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시고 우리는 가지라 ‘대림절 첫째 주일’

닥터 양 2021. 11. 28. 07:23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시고 우리는 가지라 대림절 첫째 주일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장 12절)

 

사랑할 수 있는 행복에의 감사’ (양의모)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넌 모를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러니까 넌 행복한 거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랑하게 되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넌 모를 거야

그런 행복을 준 너에게 감사해

 

사랑이 깨져 헤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사랑해 준 것 고마워 오래오래 간직할게 난 너 때문에 행복했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할

사랑하게 해 줘서 고마워 너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원히 간직해도 괜찮겠니?

 

사랑하는 것은 운명 사랑받는 것은 의무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속되니까요

사랑받는 의무를 잘 지켜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사랑하게 해 줘 감사해요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그것이 자식이든 배우자든 애인이든 친구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김세환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란 노래처럼 우리는 그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집니다. 물론 그것이 때론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일단 사랑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서는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행복바이러스를 퍼트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행복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바로 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해준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상대에게서 온 것임을 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상대가 없다면 그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상대에 대한 감사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해 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내가 너를 사랑한 걸 고마운 줄 알아이런 말이라면 얼마든지 들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사랑을 하는 마음이 행복하다면 그 사랑을 하게 한 상대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는가요?

  저는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 사랑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을 하게 되면 고통도 따랐습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런 면이 1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를 힘들게 할 정도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만일 고통이 있다면 그것이 제 자신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상대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상대가 자식들입니다. 예전에 저는 아이들이 아빠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서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행복하니 너희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하는 생각이 드니 불평을 하기는커녕 감사가 쏟아지게 된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살아 있어서 고맙고 건강하게 커줘서 고맙고 함께 있어줘서 고맙단다." 이것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자식이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인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사랑이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사랑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물론 사랑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까? 만일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사랑으로 생기는 많은 어려움의 대부분이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이 엇갈려 생기는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스토커가 왜 생기나요? 상대가 정성을 다해 사랑해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 아닙니까?

  만일 그게 간단하게 된다면 그냥 사랑해주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하지만 그게 쉽습니까? 정성을 다한다고 사랑하게 됩니까? 그렇지 못하니까 사랑의 엇갈림이 일어나게 되고 그래서 우리는 괴롭습니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도 자식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아무리 정성을 다 해도 상대가 무조건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습니다.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주어도 상대가 냉정하게 굴면 아픕니다. 이런 엇갈림은 사랑하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우리의 사랑에 반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우리가 그분이 주시는 사랑의 빛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그분의 사랑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조건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그 분과 동행하고자 하면 됩니다. 참 쉽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랑과 다르지 않겠지요.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빛나게 합니다. 그분은 빛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풍성한 포도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참 포도나무는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시니 가지들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낌없이 찍어서 던져 버리시리라라는 찬양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태양과 태양계의 행성들과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태양이 빛을 내기 때문에 그 빛을 받아 우리가 빛을 발합니다. 만일 태양계의 행성이 태양에게서 멀어진다면 빛을 발할 수 없게 되겠지요. 빛을 발한다고 해도 멀어진다면 그 빛이 약해집니다. 태양과의 거리와 빛은 반비례합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워질수록 빛을 발하고 멀어질수록 빛이 약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와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예수님과 가까워지고 싶어질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곧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까워질수록 그 사랑은 더 커지고 그래서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선순환이 일어나 결국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하면 상대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약한 것 즉 예수님을 그다지 또는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성경을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일 때문에 피곤해서” “찬양을 하고 싶은데 노래에 소질이 없어서우리는 이런 핑계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합니다. 마치 결혼하지 수십 년이 되어 서로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함께 하기조차 꺼려지는 배우자를 대하는 것처럼 하면서 핑계는 그럴듯하게 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는 열심히 보고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새우고 친구와 수다 떠느냐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해외여행으로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은 왜일까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제가 예전에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제법 읽었고 찬양도 좋아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전히 세상과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있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도리어 지금은 일하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주님과 교제에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들입니다. 

  오늘의 필자는 과거에 정전으로 인해 어둠에 빠졌던 일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빛의 근원이심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빛이 있기에 우리가 빛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하며 예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상대가 그것이 자식이든 이성이든 친구이든-있기에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처럼 예수님이라는 빛이 있기에 우리가 빛날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떠난 우리는 포도열매도 맺을 수 없고 빛도 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과 함께 하면 우리는 사랑도 빛도 가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며 진정한 마음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 기쁨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빛만이 우리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근원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가깝게 더 가깝게 지냄으로써 참다운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