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가르침을 거부하는 한국 현대 사회! 무지의 무지

닥터 양 2022. 8. 1. 12:53

가르침을 거부하는 한국 현대 사회! 무지의 무지

 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사도행전757-60)

  87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의 거대한 획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이 훨시 많습니다. 무엇보다 군부독재를 쓰러뜨리고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 하겠습니다. 군부정권은 영구집권을 꿈꿨고 그것은 몇 몇 권력의 핵심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망성은 없으며 그렇게 해서 독재정권이 이어진 나라 치고 잘 된 나라도 없으니까요. 중국이 예외지만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의 부정적인 면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회를 지탱해 갈 권위의 붕괴입니다.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위에 의해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적 권위입니다. 여기서 종교란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는 기독교가 가장 중요한 종교이지만 기독교가 직접적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라기보다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종교적 권위인 것입니다. 물론 그 바탕엔 기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너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가르침에 의해 살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따라 살게 됩니다. 사사기 말에 나오는 왕이 없어 각자의 소견대로 살았다가 그것을 의미합니다. 사사기 끝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대 비 베냐민의 비극적인 내전은 바로 그로 인해 발생한 것입니다. 율법이 무너지고 그것을 세울 권위가 없는 무법천지 아래에서 발생한 것이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각자의 소견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남의 가르침을 더 이상 듣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것은 곧 내가 모든 것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내가 길이요 생명이라는 지극히 오만한 마음이 읽힙니다. 이것을 누군가의 표현대로 말하면 자신교라 하겠습니다. 자신을 믿는다는 종교라나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이런 식의 오만을 떠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무지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늘수록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예를 들어 봅시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과 어느 쪽이 수업시간에 질문이 많을까요? 언 듯 생각해보면 못하니까 질문이 많을 것 같고 잘 하니까 없거나 적을 것 같지만 반대입니다. 잘 하는 학생은 공부를 많이 하고 그래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자꾸 나오니 질문을 하게 되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은 질문할 거리 즉 이해가 않는 것 자체가 없으니 질문을 할 수도 하고 싶어 하지도 않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이 생판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면 물어볼 것이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관심 분야라면 당연히 질문이 많겠지요.

  삶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고 그에 대하여 열심히 성찰한 사람들은 도리어 그것을 위하여 더 많은 가르침을 따라 다닙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강의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것은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런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소수이지만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매니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어떨까요? 그들에게는 맛있는 것을 먹는 거 여행을 다니는 거 연애 잘 하는 거(아름다운 사랑과는 거리가 먼 쾌락적 연애) 예능 프로 보며 웃는 거 그것이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도올 선생의 강의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에 도올 선생님의 출연했을 때 저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른바 예능 연예인들이 선생님을 가지고 놀려고 하더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 도올 선생님은 그 정도의 가치 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안타깝지만 선생님은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상파 방송은 오직 즐거움만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보고 들어야 할 것을 전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러한 노력은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토론방송 시사프로는 심야로 옮겨지거나 사라지고 그곳에 드라마가 예능이 들었습니다. 국경일이면 보내던 특집방송은 KBS1방송 이외에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래서 국경일이 그저 노는 날로 바뀐지 오랩니다. 자칫 무심코 지나가기조차 할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지식인들은 오만하다. 왜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하나? 그리고 왜 대중을 자꾸 가르치려고 하나?”라고. 이 말은 우리는 너희가 설명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 그만 좀 하세요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정말 그들은 가르침도 설명도 없이 잘 알고 세상에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습니까? 인생에 대하여 세상에 대한 고찰을 담은. 여러분은 시사프로그램을 일주일에 몇 개 보십니까? 각종 팟캐스트의 방송을 정기적으로 보고 계십니까? 주변 사람과 사회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다음의 단어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까? 검수완박 검언유착 조국사태. 여러분은 세월호 유족 중 대부분이 보상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코로나 사태로 제일 피해를 많이 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과연 여러분 중 얼마나 되는 사람이 이 질문에 모두 예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러분은 얼마나 삶과 세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살피고 공부하고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거의 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저 포털의 기사나 읽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피상적인. 우리 나라 언론의 부패와 타락상을 제대로 알면 여러분은 거의 쓰레기 수준의 정보를 접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거짓말이라고요? 제 경험이 증명합니다. 위에 언급한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일반인은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보도 그대로를 믿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내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술맛 떨어진다네요.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 눈총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심지어 종교 이야기를 한다고 단톡방에서 몰매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저에게 공격을 가할까요? 간단합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거 누리며 살려는 사람에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피하고 싶은 주제들이지요. 분명히 우리의 삶의 문제인데요.

  이런 사람들이 설명도 가르침도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도리어 관심이 있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의문이 많이 생기니 그런 분들과 이야기 하면 열띤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랑은 공부에 대하여 얼마든지 이야기가 되는 것과 같죠. 대안학교 시절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와 한 시간 가까이 경제토론을 했죠. 끝나고 보니 칠판 하나 가득 그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흐믓한 시간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뿐이다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가 말한 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엄청나게 박식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거대한 지식과 지혜의 세계에 비하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즉 지식을 지혜를 쌓을수록 거대한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무지의 지가 그를 세계 4대 성인의 지위에 올렸습니다.

  그건 공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는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재능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운이 좋은 자를 이기지 못하면 운이 좋은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결코 머리가 우수한 사람이 아니었고 다만 배움을 즐기었기에 남보다 뛰어난 수준에 올랐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도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식을 보잘것없은 것으로 여기는 무지의 지를 실천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들은 모두 이만하면 됐지 가 없었죠.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들이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수준에 올랐습니까? 결코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완벽한 사람인 것처럼 배움을 거부하고 설명을 싫어합니다. 설명을 해 주면 설명충이라고 매도합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무지의 무지라 할 것입니다. 모르니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모르는 것이 뭔지 조차 모르는 상태인 것입니다. 아예 관심도 없는데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무얼 아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기에도 너무 바빠. 그러니 그런 시덥지 않는 걸로 귀찮게 굴지 마라고.

  그것 자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 스스로를 완전한 판단주체라고 하는 오만한 생각은 버려야 하는데 현실은 다릅니다. 대학도 나오고 배울 만큼 배웠으니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제가 오랫동안 대학생을 가르쳐 보니 제대로 삶과 사회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해한 학생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연예인 이야기는 신나게 해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만 되풀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무지의 무지인 상태이니까요.

  우리는 이러한 무지의 무지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이든 사회든 자신을 개선시키려면 잘못된 것을 알고 인정해야 하는데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나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오죽하면 배웠다는 지식인들조차 그런 낙관론에 빠져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의 제자인 스테판은 그러한 무지의 무지한 이스라엘 민중에게 살해됩니다. 그가 진리를 선포하자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한 생각과 의견이 부정되니까 돌을 들었던 것입니다. 돌을 들었다고 해서 민주화 시대처럼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니까 죽인 겁니다.

  스테판의 죽음이 우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합니까? 오늘날에도 이런 무지의 무지는 계속됩니다. 제가 어느 프로스포츠 팀 게시판에 정확한 인식을 위한 글을 올리자 그것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고 온갖 테러를 당한 기억이 납니다. 한낱 프로스포구단 게시판에서도 무지의 무지는 바른 것을 배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의 가족에 대한 공격까지 해서 결국 글을 삭제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광기를 부리더군요.

  가르침이나 설명이 필요 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처럼 사는 시대도 없습니다. 대중은 각자의 삶에 매몰될 수 밖에 없기에 그들에게 바른 길을 인도할 지도자 선생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순간부터 사회는 정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화는 모든 사람의 지혜와 판단력까지 동등하게 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가르침과 설명을 거부하는 오만함으로 스스로 진리와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지도자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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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우리가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판단하여 가르침이나 설명을 거부하는 오만함을 갖는 무지의 무지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