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반려동물이 아니다. 사유리 출산의 일반화가 갖는 위험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반려동물이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생물이 아닌 반려동물은 엄연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뜻대로만 할 수 는 없으니 키우는 과정에서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육아의 경험만 있어도 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우고자 할 때 그런 부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서의 반려동물을 상상하며 기쁨과 행복감만 가득한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맞이하였다가 어려움에 닥치면 학대나 유기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반려동물 아니고 아기라면 어떨까? 반려동물이라도 쉽지는 않다. 말로 설득할 수도 관계를 끝내자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길이 없지는 않다. 인터넷 등에서 인수자를 구하여 양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기라면 그마저도 어렵다. 요즘 아기를 20만 원에 팔겠다고 한 미혼모로 인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그 미혼모가 아이를 원해서 가졌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법은 인신매매를 금하고 있고 아기도 인간이니 아기 매매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인터넷에서 매매를 시도했다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아기 매매는 적지 않을 것이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에 비해 훨씬 어려운 일이다. 동물은 태어났을 때부터 인간의 아기에 비하면 자립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단기간에 어른이 되기 때문에 키우는 수고가 인간에 비해 가볍다. 게다가 학교에 보내거나 사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버리거나 학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 기간 어른들의 보호를 필요하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인간 아기야 오죽하랴. 친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거나 버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귀하게만 자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아이를 키우는 희생을 감당하기는 훨씬 어렵다. 자칫 학대와 유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사유리라는 일본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해 자발적 미혼모가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혼녀가 정자기증을 받을 수 없어 일본에서 받아 와 출산을 하였다고 한다. 외국에 비하여 국내에서는 거의 유례없는 일이라 더욱 관심이 크다. 대부분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특히 여성들의 반응이 뜨겁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는 식의 반응도 있었지만 한국여성이라면 주변의 압박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과연 사유리의 나홀로 출산을 그저 환영해도 될 만큼 우리의 육아 환경이 양호할까? 합계 출산률이 1도 안 되는 세계적인 저출산국가이면서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결코 만만치 않은 대한민국에서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사유리처럼 유명인으로서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인 넉넉함이 있다면 모를까 육아와 사회생활을 함께 하는 워킹맘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지금 보여지는 뜨거운 반응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아이의 인권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받을 수 있는 아빠의 사랑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아이의 권리를 엄마가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빼앗은 것이다. 아이에게 아빠 없는 삶을 강요할 권리가 과연 엄마에게 있는 것일까? 만일 그 아이가 평생 아빠가 없고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아픔을 느낀다면 누가 그것을 보상해 줄 것인가? “왜 나만 아빠가 없는 거야”라고 아이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이해할 것이라고? 어떻게 그런 긍정적인 답을 확신하며 그것 역시 강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만일 아이 엄마가 육아와 사회생활을 양립하기 어려워 빈곤에 빠지게 된다면 이 또한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남편의 도움을 받아도 육아가 어려워 경단녀가 되는 엄마들이 적지 않은데 혼자 키우는 엄마야 오죽하랴. 실제로 한부모 가정의 경제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은 통계로서 나타나고 있다.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아이에게 가난을 강요할 권리가 엄마에게 있는가?
사유리의 결정을 일반화하려고 하기 전에 우리가 갖고있는 육아 환경부터 고려해 보길 바란다.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또 교육비 등 양육에 드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려고 하는 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의 임신 출산을 이렇게 쉽게 일반화하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그것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있는 특정 인물의 사례 때문에. 일반여성 중에 사유리처럼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경우가 얼마나 될까? 섣불리 따라 했다가 아이는 물론 엄마까지 불행해진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성급한 일반화가 많은 아이들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성인여성의 행복만 생각하지 말고 가장 약자인 아이의 행복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사유리의 결정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상대는 반려동물보다 더 약하고 복잡한 감정의 소유자인 인간임을 잊지 말라. 상대는 키우는 기간도 짧고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면서 귀여워 해주면 되는 반려동물과 달리 몇 배의 시간에 많은 비용과 정성이 필요한 인간이다. 인간은 타인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함부로 낳고 키워져도 되는 동물이 아니다. 뒤늦게 후회를 하더라도 무를 수도 양도하기도 어려운 상대임도 생각해 주기 바란다. 게다가 육아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감안하고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결정해야 한다.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으로서의 자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소유도 남의 욕망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아울러 다른 사람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엄마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부디 아이의 인권이 엄마의 행복추구권에 가려져 유린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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