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예전 부부들이 오늘날의 부부보다 사이가 좋았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여보 일찍 돌아오세요” 예전의 아내들은 남편의 출근길에 이 말을 꼭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찍 들어오면 아내는 매우 행복한 얼굴을 하였지요. 왜 그럴까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아내는 더 바빠집니다. ‘아빠 밥상’도 차려야 하고 곁에서 이것저것 챙겨줘야 합니다. 지금과 달리 남자들은 집에 들어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니까요. 심지어 물까지 떠오라고 하면 떠 와야 했습니다. 지금 설마 이런 명령(?)을 내리는 남편도 없을 것이고 그걸 듣는 아내도 없겠지요? (어쩌다 아내가 부엌에 있어 남편이 물을 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겠지요)
왜 이런 귀찮은 존재를 아내들은 환영했을까요?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일입니다. 밥을 먹다가 제가 부엌으로 물을 뜨러 갔다 왔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어머 미안해”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 왜 미안해?” 라고 했더니 “내가 챙겨야 하는데 못 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당신이 챙겨야 돼?” 라고 다시 묻자 “이건 여자가 해야 하는 거니까”라고 답했습니다. 왜 이런 엇갈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집안의 문화의 차이 때문입니다. 처가는 남자가 적어서인지 여전히 여자들이 모든 걸 하는 문화를 지키고 있었고 저희 집안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고 있었기에 그런 문화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쪽이 일반적이었을까 생각하면 그 때는 아직은 여자들이 다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정상일까요? 둘 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살림을 하는 구조라면 남편의 퇴근과 귀가는 휴식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일을 하라고 하면 너무 잔인하지요. 반대로 맞벌이를 한다면 집안일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처가와 저희집은 그런 점에서 합리적인 문화를 각각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구조가 깨지고 있습니다. 외벌이를 하는 가정인데 남편에게 집안일을 요구합니다. 맞벌이를 하는데도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혼자 편하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일 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함께 일하고 돌아왔는데 상대에게 일을 전가시키고 혼자 쉽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기를 바라지만 그게 아닌 듯 합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하면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무엇이 이런 문제를 일으킬까요? 저는 사랑없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애결혼이 일반화된 오늘날 부부의 사랑이 중매결혼이 일반적이었던 시절보다 작아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겠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식은 것일까요?
예전의 부부는 사랑은 없을지 모르나 정은 있었습니다. 부부일심동체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갔기에 그런 정이 생겼고 그러기에 “여보 일찍 들어오세요”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것과 주는 걸까? 받을 때는 꿈 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란 노래도 있지요. 한국의 부부는 정으로 출발해 정으로 살다가 정과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의 부부는 대부분 사랑을 매개로 하는 연애결혼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중매로 결혼을 한다고 해도(놀랍게도 중매결혼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특히 중매회사를 통한) 완전한 중매라기 보다 이른바 ‘연애반 중매반’이 되기 때문에 사랑이 강조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보다 더 슬픈 것은 정이라고”(심수봉 ‘그때 그 사람’)하는 말처럼 정이 더 깊은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사랑 역시 강한 감정이니 이들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역시 예전 부부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사이가 좋고 서로를 아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연애결혼 또는 연애 반 중매 반 결혼에 정말 사랑이 있는지 입니다. 남녀의 교제가 너무나 자유로워져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연애가 가능한 시대에 사랑은 연애의 필수요소는 아닙니다. 남녀가 만나 여러 가지 행위를 통해 가까워지고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는 행위인 연애는 이제 그 자체가 독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없이도 가능한 것입니다. 밥 먹고 영화보고 차마시고 키스와 섹스를 하고 선물을 주고 받고 이벤트를 하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촌스럽게(?) 사랑 타령을 할 필요는 없는 거죠. 물론 그들은 사랑을 입에 달고 살지만 연애라는 행위로 달구어져 만들어진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행위로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목석이라 하겠지요. 일종의 조건반사적 감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반사는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집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였기에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와 멀어지는 것처럼. 군대에서 그토록 친했던 입대동기를 하지만 제대하고 나면 별로 생각나지 않지요? 그것은 마음으로서가 아니라 군대생활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화학작용이 아니라 물리적 작용의 우정이 오래갈 리가 없죠. 습관적으로 자주 만나 친해진 관계 그래서 안 보면 허전하고 쓸쓸한 관계의 본질이 이렇습니다.
그런 그들을 지탱해 줄 ‘정’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부부는 사랑이란 애시당초 없다는 걸 전제로 출발하기 때문에 사랑타령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일심동체를 위해 둘은 서로에 대한 의무와 도리를 다하면서 정을 돈독히 해갑니다. 하지만 지금의 부부는 여전히 사랑타령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아무리 원해도 얻을 수가 없죠. 그것이 서로에게 좌절감을 주죠. ‘배신감’이라고도 해야 할까요?
진짜 사랑 마음의 사랑과 가짜 사랑 그림자 사랑의 구별은 쉽습니다. 좋을 때는 구별이 안 갑니다. 문제는 나쁜 상황 어려운 조건에서 사랑이 힘을 발휘하는가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연애가 주는 혜택을 누리기에 급급한 가짜 사랑은 어려움에 처할 때 상대를 버립니다. 왜냐하면 어려움을 함께 하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상대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혼자 편하겠다는 심보는 이런 이유로 생겨납니다.
저는 가출청소녀들과 대화를 통해 이런 사실들을 알아냈습니다. 가출 청소년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사랑없는 가정 때문입니다. 사랑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가정의 아이가 집을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들의 부모는 대개 이혼상태입니다. 때론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부모가 이혼을 하는 이유는 사랑보다 충동에 의해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책임감도 희생정신도 없습니다. 그것은 쉽게 가정의 해체를 가져오죠.
가출청소년들의 가정은 조금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의 가정의 현실을 말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사랑없는 연애게임을 통해 맺어집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자신을 즐거움 쾌락 행복을 위한 도구이지 상대에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현실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에게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어렵습니다. 그래서 깨지거나 깨지지 않아도 서로에게 어려움을 전가시키고 혼자 편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현대 가정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처럼 사랑은 없어도 정을 가지고 서로에게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부부일심동체’의 이데올로기로 지탱된 부부의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운데 가짜 사랑에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결혼식장에서 자주 듣던 노래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는 바울이라는 기독교 지도자의 편지에 실린 글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이 노래의 핵심은 ‘참음’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나의 불편을 참고 상대가 조금 더 편하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참음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 마음의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된 사랑이 없으니 모든 부부는 이혼을 하고 가정은 해체되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배워 그것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하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깨달음과 배움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는 가르침은 사랑에게도 적용됩니다. 어렵겠지만 한 번 배워보십시오.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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