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바라는 리더십- 제2의 정주영을 기대하면서
예전에 어느 재벌그룹 총수가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며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기업은 고용을 창출하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것으로 충분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원문대로는 아님) 언 듯 들으면 제법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내용은 기업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 한다면 세금을 충실히 내고 법을 준수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일까? 이 문제를 개인에게 적용해 보자. 한 개인이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창출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법을 준수하고 세금을 잘 낸다면 그의 사회적 책임은 다 끝나는 것일까? 이 역시 상당히 타당한 말처럼 생각된다. 실제로 개인의 경우에게는 그 이상의 요구를 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상이 각자 주어진 일만 하여도 잘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세상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장애인이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 몸을 추수리기도 어렵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그들을 도울 수 있겠는가? 속된 말로 ‘모두가 자신의 삶에만 매달리면 소는 누가 키우는가’라는 것이다.
장애인만이 아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몰락한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들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쉽게 사회에 나갈 수 없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생계를 위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독재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 이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독지가들이 반드시 있었고 그러기에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사회봉사를 하거나 기부를 하는 것처럼 기업도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국가도 세금을 거두어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처럼 세금을 엄청나게 거둬 국가가 대부분을 책임지는 나라도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기업이나 개인이 기부 봉사 등을 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벗어나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 돌봐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비로소 사회가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가 어렵고 힘든 사람으로 가득찬 삭막한 곳으로 바뀔 수 밖에 없고 정상적인 사람도 살기 어려워진다.
위에서 언급한 재벌 총수는 실은 창업자가 아니라 3세인가 4세이다. 우리나라 재벌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3, 4세가 총수가 되는 일은 드물지만 그가 이끄는 기업은 우리나라 재벌 중에는 제법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더 우습기만 하다. 자신은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재벌이 된 주제에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다니. 그런 말을 하려거든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내놓고 새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용기가 없겠지만. 비단 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재벌총수는 여러 가지로 철없는(?)소리를 늘어놓아 많은 빈축을 샀다. 아마 어려움 없이 자라서 세상이 다 그런 줄 아는가 보다.
이런 철부지 총수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일본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시부사와에이이치이고 또 한 사람은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이다. 두 사람은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인이면서 경제인을 넘어서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한 위대안 인물들이다. 부디 철부지 총수가 철이 들도록 이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부사와에이이치! 평생 500여개의 기업을 세워 일본근대의 경제발전을 견인한 말 그대로 ‘일본자본주의의 아버지’이다. 오늘날에도 그가 세운 기업의 대다수가 각 분야에서 일본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그가 세운 제일은행은 오늘날 미즈호 금융그룹의 핵심은행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오사카방적은 오늘날 도요보(東紡)라는 대기업으로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왕자제지, 동경해상보험 등 업계를 대표하는 굵직한 회사들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기업들이다. 세계 기업사에서 이런 기업가가 또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의 경제적 업적을 남긴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필자가 졸업한 일본의 5대 명문 중의 하나인 히도쓰바시 대학도 시부사와의 손을 거쳐 명문대로 성장한 학교이다. 일본의 교육부에 해당되는 문부성이 히도쓰바시대학을 동경제국대학과 합병하고자 하였으나 졸업생 재학생이 하나가 되어 거부함으로써 무산된 일이 있다. 우리로 치면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하나로 만들려고 한 것과 같은데 카이스트쪽에서 거부한 꼴이다. (우리라면 그럴 수 있을까?)그 때 시부사와에이이치는 히도쓰바시 대학의 운영위원으로서 이에 동조하여 함께 싸워 학교를 지켜냈다. 히도쓰바시대학만이 아니라 수많은 학교가 그의 손으로 세워지고 커갔을 정도로 시부사와는 교육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사회사업은 교육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고아원 양로원 등을 비롯하여 엄청난 수의 사회사업시설이 그의 손으로 세워지고 유지되었다. 그가 관여한 사회단체는 많을 때는 600여개에 이를 정도로 시부사와는 사회사업에 열성적이었다. 우리의 철부지 재벌 총수께서는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다. “쓸데없는 데 힘을 낭비한 것”이라 할까?
시부사와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미국에 일본인 이민이 늘어나 양국간에 외교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재미일본인들에 대한 공부를 해 본 필자는 일본인이민자들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새로운 이민자들을 도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단체로서 미국정부와 지역사회에서 압력과 회유 등의 활동을 맹렬히 실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그들은 중국인과 함께 하층이민으로 여겨져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거둔 성공은 과거 유대인의 그것처럼 위협으로 여겨졌다. 일본인이민들은 비록 미국에서 거주하지만 문화나 사고방식 생활양식은 여전히 일본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어 스파이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갖게 하였다. 결국 미국정부와 지방자치체에서는 일본인의 이민을 규제하고 기존의 이민들에게도 갖가지 압박을 가하였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황화론’(황인종의 위협)마저 제기되어 아시아인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되는데 특히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져 일본인 이민자들의 고통이 심해지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시부사와는 민간외교관으로서 여러 번 미국으로 건너가거나 미국의 인사들을 초청해 양국의 화해와 일본인이민들의 지위향상에 노력하였다. 미국에서 그는 ‘동양의 경제거물’로서 환영받았고 많은 미국의 재계인사들이 그를 호평하였고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와의 대화를 통해 일본의 사정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일본정부와는 하등 관계없이 이루어진 순수 자발적 활동이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수상과 각료들은 그가 출국할 때마다 직접 배웅을 할 정도로 그를 융슝히 대접할 정도로 그의 사회적 명성은 드높았다. 그는 이미 기업인을 넘어서 재계의 리더 나아가 일본의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의 기업인 정주영 또한 일개 기업인이라기보다는 재계의 리더이며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정주영의 삶 자체만 보면 시부사와의 스케일이 훨씬 못 미친 것처럼 보이고 그것은 사실이다. 정주영은 80여개의 기업을 세우거나 운영하였고 그가 만들거나 관여한 사회단체는 시부사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전경련의 수장으로 재계의 리더로서 활동했지만 시부사와처럼 500여개의 기업에 관여하고 제일은행 총재로 있으면 다른 은행들의 설립을 도와주고 심지어 인재교육까지 시켜 파견하는 멸사봉공적인 자세에 비하면 미흡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정주영과 시부사와가 갖고 있던 기반이나 조건의 차이를 무시한 평가이다. 시부사와는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이병철 회장처럼 아버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인생을 출발하였다. 더구나 서울로 간 아들을 다시 귀가시킨 정주영의 아버지와 달리 세상의 변화를 상인으로서 잘 알고 있던 시부사와의 아버지는 그의 큰 뜻을 이해하고 가업의 계승 대신에 세상에 나가 활동하도록 지원해 주었다.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주영의 아버지는 성실과 근면으로 시부사와의 아버지는 거기에 더해 유연함과 지혜로움을 통해 아들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부사와는 정주영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그의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요시노부의 가신이 되어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의 변화를 경험하였고 메이지정부의 관료로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채 그의 평생의 기반이 된 제일은행의 총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은행이라는 든든한 자금줄을 갖게 되었고 게다가 정부의 고관으로서의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뜻이 실현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였다. 자본가들은 그의 이름과 신용을 믿고 모여들어 사업에 동참하였다. 물론 시부사와 자신이 눈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공익을 앞세운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다.
그에 비하여 정주영은 시부사와에 비하면 너무나도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하였다. 무일푼에 그의 꿈을 이해 못하는 아버 지의 방해(?)까지 물리쳐야 했다. 시부사와가 가진 풍부한 인맥도 아버지의 지원금도 그에겐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아버지의 지원으로 일찍부터 재벌이 되어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이병철 회장의 사업능력은 평가해야 한다. 아버지 지원을 다 말아먹은 무능한 자식들도 않으니까)
정주영이 재계와 사회의 지도자가 된 것은 아마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이후일 것이다. 그 때 한국경제는 물론 후진국의 티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선진국으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정주영이 사업을 시작한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의 시기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을 정도로 어렵고 힘든 상태에 있었다. 게다가 식민지해방과 전쟁 정치적 대립 등으로 나라 자체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시부사와가 활동한 메이지 시대는 일본을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무라이 출신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들의 뜻을 받들어 많은 자본가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위하여 헌신하던 시대였다. 시부사와의 업적은 정주영에 비하여 훨씬 기름진 ‘옥토밭’에서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정주영이 시부사와 가졌던 조건을 가졌다면 그 역시 엄청난 스케일의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시부사와와 정주영이 이렇듯 재계를 넘어서 사회와 국가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의 가치관이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주영은 “국가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한다거나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만족이 우선인 사고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절대 대성할 수 없다...” “기업이란 국가 살림에 쓰이는 세금의 창출에 큰 몫을 기여하면서 보다 발전된 국가의 미래와 보다 풍요로운 국민생활을 보람으로 일하는 집합체” 라는 식으로 기업의 공익적인 특징을 말하였다. 시부사와 역시 그의 저서 ‘논어와 주판’에서 자신이 한 기업활동은 공익을 최우선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익이 얼마나 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서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기준으로 기업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논어와 주판’이라는 것은 도덕과 경제의 조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논어는 도덕과 공익 주판은 경제이고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주영이나 시부사와와 같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를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이들과 함께 국가와 사회를 이끌었던 박정희와 같은 정치지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어 정파적인 행동으로 국가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당파의 말이라면 틀렸어도 지지하고 상대 당파의 말은 아무리 바른 것이라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처리되어야 할 안건이 무시되고 터무니 없는 안건이 통과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건은 하나라고 한다. ‘국회의원세비인상안’이 바로 그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경제인 안철수의 추락한 모습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정주영에 이어 경제인으로서 대선급 정치인이 된 안철수는 하지만 정치라는 블랙홀에 빠져 처음의 순수한 모습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의 잘못도 있지만 그가 가진 순수한 의도를 왜곡시켜 버린 정치판의 더러움이 더 큰 이유라 하겠다.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이 와도 우리나라의 정치판에서는 뜻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만이 타락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국가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로 애썼던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기에 혈안이 되어 이른바 낙하산이 되어 자신들이 감독하고 지도해야할 민간업계에 내려가 관과 민을 잇는 파이프 역할을 한다는 것을 빙자해 관경유착의 죄악을 서슴지 않고 있지 않는가? 검찰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사건을 자의적으로 처리하여 죄인을 놓아주고 억울한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조차 자행한다. 군은 방산비리를 통해 국가안보의 근간을 흔들어 놓고 있지만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민간인이 철조망을 넘어 들어와도 며칠이 지나서야 소재를 파악할 정도로 무능력한 모습도 보이고 있으니 말 해 무엇하랴? 건설부서는 건설회사와 유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김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른바 재피아 건피아 등이 날뛰는 것이 대한민국 공직사회이다.하지만 이들을 감시하고 바로 잡아야할 선출권력은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국민은 다를까? 천만에 말씀이다. 과거에는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단결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에 매진하였던 우리 국민이 이제는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며 혐오하는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의 불행을 조롱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자영업이 무슨 벼슬이냐”라는 조롱과 비난을 서슴지 않고 고독사한 독거노인에게 “그렇게 죽어도 싸다”라는 식의 비아냥을 해대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예전에는 적어도 사람의 죽음 앞에서만큼은 조의를 표하던 국민이 왜 이토록 타락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기업이라고 다를까? 삼성비자금 사건과 최순실 게이트가 상징하는 것처럼 비리와 부패라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주영 같은 재계의 리더는 찾아보기 힘들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업을 한다는 이른바 ‘산업보국’의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는 치열한 국제경쟁이 전개되고 있는데 과연 이런 상태에서 우리의 기업 나아가 경제에 미래는 밝을 수 있을까 심히 염려되고 있다.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들을 짓밟으려는 기득권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그래도 경제인들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국회도 정부도 공무원 그리고 국민에게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 과거의 고도성장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기업인들이라면 적어도 희망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주영이나 시부사와 같은 리더가 경제인들을 이끌고 대동단결하여 국가화 사회의 길잡이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은 것이다. 그럴만한 힘과 능력을 가진 집단은 경제인 말고 없다. ‘황금만능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국민의 그런 심리를 역이용한다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 생각해 보라. 독약도 잘만 쓰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된다고 한다. ‘황금만능주의’라는 심리를 이용하여 재계가 금전적 풍요로움을 잘 활용한다면 의외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던가?”
문제는 정주영이나 시부사와 같은 사명감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 이다. 경제인들은 이중적인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기업은 사적인 존재이니 개입말라고 하면서 위기에 처하면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도와달라고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신들의 힘만으로 오늘에 이른 기업은 거의 없다. 설령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박정희를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 국가경제를 이끌지 않았다면 아프리카나 중남미국가처럼 열악한 경제환경에 놓여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세계적인 기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기업의 사적인 특징을 강조하기보다 공익우선의 정신으로 기업을 운영할 것이며 국민은 그러한 기업을 응원하고 지지해서 활동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민간주도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부도 정치도 이미 사회를 주도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민간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제일 앞장서야 할 것은 힘과 재물을 고루 갖춰 큰 영향력을 가진 기업과 기업인 뿐이다. 전에는 대학과 지성인들이 사회를 이끌었으나 이미 그들은 무사안일주의와 밥그릇의 유혹에 물든 부패한 세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기업인이 하나가 되어 정주영같은 리더의 지도 하에 의해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애쓴다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변할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영향력을 가장 미칠 수 있는 존재는 교수도 총장도 아니고 바로 기업인이다. 기업이 바람직한 모습을 요구하면 대학생들은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한 마디는 바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그렇기에 기업이 앞장서 이 나라를 바꾸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도 공무원도 적건 크건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많은 경제인의 단체가 있다. 전경련은 물론 대한상공회의소와 같은 단체들이 하나가 되어 이 나라를 바꾸는 주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무원이나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에 매달려 고시촌을 헤매이는 젊은이들이 창업하여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거나 해외로 나가 새로운 경제영토를 개척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기업 뿐이다. 고 김우중 회장은 GYBM이라는 조직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는데 이것을 재계가 함께 해 나간다면 대한민국의 청년실업문제는 단박에 해결될 것이고 ‘삼포’니 ‘칠포’니 하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인이 모두 함께 자금을 출연해서 100조 정도의 기금을 조성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업을 전개한다면 어떨까? 그 대신에 기업의 승계문제나 기타 애로사항에 대하여 국민이 합의해주어 법제화한다면 기업인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국가의 복지사업은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멀쩡한 사람을 무능력자로 만드는 것이 현실인데 이 기금으로 생산적인 복지를 통해 자립과 복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기업이 갖고 있는 비즈니스마인드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까지 개혁한다면 부패와 비능률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이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주영과 같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를 원한다. 그가 기업인으로 출발했음에도 사회적 지도자가 된 것처럼 오늘날의 기업인들도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란다. 정주영이 60이 넘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아산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을 필두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의 기업인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개인이라도 정년퇴직을 한 후에는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인들도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큰 공헌을 하겠는가? 정주영이 생의 마지막 20년간 보여준 모습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그것이었다. 정주영의 후배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의 미래는 한없이 밝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서의 거듭남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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