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성경공부는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생명의 양식

닥터 양 2022. 7. 26. 09:31

성경공부는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생명의 양식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다모데 후서 315- 17)

 

  신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구약개론의 강의를 듣는 중에 저는 의문을 느꼈습니다. 교수님은 칠판에 열심히 판서를 하시면서 강의를 하고 계셨는데 저는 왜 저렇게 많은 지식을 가르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입시대비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리로는 그런 기초지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특히 목회자가 될 사람들이니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식을 위한 지식 같았습니다. 물론 지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학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기에 장차 목회현장에서 성도들에게 전수할 것이 필요하며 그것은 그들이 깨닫고 느끼고 그래서 그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 하겠습니다.

  비단 구약학 개론만이 아닙니다. 여러 강의가 그렇게 지식 위주의 강의가 되다 보니 신학교 공부가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진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토론이나 대화가 상대적으로 줄고 오직 지식만을 전수하는 수업이 주가 되는 것에 대하여 과연 이런 교육을 받은 신학생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이러한 언어가 필수일까요? 신학자에게는 필수이겠지요. 마치 저같이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한문이나 연구 분야의 외국어가 필수인 것처럼. 원사료를 읽어내고 그것에서 사실을 발견하려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신학생은 개중에는 신학자 지망생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이수과정이 틀립니다.- 대부분은 목회자 지망생인데 굳이 원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이신 아사야마마사하루 목사님(제가 일본유학시절 섬기던 교회 담임목사님) 은 스스로 자신은 헬라어도 히브리어도 모두 모른다고 시인하셨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말씀을 전하셨죠.

 목회자는 굳이 말하면 교사에 해당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역사교사에 가깝습니다. 성경이라는 오래된 경전을 풀어주어 성도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고등학교 교사가 원사료를 스스로 읽고 해석할 능력이 필요없듯이 목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소화해 내고 이를 성도들에게 잘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역사교사가 전문가의 연구를 그렇게 소화하는 것처럼.

  저는 지식에 대한 생각이 조금 특이합니다. 지식이 지식으로만 끝나면 의미가 별로 없고 그것이 살아서 그 사람의 삶을 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가 가장 힘쓴 것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지식을 전하느냐가 아니라 제가 전하는 지식이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느냐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지식은 예전만큼의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면 웬만한 것은 다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해당 성경구절도 인터넷 검색으로 거의 다 찾아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인터넷 성경으로 검색하여 그대로 복사해서 옮기면 되니까요. 그것이 오타를 막아줍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굳이 시간을 내어 수업이나 강의를 듣는 것의 의미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같은 지식이라도 보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 수준에서 지식을 받아들입니다. 대학생들은 대학생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교수는 교수 수준에서 받아들입니다. 저는 그들보다 나은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적어도 제가 공부한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니 전문가의 눈으로 받아들여 전할 수 있기에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특히 제가 가르치는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의 경우 지식이 그 자체로서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매우 적습니다. 그보다는 그 지식을 종합해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상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 것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무슨 작품을 썼고 누가 뭐라고 이야기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도 사회를 판단할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외우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공부도 우리도 그런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 지식을 아무리 쌓아도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자동차 운전 요리하는 법 등이 훨씬 유용한 지식입니다. 일반 학문에 비하여도 성경지식은 내 세울 것이 없습니다. 아닌 말로 불신자들이 성경 지식을 인정이나 해 주고 또 그들에게 가르치려고 한들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성경 지식을 완전히 무용한 것이라 하지는 않겠습니다. 기초적인 지식은 자신을 위해 또 나아가 전도용으로 알아 두어야 하겠지요. 특히 4영리에 해당되는 것 인간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고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본지식에 이를 뒷받침할 지식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에도 전도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칫 지식 위주의 성경공부가 삶과는 전혀 무난한 호기심이나 충족시키는 것이 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가 성경공부를 하고 있어도 그것이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하는 성경퀴즈대회 같은 것이 도리어 신앙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그래서 자신은 성경퀴즈대회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함께 하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시켰더니 머리만 커져 버렸다신앙이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아실 겁니다. 신앙은 지성도 감성도 아닌 영성으로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공부가 지성적인 면을 지나치게 확대시켜 영성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리새파 인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경에 정통했습니다. 평생 성경을 외우고 공부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꾸짖음을 들었습니다. 머리만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신앙 때문입니다. 신앙은 성경은 머리가 아니라 영성으로 그리고 삶 가운데의 실천으로 익히는 것인데 그들의 신앙은 영성은 책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나와 상관없는 2천 년 이전의 고전에 적히 것이라고 생각하고 배운다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으나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드러나게 됩니다.

  어느 교회의 전도왕이라 불리던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늘 전도를 다니는 바람에 가정을 거의 내 팽겨칠 정도였습니다. 그의 아들은 그 덕분에 매일 곰국만 먹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들이 꼭 합격하리라고 믿었던 공군사관학교 입시에서 그것도 첫 번째 관문인 신체검사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평소 어머니가 말씀 하신 대로 교회로 달려가 기도를 하였습니다. 사연을 들은 전도사님이나 다른 분들이 위로를 했지만 그에겐 그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 권사님에게 연락이 와서 통화를 하던 중입니다. 왜 교회에 갔니 하는 질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건 너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고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아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멘붕에 빠졌습니다. 믿음이 좋다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권사님의 거짓된 믿음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 권사님은 전도왕이 될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보람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 마음에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권사님에게 얼마나 성경 지식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한 셈입니다. 지식은 많았지만 (전도를 그렇게 했으니 당연하죠)그것이 진정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그냥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서 도리어 삶과 일치하는 지식을 익힌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을지 모르나 상당 수준 삶과 지식이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군대에서 집총거부로 엄청난 고난을 받았던 것 그 후에는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감수해야 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타협을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 것 등이 바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전쟁애 나면 협조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거부하여 미국시민권을 포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일반 기독교인 중에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가질까요?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11양육시스템에 의해 철두철미하게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경험담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얼마나 마음으로 수용하고 있습니까? 아니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내 삶을 변화시키려고 마음으로 말씀에 갈급해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요량으로 성경공부에 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공부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인생 전체 나아가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점을 명심하고 성경공부를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여기고 온 맘을 다하여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래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기적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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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우리가 성경을 지식이 아닌 생명의 양식으로 여기고 그것을 배움으로써

우리의 삶 전체가 변화할 수 있게 인도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