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복지국가는 퍼주기가 아니라 공정성의 실현이다.

닥터 양 2019. 10. 22. 14:37

복지국가는 퍼주기가 아니라 공정성의 실현이다.

  연예인과 의사, 농부 이들 가운데 가장 필요한 존재는 누구일까? 말할 나위도 없이 농부이다. 우리는 하루 세 번 식사를 할 때마다 농부에게 신세를 져야 하며 농부의 존재가 없다면 생명을 유지해 갈 수가 없다. 반면 의사는 가끔 몸이 아플 때 찾아가면 되고 연예인은 극단적으로 말해 존재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지장은 없다.

 그런데 이들 중 누가 가장 소득이 높을까? 개인적인 차이가 있기에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연예인 의사 농부의 순이 될 것이다. 농부가 의사의 소득을 뛰어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고 의사 역시 연예인에 비하면 소득이 낮을 가능성이 크다. 필요성과 소득이 반비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소득이 필요성보다는 시장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시장가치란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의 크기를 말한다고 하겠다. 농부보다는 의사가 공급이 적고-수련기간과 능력의 문제로-의사보다는 연예인의 공급이 적기-연예산업의 특징상 일부가 독점하기에-마련이고 따라서 소득은 그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소득결정구조는 공정성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능력과 노력 노동의 강도 사회에 대한 공헌도 등에 의해 소득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시장에 의한 소득 결정은 반드시 그러한 원리에 의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수 십 년에 걸쳐 연구를 거듭한 노벨상 수상자가 인기 아이돌보다 위의 요소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수입이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눈물과 땀의 노력을 강조하며 자신을 높이지만 모든 성공자가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CEO들의 지나치게 높은 연봉도 그런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1981년 레이건의 대통령 취임 이후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에 의해 대폭적인 고소득자 감세가 이루어지자 CEO들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들은 과연 1970년대까지의 CEO들보다 그런 연봉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일까? 반대로 그들의 높은 연봉으로 인해 소득을 부당하게 억제당하는 직원들은 과거에 비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실제로 손해를 끼친 CEO가 엄청난 퇴직금을 챙긴 사례도 다수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더 나아가 상속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백보를 양보해 시장가치로 결정되는 소득구조를 인정한다고 해도 상속으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상속이란 재산만이 아니라 기회의 제공 등에서도 나타난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가 부모의 신분과 재산 등에 의해 자녀들의 기회가 얼마나 불공정하게 주어지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단지 누구의 자녀라는 이유로 재산과 소득의 기회를 갖는 것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

 과거 봉건제 사회에서는 이러한 불공정이 사회를 지배했다. ‘신분제에 의해 모든 것은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봉건제 사회에서의 지배자들은 오늘날의 기업가들처럼 창업과 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 무력으로 그것을 쟁취한 사람들이거나 그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사회였다고 하겠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공정구조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시장가치에 의해 소득이 결정되는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보다 더 박탈감은 주는 것은 아버지 찬스’ ‘어머니 찬스에 의해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기회의 불공정은 시작된다는 점이다. 사회에 나가도 부모덕에 수월하게 집을 마련하고 결혼도 하는 청년들과 그렇지 못한 청년들 사이에는 넘어서기 어려운 갭이 존재한다. 나아가 부모가 남긴 유산의 차이는 사회적 지위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극소수의 성공사례로 감추기에는 현실이 너무 혹독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수월하게 오르는 지위를 누군가는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올라야 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임도 잊지 말자.

 이러한 불공정을 시정하고자 한 것이 복지국가이다. 애당초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소득의 분배를 시정하여 조금이라도 공정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며 보수들이 주장하는 대로 퍼주기는 아니다. 시장이 왜곡시켜 놓은 분배구조와 계급적 구조가 재생산하는 신분적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강탈장물을 회수하여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위인 것이다. 부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미국보다 북유럽국가가 사회적 신분 이동이 활발하다는 조사가 나온 것은 복지국가의 공정성을 의미한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은 그런 점에서 사실이다. 복지는 사회구성원들이 세금 등을 통해 십시일반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서로 돕는 거대한 공제조합 활동이다. 부자가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단지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하게가져온 소득을 일부 환수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다. 반면 빈곤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몫을 되돌려 받는 것이기에 이 또한 정당한 것이다. 중남미나 남유럽의 복지가 실패한 것은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공정성 회복과정이 없이 무분별한 재정지출을 한 결과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복지국가=퍼주기라는 근본적인 오해부터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소득분배의 불공정을 기계적으로 해결하려다가 실패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복지국가는 불공정한 결과를 시정하는 형식으로 해결하여 성공하였다. 그것은 결코 제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인식전환이 절대 필요한 혁명이었다. ‘국민의 집이라는 이념 하 에 수십 년간 국민의 인식전환을 꾀하여 오늘의 최고의 복지국가를 이룬 스웨덴의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눈 앞의 제도에 매달려 장기간에 걸친 인식전환에 소홀한 우리의 정치권이야말로 먼저 인식전환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