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하루를 천년처럼 ‘날을 계수하며’

닥터 양 2022. 1. 1. 16:39

하루를 천년처럼 날을 계수하며

 

우리에게 우리를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12일에서 시작해 무한도전으로 끝난다누군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말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2일도 무한도전도 거의 본 적이 없는 제게 이 말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대충 의미는 이해했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말이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무한도전이나 12일 제작자들에게는 대단한 민폐이긴 하나 아마 두 프로그램이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데 큰 힘(?)이 되나 봅니다. (다시 한번 제작자 여러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결코 고의가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시간이란 수돗물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수도꼭지를 열면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그것을 계획적으로 쓰지 않으면 물을 낭비하게 되는 것처럼 시간도 마찬가지로 그냥 흘려 보내면 모두가 낭비가 됩니다. 다르다면 수돗물은 꼭지를 잠그면 낭비를 막을 수 있지만 시간은 잠글 벨브가 없으니 낭비하기가 좀 더 쉽다는 것이죠. “Time is money”(시간은 돈이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돈이라 할 정도로 소중한 것이지만 의외로 우리는 그 아낌없이낭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입으로는 바쁘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과연 자신이 의미있게 시간을 보낸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막을 방법은 하나입니다. 미리 계획을 세워 두는 것이죠. 수도꼭지를 열기 전에 물을 어디다 쓸지를 생각해 두면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고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미리 계획을 만들어놓으면 효과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계획하지 않은 시간의 공백이 생길 때도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른바 플랜B’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계획은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생각해 봅시다. 계획이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세울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목표가 없으면 세우기도 어렵고 설령 세운다고 해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목적지가 없이 차를 끌고 나갔다고 치죠. 그럼 과연 차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리저리 다니다가 오겠지요. 물론 그것도 하나의 계획이라면 계획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기분을 풀기 위한 드라이브로 차를 끌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이 제법 효과가 큰 것 같기도 합니다. 눈앞의 환경이 바뀌면 막혔던 관이 뚫리는 것처럼 기분이 풀리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조차 없이 나간다면?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면 그것은 삶에 있어서 생각 철학 목표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속된 말로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계획이란 뻔합니다. 평소에는 일을 하고 휴일에는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그만입니다. 12일이나 무한도전은 바로 그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아니 즐겁기 때문에 보기도 하지만 계속 보다보면 그것에 중독이 되어 즐겁게 느끼게 되니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럼 시간은 잘 가게 되겠지요. 텔레비전이든 컴퓨터이든 다른 것이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중독시켜 마냥 시간을 보내게 하는 수단은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효과적인 시간활용법일까요? 앞에서 인용한 내용의 저자는 주말 시간을 잘 활용하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주말 2일의 시간은 48시간입니다. 평소보다 더 잔다고 해도 10시간씩 잔다면 28시간이 남습니다. 거기에 식사시간 휴식시간 등을 10시간으로 잡아도 18시간이나 남습니다. 그중 10시간을 의미있게 보낸다고 하면 152주면 520시간이 됩니다. 요즘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일반화되었죠. 1만시간을 투자하면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고. 그럼 20년을 한 가지에 분야에 투자하면 1만 시간이 넘으니 자신이 하는 일 외의 전문분야가 하나 태어납니다. 보통 첫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40대 후반이 될 때쯤에는 다른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이죠. ‘사오정(45:45세 정년)’이라는 말처럼 이 시기는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나기 쉬운 시기이니 딱 좋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해 볼 만한 것이지요?

  물론 실제로 이렇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여러 가지 수단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큼니다. ‘정주행이라는 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정주행이란 텔레비전 드라마같이 오랜 시간 이어지는 문화콘텐츠를 연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을 말하는 정주행이 저같이 최신유행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알려진 것은 그만큼 그것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겠지요. 문화콘텐츠 사업을 제2의 인생의 아이템으로 삼지 않은 이상 이것은 그냥 시간을 물처럼 흘려보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지 않겠습니까? 드라마 하나가 보통 2,30회는 하니까 주말에 2,30시간을 정주행하면 그걸로 주말의 여가시간은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말처럼 우리에게 시간을 보내야 할 목표 목적이 부재함을 의미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드라마를 다시 보기를 통해 본 적은 많지만 정주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에 2,3편 정도 보는 수준이었죠. 그렇게 드라마에 10시간씩 투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겐 삶에 대한 목표가 확실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릴없이 누워서 텔레비전의 리모콘을 돌리는 모습은 제 인생에서 어릴 때 빼곤 없었습니다. (그때는 리모콘이 없고 채널을 돌렸지만)수도물을 틀 때 쌀을 씻거나 머리를 감거나 하는 식의 계획이 없다면 또 그것을 위해 밥을 한다든지 샤워를 한다든지의 폭표가 없다면 물이 그대로 낭비되는 것같이 시간도 목표가 있어야 활용이 효과적인데 목표를 정할 생각이 철학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예전에 비하여 학력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대학졸업자가 태반을 넘김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공부를 오로지 성적과 대학입시 취업의 수단으로 여기고 틀에 박혀 학창시절을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진학도 결국 적성이나 꿈이 아니라 점수에 맞추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니 인생이나 자신에 대한 성찰은 무의미합니다. 직업도 마찬가지로 기준은 수입과 대우에 집중되어 있으니 이 역시 고민이 필요없죠. 어려서부터 틀에 짜여진 공부를 하고 점수와 수입에 맞춰 진학과 취업을 하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생각이란 실용적인 범위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일본의 경우 이와나미(岩波)출판사의 문고의 매출이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1/3이상의 규모입니다. 이와나미 전체라면 얼마나 될까 궁금하네요. 거의 절반 아닐까요? 우리나라에는 이와나미 출판사에 해당되는 전통과 규모의 출판사가 있기는 할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는 이와나미와 맞먹는 출판사들이 제법 있습니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책 시장 이야기를 하냐고요? 책이란 생각을 상징합니다. 그럼 이런 반론을 하실 겁니다. “그래서 일본이 우리보다 낫나?”라고. 물론 현실적 기준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이 낫다고 해서 그게 정말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본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어느 일본인 저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국이 몰락해서 이런 거라면 우리도 몰락했으면 한다. 몰락했다는 영국인들의 삶에서 느끼는 여유와 행복감이 부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을 그런 시각으로 본 적이 있기는 하나요? 그저 눈에 보이는 효율에만 눈이 어두어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크리스천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여러분은 믿음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성경을 읽으라 기도를 하라고 하면 시간없어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정말 시간이 없나요? 정말 24시간 타이트하게 짜여진 삶에서 허덕이고 있기에 그런 시간을 낼 수 없습니까?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은 그런 핑계에 대한 통렬한 비난을 합니다. 너무 바쁘기에 기도한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을 통해 매출을 올리기 위한 제목이 아닙니다. 실제로 내용이 그렇습니다. 너무 바쁘니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이 두려워 더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요? 제 경험으로는 사실입니다. 직장생활이 타이트 해서 힘들면 기도가 더 나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해 실업을 하여 시간이 물처럼 넘칠 때는 기도가 잘 안 됩니다. 왜냐고요? 절박하지 않으니까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갖가지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더 커지나 실업자가 되면 그것이 사라지고 여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역설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기주의자라 기도합니다라고. 이기주의자와 기도는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야 소원이 이루어지니 합니다. 거기에 주변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없애려니 기도합니다. 골치 아픈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싶으니 기도합니다. 왜냐고요? 이기주의자이니까 내가 편하려고 하는 생각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기도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죠.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있으면 기도합니다. 그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것이 짜증나니 어서 해결되기를 바래서입니다. 절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편안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뉴스에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기도합니다. 그런 이야기 때문에 불편해진 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편할 수가 없겠죠. 그러니 기도해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절대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편하자고 기도하니 이기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니 편하고 싶어 기도합니다.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텔레비전을 생각없이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정주행이라는 해괴한 방식의 시간낭비를 하는 이유는 그런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이 없어서이고 계획이 없는 것은 신앙에 대한 열정 나아가 믿음 자체가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기주의자라도 믿음이 있어 자기 편하자고 기도합니다.

 바쁘면 바쁜대로 어떻게든 시간을 내세요. 여러분의 아버지가 재벌 회장인데 전화하면 10억이든 100억이든 보내준다고 하는데 바빠서 전화못해요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의 아버지는 재벌회장이 아니라 그 보다 더한 사람도 못 당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통화입니다. “아버지 저에게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는. 또는 사랑하는 연인입니다. 보고 미처 죽을 정도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시간이 없다고 전혀 전화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그것은 비정상이거나 사라하지 않는 증거일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하고 말 겁니다. 자식에게도.

  오늘의 필자는 오늘 하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에 딱 좋은 나이야'라는 노래가 있죠. 오늘의 필자는 “오늘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목적으로 가득한 삶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날이라고 합니다. 왜 오늘이냐? 내일이라고 하는 순간 그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시작하지 못한 일을 내일이라고 시작할 수 있습니까?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일본 초콜릿회사 광고가 있었습니다. “오늘 먹고 싶은 초콜릿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미루다가는 살은 절대 못 빼고 기도도 언제 시작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루의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간은 만들 수 있고요. 문제는 그것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의지 뿐입니다. 저는 10시간씩 일터에서 지내면서도 하루에 7,8시간을 기도에 쓴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절박함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박해도 믿음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1분도. 믿음이 있어도 과감히 시간을 낼 의지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의지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생깁니다. 결국 믿음이 가장 중요하죠. 구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믿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하나님이 있기는 한 거야?’ ”기도한다고 들어 주겠어?“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이 어렵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3040년 이렇게 말고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시면 어떻겠습니까? 오늘 하루 경건의 시간을 갖겠다. 오늘 하루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이런 각오로 사신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하루 하루가 쌓여 일 년이 되고 나아가 인생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날짜를 잊을 정도로 아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흘려 보내는 사람에게는 하루는 한시간만도 못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어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는 하루가 천년같이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주안에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그냥 시간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루가 천년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이죠.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이 영화의 테마는 자유를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라고 하지만 다른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넌 유죄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억울하게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고 수감중인 주인공 스티브 매퀸은 이런 악몽을 꾸었습니다. 그는 원래 금고털이 전과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이란 그저 때우기 위한 공백이었으니 목표나 생각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또 그런 삶을 사니까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도 탈옥을 위해 집요하게 싸우는 동안 탈옥이라는 목표가 생겼고 그것을 위한 노력은 그의 탈옥 후의 삶을 다르게 했겠지요.

  여러분은 탈옥수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었으니. 그런데 탈옥수도 가진 목표나 꿈이 없이 인생을 낭비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인생을 낭비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불러 어둠 속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처지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어느 분이 어린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그렇게 종이 낭비하면 죽어서 지옥에서 종이줍기 하는 일 평생 해야 한다. 인생을 낭비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벌을 줄까 궁금하신가요? 몰라도 됩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실 거니까. 내일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이 기다리시는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 D-day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것을 몰라도 될 정도로 주님이 주신 소중한 오늘 하루를 주님 기뻐하시는 날로 만들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