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하실래요 사랑 하실래요?
‘최고의 공부’라는 책에서 저자 켄 베인은 성공적인 공부의 비결은 곧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하실지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나 결과를 위한 일종의 ‘공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대학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이나 그렇지 않은 학생이나 ‘공부 코스프레’ 즉 성적을 위한 ‘가짜’ 공부를 한 학생들보다 공부의 본질에 충실하게 공부를 한 학생들이 훗날 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통계를 활용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적이나 다른 결과를 위한 공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셈입니다. 입시나 성적만을 위한 공부가 진짜 공부를 대신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풍토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사랑에 대하여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의 비밀’의 저자 애덤 잭슨입니다. 그 역시 성공적인 사랑의 비결은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가한 어느 청년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사라진 중국인 노인(가상의 인물)을 통해 소개받은 열 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야기입니다. 노인은 “사랑 없는 결혼이야말로 저속한 희극”이라며 청년을 도발합니다. 아울러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망설이다 결국 외롭게 죽어간 어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러주며 10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신에 연애를 많이 합니다. 사랑이라는 의미의 두 글자 ‘연’(戀)과 애(愛)가 합쳐져져 만든 ‘연애’에 사랑이 없다고 하면 너무 이상한 이야기일까요? 연애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처럼 ‘연애결혼’이 일상화된 시대에 결혼하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이라는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애’에 사랑이 없다면 ‘연애결혼’에 사랑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원래부터 결혼은 사랑의 결과물은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인류역사에서 연애결혼은 예외적인 현상이죠?)연애라는 말에 사랑이 없다면 문제가 아닐까요?
그것은 중국노인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사랑보다 연애를 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애는 관계를 위한 행동이죠.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벌이는 행동들말입니다. 마치 성적이나 업적을 위해 하는 공부와 같습니다. 우리가 공부라 하면 어떤 것을 떠올릴까요?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익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뭐 이런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현실의 공부는 대부분 ‘시험용’ ‘결과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에 가장 좋은 결과를 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닌가요?
저는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오래 했는데 많은 학부모들에게 “선생님, 우리 아이가 영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면 됩니다”라고. 이상하게 들리시죠? 하지만 맞는 말입니다.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은 그런 질문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요령있게 쉽게 영어성적을 잘 받을까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토익스타강사가 “토익공부는 영어공부가 아닙니다”라고 하여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시험용 영어공부는 영어공부가 아닙니다. 토익을 만점받아도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영어공부가 아니라 시험공부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정확한 답을 고를 수 있을지 요령을 배우고 익히는.
하지만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영어도사들 중에 그런 식으로 공부한 사람은 없습니다. 토익공부가 영어공부가 아니라는 말을 한 스타강사도 영어유학을 가서 미친 듯이 영어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라고 그녀는 자신의 공부를 회고하였습니다. 영어는 수학처럼 공식을 잘 배우고 그것을 응용해 문제를 푸는 두뇌게임이라기 보다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 일종의 습관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학생들은 영어를 요령있게(?)배워 고득점을 올리면 그걸로 “영어공부를 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수학처럼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셈이죠.
“영어에 바다에 빠져라”라는 말은 결코 광고용 멘트가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알던 대학교수는 영어를 공부할 때 전공서적을 주구장창 읽는 방식으로 했답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심지어 12시간 이상 그렇게 영어의 바다에 빠지자 영어가 저절로 구사되어 유학을 가서 전혀 곤란하지 않았답니다. 문법규칙이나 익히고 문제풀이 방법을 익히는 식으로 10년 한 공부보다 훨씬 낫겠지요? “도로아미타불”이 될 10년 공부보다 실력이 되는 3년 공부가 낫기에 “영어의 바다에 빠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공자는 논어의 서두에 이런 말을 하였죠.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김용옥선생의 논어강좌에서 “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천재라서가 아니라 호학(배움을 좋아함)때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공자 스스로 “즐기는 자를 이길 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배움을 좋아하고 즐겼기에 무엇을 배워도 철두철미하게 배웠고 그래서 결국 성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지식인이 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마음의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사랑을 즐기’시면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엔조이’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상대를 바꿔가며 쾌락적인 연애를 즐기는 것은 마음의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취할 방법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공부를 하라고 해서 한 텍스트만 공부하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텍스트 저 텍스트 옮겨 다니며 맛만 보는 공부를 한다면 그는 영어를 정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입니다. 제대로 공부하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하산하라”는 도사님의 말이 떨어지기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사랑을 즐긴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고 그것을 즐겁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을 즐기는 것’이지 바람둥이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사원의 친절과 사랑하는 사람의 친절이 겉보기에 같다고 해서 내용까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연애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사랑 없이 연애가 가능한 것처럼(아니 이게 대세 아닌가요? 옆구리 시려하는 연애에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연애없는 사랑도 있을 수 있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요? 경험담이니까요.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로 인해 행복했지만 연애에는 이르지 못한 사랑을 제법 경험했고 그것이 바로 ‘연애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했습니다. ‘사랑없는 연애’는 그로 인해 파생된 개념이죠. 이것도 물론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연애가 가져오는 거짓된 감정에 휘둘린 경험.
사랑이 없는 연애란 시험용 공부와 같습니다. 반짝이는 효과는 있고 또 별다른 고민없이 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길이지요. 사랑없는 연애는 연애를 통해 얻는 이익에 그 목적이 있기에 반짝 효과는 크지만 궁극적으로 마음의 사랑을 하는 데에는 절대 방해되는 행위일 뿐입니다. 사랑없는 연애에 익숙해지면 마음의 사랑이 주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사랑의 행복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시험용 공부에만 익숙해진 학생은 진짜 공부를 하기 어렵죠.
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꽤 인기있는 수학강사의 경험입니다. 그는 수학이 좋아 수학에 푹 빠져 공부를 했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수학성적은 (수학과 재학시절)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평소에는 별로 공부를 하지 않다가 시험 때만 되면 날새며 시험공부하는 동료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 중 수학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고학년이 되자 그의 공부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동료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죠. 기초가 튼튼하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즐기는’ 그가 ‘요령있는’ 동료들에게 결국 승리한 것이죠. 이것이 켄 베인이 말한 ‘최고의 공부’의 위력입니다.
‘최고의 사랑’을 하고 싶습니까? ‘사랑을 즐기며’ 하십시오. 연애를 하든 말든 관계없이 사랑을 하십시오. 중국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을 하면 관계는 따라온다” 물론 사랑이 곧 관계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소개팅으로 적당한 상대를 골라 만나는 것이 관계를 맺는데 효과적일 것입니다. 즉 연애를 통해 사랑을 만드는 길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짝퉁 사랑‘이 고작 아닐까요? 수학 강사의 친구들처럼 가짜 공부인 셈이죠.
하지만 ‘사랑을 즐기며 한다’면 사랑의 기초실력이 늘어 결국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이 아니라 “사랑하고 때로 연애하면” 또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연애게임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사랑에 몰두하십시오. 연애를 하든 말든. 연애는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보너스일 것입니다. 보너스가 쌓이면 놀라운 결과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보너스만 바라면 보너스도 제대로 챙기기 어렵죠. 일을 제대로 해야 보너스가 더 많아질 것이 아닙니까? 사랑은 본질이고 연애는 보너스입니다. 사랑에 집중하여 보너스도 두둑히 챙기는 ‘최고의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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