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사랑의 함정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랑의 강도를 증명할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른바 ‘양다리’를 합리화시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성을 사랑할 때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하는 것은(그것도 같은 정도로)당연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랑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모두 금지하는 것이 사랑의 강도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사랑이 갖는 보편적 성격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기에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프롬은 “사랑이란 마치 물 위에 돌은 던졌을 때 생기는 물결처럼 주위로 퍼져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친절해진다고 합니다. 이것을 프롬은 사랑이 주변에 퍼진다고 한 것입니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행복에 겨운 나머지 사소한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주변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는 사랑을 프롬은 ‘또 다른 형태의 이기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랑이 가지는 배타성 때문입니다. 재벌드라마나 신데렐라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남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인공 여성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많은 여성시청자들이 그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할 것입니다. 돈 많고 능력있고 멋진 재벌 2세가 자신을 위해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주는 낭만적 모습은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그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그들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쏟아붓는 것이 노동자를 착취해서 얻은 것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이 널려 있는 현실에서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들만의 행복만 추구하는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의 배타적 사랑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이 사회가 과연 건전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자신이 사랑해야 할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특정 대상에게만 사랑을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젊은 여성들의 사랑관을 접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쁜 남자가 좋아”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나쁜 남자가 자신 외의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즉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자신 외의 사람에게는 따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자신에 대한 남자의 뜨거운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여자는 물론 남자들에게도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남자가 자신에게만 친절하고 자상하다는 것이 곧 여성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사랑의 뜨거움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위험한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하고 심지어 난폭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언젠가 자신에게 그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사랑의 열정이 뜨거우니 안전할지 모르나 만일 그 열정이 식어버린다면 상대는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남성지가 그런 점을 기사로 실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표현이 지나친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내용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랑은 좋은 인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깨끗한 물입니다. 그 사랑이 계속 깨끗하려면 그것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이 깨끗해야 합니다. ‘나쁜 남자’가 아름다운 사랑을 할 가능성은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그릇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섬기라”고 한 신도 인간끼리의 사랑은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오직 나만 사랑하라”는 요구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자칫 함정에 빠져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사랑해야 할 대상은 많습니다. 부모님도 있고 형제도 있으며 친구도 있습니다. 게다가 동료도 있고 어려운 이웃도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다 버리고 오롯이 자신만 사랑해 달라는 배타적 사랑은 자신은 물론 이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배타적 사랑의 함정은 매우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쓰다는 것을 깨달을 때 보다 나은 사랑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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