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물질인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경제가 나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1990년대 중후반에 일본 경제는 장기적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돈이 돌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급여를 받아 이를 다른 곳에서 사용하게 되면 그것이 소득이 되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불되고 그들이 또다시 어디선가 그 돈을 쓰면 또다시 소득이 발생하는 과정이 무한 반복되며 경제는 유지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당시 일본은 그러한 흐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기에 침체에 빠집니다.
그 이유는 버블경제의 붕괴였습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의 가격이 상승하며 일본은 ‘엔고불황’에 시달렸고 이를 해결하고자 저금리 정책을 써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일단 성공하였지만 문제는 저금리 정책이 이어지자 돈이 지나치게 시중에 풀렸고 이것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향하게 되어 이른바 버블(거품)경제를 일으킵니다. 동경의 주식시장 주가총액은 뉴욕의 증시의 그것을 능가하게 되고 일본의 토지 가격은 미국의 전체의 3배에 달하는 지경에 이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고금리 정책과 대출규제는 한 번에 버블경제를 붕괴시킴으로써 경제를 급속히 냉각시켜 버린 것입니다.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간 셈인데 문제는 냉탕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어져 버려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죠.
‘돈이란 천하를 돌고 도는 물건’이라는 말이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 자본가들은 그들의 재산을 잠시 맡고 있다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을 ‘당주(當主:현재의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청지기’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돈이 돌고 도는 물건이기 때문에 소유라는 개념을 극력 아낀 것이지요. 하지만 버블경제 시기에는 이러한 개념이 실종되어 그야말로 흥청망청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그것이 장기적 경제 침체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경제가 살아나서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면서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이 돌고 돌아야 합니다. 그런데 돈이나 재산을 독점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강해지면 경제의 흐름이 막혀 침체의 늪에 빠집니다. 버블경제라는 이름의 ‘투기’가 사회적으로 일어난 후에 반드시 장기적 경제침체가 일어났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한 현상 뒤에는 재산이나 돈을 독점하려는 탐욕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고요. 성경에 나오는 부자처럼 “이 많은 곡식을 어찌하리? 그렇다 창고를 새로 지어 보관하자”고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부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탐욕이 경제의 흐름을 파괴하여 결국 자신들도 파멸하게 되는 겨로 가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세상을 결코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성경이 ‘청지기 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들어온 돈이나 소유한 재산을 묶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적절한 소비와 투자를 통해서 세상에 다시 내놓아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창고를 지어 보관하려는 탐욕스러운 부자에게는 그러한 마인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움켜쥐고 있으려는 반경제적인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 목숨을 거두리라”고 경고하신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요?
경제와 하나님! 언 듯 보면 관계가 없거나 배치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조차 하는 조합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경제에 대한 언급이 하도 많아서 그것을 제외하면 성경이 누더기가 되어 버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백성에게 밥은 하늘’이라고 한 것처럼 경제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잘 아시니까 경제에 대한 가르침을 가장 많이 내리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교회는 그것을 외면하고 믿음과 경제생활을 분리시켜 버림으로써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경제가 역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멋진 척하며 살지만 우리는 결국 경제적인 성공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중요한 문제를 외면해서야 신앙생활이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불편해도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절실합니다.
경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단순 명쾌합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는 것은 결국 주어진 돈과 물질 재산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어 돌아갈 수 있게 하여 모두가 혜택을 누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는 그저 자선사업이나 하라는 말로 알아듣는다면 그것은 반쪽만의 진실일 것입니다. 자선사업은 소중하지만 그것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야 가능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경제의 흐름을 위해 자신의 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청지기의식’에 의해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수전노적 의식’만 있다면 버블경제와 그에 따른 경제 침체를 피할 수 없겠죠.
최근에는 ‘성장적 복지’라는 말이 언급됩니다. 복지는 낭비라는 생각 대신 나눔이 도리어 경제를 활성화시켜 성장을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 역시 한 쪽에 치우쳐져 돌지 않는 돈과 물질 재산을 돌게 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게 하도록 하자는 점에서 지극히 성경적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조금 더 경제에 대한 공부를 통해 이러한 가르침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경제활성화의 주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돈을 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름을 집에 두면 어떻게 되나요? 그저 냄새나는 흉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밭이나 논에 뿌리면 훌륭한 비료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적 경제관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하여 경제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모두가 풍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아할 것입니다.
오늘의 필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유적이 불에 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보고 마음의 보화를 쌓고자 하는 생각이 절실해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재물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움켜쥘수록 그것은 멀어질 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린고비’적인 삶은 세상은 물론 자신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쌓아둔 거름을 세상에 내놓아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정신은 희생과 헌신의 정신 (0) | 2021.10.21 |
---|---|
돌 하나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시는 하나님! 택하심의 법칙 (0) | 2021.10.20 |
너의 구원이 어디서 오나? 사울과 다윗의 갈림길 (0) | 2021.10.17 |
실천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0) | 2021.10.16 |
기도가 이어준 인연들 - ‘난 혼자가 아니야’ (0) | 2021.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