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짐과 멍에를 집시다. ‘기쁨으로 가득한 마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나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 (히브리서12장1-2절)
사람들이 하는 염려의 92%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우주인이 쳐들어 오면 어쩌나 하는 그야말로 황당한 염려조차 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면의 평안을 누리기가 어렵고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를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이러한 염려 그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염려가 얼마나 헛된 것이며 따라서 하루속히 벗어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평안과 기쁨만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방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해서 새롭게 된 삶의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필요없이 많은 것을 챙겨가려고 하면 여행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염려와 근심 때문에 꾸역꾸역 짐을 챙겨 떠납니다. 그 무게 때문에 정작 여행을 즐길 수 없고 결국 불쾌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돌아오게 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아닙니까?
진리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지지 않아도 되는 짐을 내려놓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소중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것을 내려놓고 삶에서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사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지기 쉽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 이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말씀은 결코 우리가 아무런 짐도 지지 않고 빈 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에 짊어졌던 짐과는 다른 새로운 짐을 지게 되고 또 다른 멍에를 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짐과 멍에는 예전의 그것과 달리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지 않고 도리어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에 가볍고 지기 쉽습니다.
그 짐이란 바로 믿는 자의 사명과 그에 따른 고난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아무런 고통도 고난도 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언 듯 보면 그것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할 길처럼 보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어리석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고 한 바울의 말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래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남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거야! 각오는 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에서 주인공 시즈끄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 잘하고 착실한 모범생 시즈끄는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달림으로써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가족들에게 멀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 모두의 걱정을 사게 됩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불러 사정을 듣게 되는 데 아버지의 이 말은 그 결론이었습니다. 시즈끄의 답은 물론 예스였고 가족들은 그녀의 삶을 인정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어린 소녀의 작은 변화도 주변과 충돌하게 되는데 하물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동행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는 짐작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길을 가게 된다면 그것은 예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됨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즈끄가 느꼈던 만족감이 그녀를 성적하락이라는 손해를 감수하게 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게 하였어도 그녀가 그것을 밀고 나간 것도 그러한 감격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시지 않으실 수 있었던 것은 그로 인해 구원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에 품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지었던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짐과 멍에를 기쁜 마음으로 지도록 합시다. 그것이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고 더 힘들어 보일지 모르나 참된 기쁨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한결같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 사로잡힌 인생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삶이며 그의 짐과 멍에는 가볍고 지기 쉬운 것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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