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 주는 찬양 ‘노래로 찬양하기’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시편 147편 7절)
여러분은 신앙생활의 4대 요소라 할 말씀 기도 찬양 전도 (+예배:이 네 가지를 합한 것) 중에서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저는 찬양입니다. 재미 삼아 생각해 보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찬양이고 제일 하고 싶은 것(좋고 싫고를 떠나)이 기도입니다. 하지만 가장 자신있는 것이 말씀인데 그것은 제가 직업상 강단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해야 한다고 압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결국 우리는 전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고 그래서 전도를 가장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찬양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부끄럽지만 인간적인 취향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 백성은 찬양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찬양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신앙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호흡있는 자마다 다 찬양할지어다 고 시편에는 적혀 있으니 우리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도 우리는 남에게 칭찬을 받을 때 가장 기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찬양을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느끼십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에 대한 저의 열정 때문에 찬양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을 느낌니다. 제게 음악은 마음의 식량입니다. 음악 없는 삶을 생각하기조차 싫을 정도입니다. 대학시절 저는 방학이 되면 아침 9시에서 밤 9시까지 (그 이전과 그 이후는 소음문제 때문에 자제)음악을 들으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LP를 이용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니까 LP또는 카세트 테입을 교체해 가면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해도 조금도 질리지 않았을 정도로 저는 음악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은 같아요) 가끔은 콘서트에 가서 생생한 음악을 감상하면서 음악의 즐거움에 빠져 보기도 했습니다. 저의 삶에서 음악 독서 스포츠 관람은 행복을 주는 3대 기둥이었죠.
하지만 찬양에 지금처럼 열을 올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예전에도 찬양에 바져 지낸 적이 있지만 세상 음악과 함께 즐겼습니다. 가요에서 팝송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는 제게 찬양은 그저 한 분야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을 경배한다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그저 나를 기쁘게 하는 즐거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저는 찬양에 대한 진정한 감동과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좋아하던 세상 음악이 더 이상 기쁨이 아니게 되었고 요즘은 오직 찬양만 듣고 부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찬양은 가장 하고 싶은 신앙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찬양을 올리고 나서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가 그만 찬양에 빠져 2,3시간 찬양만 부르다가 너무 지쳐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한 후에야 겨우 기도를 하게 된 경우조차 여러 번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기도를 하기 전에 부르는 찬양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기도는 가장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하고 싶다는 말은 좋아서가 아니라 하면 내게 유익이라는 의미입니다)기도시간을 줄이지 않고 싶어서입니다. 찬양이 너무 뜨거워져 기도가 어려워지면 바로 찬양을 중단하고 기도로 들어가죠. 가끔은 몇 시간이고 찬양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것 정말 꿀맛 같은 시간이죠.
찬양은 노래로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침체되면 제일 나타나는 현상이 기도를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양 손을 모으기가 너무 어려워 마치 두 손 사이가 태평양처럼 넓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찬양을 부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에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 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저만의 방법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노래할 기분이 아니시라고요?) 제겐 찬양이 힘을 가져다주는 비타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찬양이 소홀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도회나 예배 등을 시작하기 전에 이른바 ‘준비찬양’을 하면서 마음문을 여는 것이 전통처럼 되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찬양은 기도와 말씀에 밀려 뒷전에 놓여 버리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분명 찬양을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고 적혀 있는데도 마치 기도와 말씀을 위하여 사용되는 준비 수단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준비찬양’이라는 말 자체가 오해를 불러옵니다. 찬양이 마치 애프타이저인냥 느껴집니다. 하지만 찬양은 분명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니 ‘메인디시’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찬양’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가끔 무대에서 찬양을 부르는 상상을 합니다. 예전에 그토록 노래가 좋아 목이 쉬도록 연습을 하면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저를 상상한 것처럼 지금은 찬양을 부르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조금 걱정되는 것은 제자신이 그 영광에 취해 하나님을 잊거나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은 특송을 부르며 준비를 합니다.
요즘 즐겨 부르는 찬양 중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김수진 찬양사역자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이 곡을 매일 여러 번 듣고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나 건강하든지 병약하든지 십자가 사랑 부인할 수 없네” 참으로 감동적인 가사 아닙니까? 이 곡을 듣고 부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고맙고 고마워서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외면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제 곁에서 저를 사랑해 주신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오랫동안 혼자서 외롭게 살아온 저에게 하나님은 유일하게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야 할 분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시간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저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그 시간은 그 어떠한 관계에서도 느낄 수 없는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그런 저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해 드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언젠가 모두와 함께 그것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젊어서 열심히 노래 연습한 것이 이 때를 위한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찬양의 산 제사를 드리는 것에 보람을 느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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