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믿음의 기초 ‘진정한 용기’

닥터 양 2022. 3. 24. 09:38

믿음의 기초 진정한 용기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에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9)

 "주 말씀 향하여 달려 가리라 힘도 아닌 능도 아닌 오직 성령으로”(‘주께 달려가리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48년이 지나 머지않아 50년이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길은 일직선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시간 방황과 회의 염려로 가득하여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지식과 자신의 확집으로 인해 불신자로 살아간 시간도 제법 있습니다. 굳이 구분하면 신앙에의 입문 형식적 신앙생활 그리고 거듭나고 나서의 시기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부속유치원을 다녔습니다. 한국 기독교계의 거목이신 방지일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영등포 장로교회의 부속 유치원은 지금 생각해도 시설이나 교육내용이라는 점에서 엄청나게 훌륭한 유치원이었습니다. 넓은 마당과 큰 교실 세 분의 선생님과 함께 한 유치원 생활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졸업할 때 저는 개근상을 받았는데 그 상품의 푸짐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50색 크레파스, 12색 색연필, 대형앨범, 과자종합선물세트 등등 워낙에 개근한 아이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일입니다. 저희 집안은 불교를 믿고 있었고 그렇기에 교회를 다니게 된 며느리가 알게 모르게 핍박을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저나 여동생이 교회를 다니게 되자 여러모로 압박이 들어와 조금은 힘들게 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아이를 교회부속 유치원에 보낸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이 신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셨습니다. 불교 신자인 할머니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부러 교회 유치원에 저를 보내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 유치원에 다닌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제게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복음의 씨앗이 제 마음에 뿌려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희 형제는 3남매인데 그 중에 가장 신앙에 열심인 사람이 저인 걸 보면 아마도 그 때 심어진 복음의 씨가 제 안에서 자랐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3남매 중에 유일하게 저만 그곳을 다녔고 제 동생들은 유치원 자체를 다니지 않았으니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저희 외가집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저희 집과 함께 몇 년간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장녀라 아마 책임감을 가지고 외가집 식구들을 떠안게 된 것인데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미션스쿨인 보성여중을 다니던 저의 작은 이모(어머니의 여동생 세 명 중에 중간인데 현재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권사이십니다)가 가지고 있던 성경책과 찬송가 그리고 예수님이 새겨진 십자가는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모에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못 박혀 돌아가셨단다라는 이모의 말은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못에 박혀 죽지?’ 상상만 해도 어린 저에게는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못에 박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쭉 끼쳤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살게 된 계기였죠. 아동문학 전집에서 성경 이야기를 즐겨 읽게 된 것 성탄절에 예수님의 일생을 그린 영화 왕중왕을 흥미진진하게 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 때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준비된 초신자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면 귀를 쫑긋하여 선생님이나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었고 일주일간 진행된 여름성경학교를 개근하였으며 그때 실시한 성경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도리어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의 아이들보다 신앙적 열정이 강했습니다.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이렇게까지 된 것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부속유치원을 다니고 미션스쿨에 다니던 이모의 초보적인 수준의 신앙교육 그리고 성경 이야기와 기독교 영화 등을 통해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을 트게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제 발로 교회를 나갔지만 제 발을 그리로 이끄신 것은 그 분이었던 것이죠. 만일 그것이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다면 왜 하필 저만 그런 삶을 살았겠습니까? 아마도 우리 집안에 저를 믿음의 터전으로 삼으려고 한 하나님의 뜻이었겠지요.

  제 신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제 여동생입니다. 우리는 나이차가 적은 탓인지 친구와 라이벌의 특징을 가진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어려서는 주로 라이벌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한 번은 부모님께서 위인전기 15권 세트를 주셨는데 저와 여동생은 그것을 누가 먼저 다 완독하는가를 놓고 시합을 했습니다. 사실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학년이 3년이나 차이나는 제가 훨씬 유리한 싸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동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압도적 승리라기보다는 가까스럽게 이겼는데 3년이라는 차이를 감안하면 이긴 것도 아니죠.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여동생이 훨씬 먼저 달려갔습니다. 교회 생활을 시작한 것은 저이지만 앞선 자가 뒤지고 뒤에 선 자가 앞선다는 성경의 교훈처럼 그녀는 저를 앞질러 나갔습니다. 적어도 제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까지 저는 신앙적으로 여동생의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신약성경을 여러 번 통독을 하고 교회 설교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열심인 여동생은 제게 신앙의 멘토였으니까요. 뭔가 궁금해 물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답을 줄 정도였습니다. 아마 만일 여동생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예 신앙에서 멀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리고나서 오늘까지 우리는 종교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습니다. 심지어 둘이 나란히 불신자가 되어 버렸을 때 특정 사이비 종교에 입문해서 서로를 끌어준 일도 있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남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멘탈이 훨씬 강한 여동생은 동생이라기보다는 거의 누나같은 존재였기에 제겐 든든한 버팀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조금 앞 선 느낌이지만 그녀기 맹렬하게 추격을 해 오고 있어 머지 않아 따라잡힐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역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 그리고 젊을 때는 제게 여동생에게 이끌리고 오늘날에는 제가 그녀를 이끄는 역할을 조금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일 둘 중 하나가 신앙과 먼 삶을 살았다면 오늘과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렇게 서로를 잡아주어 실족하지 않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제 신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나라 일본에 유학을 하고 나서입니다. 일본유학을 가서 처음에는 기숙사에 있었지만 아내를 부르기 위해 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방을 둘러 보고 나와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마침 교회가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죠. 일본은 기독교의 불모지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이러다 교회 다니게 되는 거 아냐?’라는 느낌이 불현 듯이 스쳐갔는데 그 염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동안 교회를 멀리하던 저는 다시 교회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당시 제가 살던 시는 인구 7만 정도의 소도시였는데 교회가 불과 4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4개 중의 하나가 저희집 바로 앞에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확률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얻은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정작 신앙을 성장시킨 계기는 따로 있었지만 그 교회가 저에게는 신앙의 기반이 되어 준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저를 만져주셨습니다. 저를 고난에 빠뜨려 그 분의 존재를 의식하는 단계로 성장시키신 것입니다. 이후로 저는 신앙의 고속도로를 달리게 됩니다. 라이벌이었던 여동생을 가볍게 제끼고 다시 앞선 자가 되었고 쉬지 않고 표대를 향해 달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여동생이 저를 따라오려고 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라이벌 관계는 매우 건강합니다. 시기나 질투는 없이 성장만을 가져오니까요.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돌아보면 적어도 신앙에 관해서 제가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만져주심으로 생겨난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토록 예수 믿기 싫어 도망다닐 때도 주님은 저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애정을 가지고 이끄셨습니다. 제 믿음의 기초는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던 것이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강하고 담대함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인간적인 힘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믿음에 따른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보기에는 같을지라도 결과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의 범위 안에 머물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세워진 믿음은 제한이 없습니다.

  믿는 만큼 우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그 분을 믿고 나아가느냐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를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끄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수많은 적병과 견고한 성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큰 소리 외치며 나아가리”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에서) 이 찬양처럼 주님을 믿고 지경을 넓혀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