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회전의자가 아니다. 5년짜리 국정은 이제 그만!
5공 시대에 위세를 떨치던 이른바 ‘삼 허씨’중의 하나인 허문도가 88년 5공청문회에서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5공 탄생 당시 가장 중요한 과제를 평화적 정권교체로 보고 이를 전두환 등 5공 실세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한 거짓일 수도 있다)당시 우리 국민에게 ‘평화적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열망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과제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해방 이후 5공 성립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하지 못했다. 제1공화국은 419 민주혁명으로 무너졌는데 아무리 민주혁명이라고 하지만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할 수는 없다. 제2공화국은 516쿠데타로 붕괴되었고 제3공화국은 박정희의 친위쿠데타라 할 ‘10월유신’에 의해 제4공화국은 박정희 자신의 암살로 끝났다. 단 한 번도 정당한 절차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국민들에게 평화적 정권교체는 무엇보다 절실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결국 87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우리 국민은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형식적인 선거인 체육관선거에서 직선제 개헌안에 의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고 1997년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오늘날까지 총 3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새로 탄생한 정권의 수명은 두 번 모두 2기 10년 이었다. 미국으로 치면 모두 재선에 성공한 셈이다. 물론 5년 단임제이니 대통령 자신은 바뀌었지만 정권 자체는 연속되었다.
오늘날 과거와 같은 장기집권이 가져올 민주주의 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체육관선거와 총통정치가 펼쳐질 가능성이나 군부독재의 위협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더 이상 평화적 정권교체는 우리 국민의 열망은커녕 관심거리도 되지 않는다. 마치 물과 공기처럼 일상화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의 장기적 발전계획과 실현이라 하겠다. IT혁명 AI혁명 등의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제조업 혁명시대의 옷은 맞지 않는다. 사회 교육 등의 전반에 걸친 혁신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구시대의 과제에 매달려 정작 필요한 과제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언제까지 방치해 둘 것인지 묻고 싶다. 비록 독재이긴 하지만 박정희는 그의 장기집권을 통해 산업화를 단기간에 완성시켜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민주적 장기집권을 통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야 한다.
1946년 스웨덴의 수상이 된 타게 에를란데르는 23년의 장기집권을 통해 세계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탄생시켰다. 유럽의 최빈국의 하나로 내부로는 노사관계의 악화로 투쟁이 일상화되어 있던 나라가 국민이 가장 잘 사는 나라로 거듭난 것이다. 23년이면 박정희 독재보다 긴 시간이나 아무도 이것을 독재라고 비판하지 않으며 장기집권이 가진 폐해를 지적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의 정권은 1920년 이후 100년간의 역사 중에 90년 가까이 집권한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장기집권의 역사 가운데에 한 부분일 뿐이다. 장기집권이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성과를 이처럼 잘 보여준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올해로 71년 째를 맞이하였다. 1955년 민주당과 자유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10개월 2009년에서 2012년까지 2년 4개월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연립기간을 합하여)집권여당의 지위에 머물렀다. 자민당의 집권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과 달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었다. 특히 1989년 리쿠르트 스캔들을 시작으로 펼쳐진 비리의 퍼레이드는 결국 1993년 38년 만에 자민당을 야당으로 전락하게 만들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2012년 재집권 이후 자민당이 보여준 우편향적인 행보도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민당 정권이 올린 성과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도성장이 곧 자민당 정권의 성과인지는 의문이다. 장기집권의 폐해인 정경유착 등도 큰 문제를 낳았다. 보수정권이 오래 지속되어 일본의 선진화가 뒤졌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민당이 장기집권에 성공한 것은 그러한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자기 정화와 혁신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이 전적인 보수정당이라고 보는 것은 피상적인 견해이다. 일본의 사회복지는 유럽에 비견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보수왕국 미국보다는 훨씬 발전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을 유럽과 미국의 중간적인 ‘혼합형’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수를 지향하면서도 국민의 복지 욕구를 수용하여 꾸준히 정책에 반영한 자민당의 정책적 유연성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일관되고 장기적인 정책의 실현을 통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가와 사회의 건설이다.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의 14년 집권은 서독의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된 국가로 이끌었고 헬무트 콜 수상의 18년 집권은 독일 통일과 안정을 위한 여정이었다. F. 루스벨트의 파격적 4선은 대공황의 시대와 제2차 대전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쌍8년도 식 사고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새롭게 펼쳐야 할 장기적인 계획은 5년짜리 단기정권으로 실현시키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4,5년이 되면 찾아오는 대통령의 레임덕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그로 인한 고통이 이러한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구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에겐 장기집권의 문제나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보다 5년짜리 허약한 정권의 짜깁기가 더 큰 문제이다.
여타 선진국의 사례를 논할 것까지도 없이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새로운 과제이다. 우리가 눈 앞의 문제로 정쟁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100년 앞을 보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오늘의 역사를 우리 자신이 통곡하는 심정으로 회고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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