이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믿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불신자야 그렇다고 쳐도 믿는 사람들이 전도하는 저를 달갑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에 오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기보다는 저희교회 목사님의 저서를 들고 나가 읽어보시도록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책에 목사님의 연락처가 있고 또 주보를 함께 드리면서 마음이 움직이면 오시도록 권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강력하게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부디 어느 교회든 좋으니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지나친 교회홍보가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신다는 분들의 태도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으셨습니다. 입신하여 천국에 십수 차례 다녀오신 목사님의 저서는 천국에 대한 확신을 주는 내용이라 믿는 사람들에게는 큰 은혜가 될 것이기에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드리면서 그럼 은혜받으세요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대부분이 손사래를 치더군요. 제가 드리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에는 눈살을 찌푸리시기도 합니다. 왜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태도를 취할까요? 어린 아이에게 책자를 주면서 부모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책자를 던져 버리고(아이의 말에 의하면 교회 다닌다고 합니다)마치 저를 악한 사람인 냥 쳐다보며 애를 데리고 총총히 떠나 버리시더군요. 저는 한동안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뜨겁게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저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들이 지옥가야 하는 것이 마음 아픔니다.’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믿음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니 제 속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못해 시작한 전도가 도리어 저에게 영혼구원에 대한 뜨거운 사명감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제 기도의 내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망이 중심이었던 제 기도가 나라와 민족을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사탄의 강력한 역사의 결과이겠지만 우리들 모두가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주의 쾌락주의 편리주의라는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영적인 욕구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를 혐오하며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이웃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은 바로 잘못된 가치관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새삼 전도의 가치를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전도는 교회 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구하려고 하는 가장 소중한 우리들의 의무라는 생각으로 전도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가야해 생명을 살리는 이 길을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나는 달려 가야해”(조환곤 작곡 선교에서) 라는 찬양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전도를 하면서 느낀 또 하나의 사실은 사람들이 내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신 적 있냐고 여쭈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리 다르지않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내민 책자에 대한 거부감을 그들은 숨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저희 목사님이 거짓말쟁이라도 되는 냥 비난을 퍼붓습니다.

  저는 이분들의 믿음의 기초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내세를 믿지 않고 천국을 부정한다면 과연 그들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심판과 구원이 신앙의 전부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는 기독교가 과연 기독교일까요? 아니면 그저 좋은 인생철학의 하나인가요?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예수님의 대속과 죄에서의 구원 그리고 영생이 아닙니까? 그것을 부정한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철학에 비해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패악한 세상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살다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는 영혼들을 우리는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사명이 아닐까요? 전도의 가치는 교회성장이 아니라 바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영혼 구하기에 전심전력을 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