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의 교훈은 살아있다.

닥터 양 2020. 12. 16. 06:53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의 교훈은 살아있다.

 

  박정희 시대에 경제발전에 공헌한 세 명의 스타인 박정희 정주영 김우중의 공통적 특징은 겁 없는 도전정신이었다. 박정희는 하면 된다를 정주영은 이봐 해 봤어?”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쳤다. 이들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중 필자는 김우중의 해외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김우중은 불가능에 도전한 것으로 말하면 나머지 둘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1967년 출발한 대우실업을 기반으로 김우중은 불과 10년 만에 국내 재벌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김우중의 성공은 박정희의 경제정책의 가장 핵심전략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가장 잘 이용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는 수출에 올인하여 대출이자가 예금이자보다 싼 수출금융의 특혜를 최대한 누리며 급성장한다. 또한 도산 위기의 기업의 회생에도 힘을 기울여 재벌로 발돋음하였다.

  보호무역과 저성장시대가 되자 세계화전략으로 대우를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원래부터 해외지향적이었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지사를 세웠고 일 년에 2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문을 열었다. 모두가 선진국만을 바라볼 때 김우중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들에게서 구할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도전정신을 가지고 세계로 진출하라는 것이 아닐까? 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이 되었기에 국내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나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룡 같은 존재인 재벌들은 시시각각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잠룡의 승천을 막고 있다. 자영업자의 비율은 2017년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25%로 일본의 11%, 미국의 6.5%는 물론 OECD평균 15%를 능가하며 5위에 위치 하고 있을 정도로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획기적인 도전을 시도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 하겠다.

  하지만 세계에는 아직도 경제적 프론티어가 넘친다. 프론티어란 미개척지이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곳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도전정신이 얼마나 있느냐이다. 지금 우리는 한국이라는 따듯한 안방 아랫묵을 딩굴면서 어려움만 토로할 뿐 도전할 의욕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동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를 누비던 리틀 김우중들의 도전정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김우중은 끝까지 눈을 해외로 두었다. 201276세의 노구에도 GYBM(Global Young Manager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과정)을 세워 베트남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 우리 청년들을 진출시키고자 했다. 해외여행은 좋지만 해외생활은 꺼리고 심지어 교환 유학생의 기회조차 기피하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 아닐 수 없다.

  비단 청년뿐이겠는가? 과거 많은 중고년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선진국으로 향하였지만 일부는 개발도상국에 과감히 삶을 걸었기에 오늘날 전세계에 코리안이 없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그 방면에 선배격인 중국이나 일본을 능가했다고 한다. 평생직장이 거의 사라진 지금 그 시대의 추억을 되살려 많은 중고년들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면 매우 의미 있는 도전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의 청년들과 달리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세대이니 성공 가능성은 훨씬 높을 것이다.

  이제 국가가 나서서 프론티어를 개척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화교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유대인들은 네트워크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100년을 바라본 거국적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우리도 제2의 화교 유대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국가 영토의 팽창이며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 하겠다.

  19세기 한국에 온 서양인들의 조선에의 평가는 혹독했다. 조선인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다. 총리 후보자였던 문창극은 이를 근거로 조선왕조 500년을 허송세월이라고 하여 파문을 일으켰지만 19세기 조선은 확실히 무기력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당시 조선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간도나 연해주 하와이 등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활기에 넘쳐 있었고 도전정신에 투철하였. 20세기 후반 미국에 이민 간 재미교포들의 성공신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민족은 결코 선천적으로 무기력하지 않았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은 위기와 가능성의 여부라고 본다. 탐관오리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조선에는 극복해야 할 위기도 살릴 가능성도 없었다. 하지만 나라 밖에는 위기와 가능성이 있었기에 도전정신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김우중은 그런 선조들의 뒤를 따른 모범 후손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 청년들의 무기력 중고년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위기와 가능성이 무한대로 펼쳐진 프론티어로 다시 한번 달려가야 하지 아닐까? 좁고 꽉 차버린 국내에서 계속 서로의 살을 깎아 먹으며 살아간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한계에 다다른 지금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해외인 것이다.

  박정희도 정주영도 그렇지만 특히 김우중은 시선을 풍요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달려가 성공을 이루었다. 우리도 다시 한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정신으로 새로운 프론티어인 해외에 도전해야 한다. 박정희가 수출과 해외 진출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여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김우중도 정주영도 없었을지 모르고 있다 해도 우리가 아는 성공적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 국가가 국민에게 그런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강력하고도 꾸준한 정책을 펴 주었으면 한다. 생각해 보니 정치가 우선 한다는 말이 진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