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신앙의 롤모델 ‘’서로라는 선물‘

닥터 양 2022. 3. 11. 07:45

신앙의 롤모델 ‘’서로라는 선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알려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히브리서 137)

 

  제게 사촌형이 한 명 있습니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유일하게 연상인 사촌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장녀이고 결혼을 일찍 하셔서 제가 우리집의 첫째이자 외가의 장손이었고 아버지는 차남이기는 하지만 큰 아버지가 아이를 늦게 보셔서 그 형에 이어 제가 두 번째 연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형은 외환위기 때문에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형수와 이혼하고 결국 어디론가 떠나 버려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친가에서도 제가 사실상 장손이지요.

  그 형은 제가 어렸을 때 일종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함께 장사를 하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란 저는 다니던 학교와 먼 곳을으로 가족이 이사를 가면서 아직 어린 (2학년)제가 통학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친조부모님 댁에 맡겨졌습니다. 형은 그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일찍부터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래서 형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형은 저만이 아니라 사촌형제 모두에게 인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형에게는 제게 없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합니다. 가끔 다른 사촌들이 놀러 오면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형과 함께 놀려고 했고 저 자신도 그 형이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려고 애썼던 것이죠. ’저렇게 하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될거야라는 생각에.

  그 형을 따라한 것이 저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남을 따라 하면서 성장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모방은 창작의 시작이라고 하죠? 대표적인 것이 언어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어를 구사할 능력이 갖춰져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모방 때문입니다. 이른바 옹아리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언어를 습득해 갑니다. 7.8살 무렵까지 언어습득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면 영영 언어를 배울 수 없다고 합니다. 가끔 정글에서 야생동물 사이에서 길러진 아이가 발견되어 문명사회로 돌아오는 일이 있는데 그가 끝내 언어를 익히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언어의 습득 기한이 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훌륭하게 해내지는 않습니다. 제가 교회를 다녀본 경험으로는 새로 온 교인에게 친절하게 예배나 신앙생활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 교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자리에 앉히고 알아서 보고 배우라는 식이죠. 초신자 교육이 제대로 된 곳도 예배나 신앙생할 전반에 걸친 지도를 해주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모든 교회의 정보를 아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해 주는 교회가 있을지도 모르죠.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제가 2년 정도 다녔어요) 집회(그곳에서는 예배를 그렇게 부릅니다)에 참석시키기 전에 적어도 6개월 정도는 11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일반교회와는 다르더군요.

  신앙의 연륜이 꽤 길어진 지금도 저는 신앙 좋은 분들에게 배우기를 꺼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예전보다 더 열심히 그 분들을 따라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낀 것과 신앙생활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를 때는 뭘 배워야 할지도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한 게 많아지지 않습니까?

반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분들은 도리어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지만 배울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않더군요.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저의 열심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체된 교회일수록 배움에 대한 열정이 없습니다. 그저 목사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만으로 만족합니다. 학교로 치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할까요?

  열심히 배우고 그것을 모방하는 것이 교만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라는 것도 다른 것처럼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정체되기 마련이고 심지어 후퇴하기도 합니다. ’난 이 정도면 되지라는 식의 생각이야말로 교만 아닐까요? 그런 분들은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을 질시하고 비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멈춰있거나 후퇴하고 있는데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니 초조해져서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나 이런 현상은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멘토링을 해 주는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만족하면 우등생이 될 수 있겠니? 절대 안 돼. 방과 후에 자율학습을 하고 참고서를 공부하고 때론 사교육도 받으면서 실력을 연마해야 우등생이 될 수 있어. 신앙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끝내지 말고 개인적으로 주님과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져라.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교실에서 배운 것으로 모든 학습을 끝낸 학생이 우등생이 된다면 그는 아마 영재급의 학생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방과후의 추가학습을 필요로 합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나는 예수님을 따라 할 테니 여러분은 나를 따라 하십시오라고 권합니다.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롤모델을 찾아 모방하면서 성장을 하려고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론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결코 부인될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 갖가지 방법으로 모방을 시도합니다. 요즘에는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 폰은 잘 못 쓰면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되지만 잘만 쓰면 신앙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 찬양 기도 전도 예배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이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테이프를 구입해 듣거나 DVD를 사용해 보아야 했기에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면 족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프라인에 의한 전통적 방법도 다양하게 주어집니다. 기도원은 오프라인에 의한 대표적인 신앙 도우미가 되고 있습니다. 영적 서적은 아직도 우리에게 신앙의 양식을 제공합니다. 각종 신앙학습의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학습기회를 이용하고 있으며 대단히 유익함을 절감합니다. 최근에는 모교회에서 하고 있는 6개월짜리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저의 신앙생활은 더욱더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의 시대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롤모델을 제공해 줍니다. 모방이라고 해서 반드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도 일종의 모방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복받은 세대입니까? 과거에 어느 세대가 이러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습니까? 그런데 이런 호사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아직도 자기 교회내에서만 배움을 한정시키려고 하는 분들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해야 합니다.

제가 받는 훈련을 주도하는 교회의 지도자님께서 이런 말을 하십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성경만 보세요. 다른 것은 잘못된 것으로 오염될 수 있으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명백한 모순입니다. 자신이 하는 설교 가르침 프로그램은 오염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책이나 교육 설교도 하나님의 음성이나 가르침이 없이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결국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이단교주적인 발상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감히 누가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저는 그런 가르침은 무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선이 비단 그분만의 일일까요? 성도들을 자신이 주는 영의 양식에만 묶어 두려는 목회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죠. 다른 것을 먹어 성장하면 자신이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이단 사이비의 영향을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성도들이 영적 성장보다는 자신의 목회를 편하게 하기위해 영적 정체성을 가져오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생각은 과감히 버려져야 할 것입니다. 공부도 학생이 자기주도로 해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자기주도적 신앙생활을 해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니다.

  교회직분이 발목을 잡습니까? 신앙경력이 배움을 방해합니까? 심지어 교회짬밥이 교만을 가져옵니까? ’내가 왜 배워? 장로인데 권사인데 신앙경력이 몇십 년인데 이 교회 다닌 지가 얼마인데이렇게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여 배움을 통해 모방하기를 꺼려 하십니까?

  세계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성인이라 불린 것은 끊임없는 배움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지의 지를 강조합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배움의 출발이며 성장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들보다 낫습니까? 이교도들도 이렇게 열심인데 왜 우리가 제자리에 머물다가 후퇴를 해야 합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끊임없이 신앙의 성장을 위해 일신우일신(날마다 새로워진다)의 마음으로 배움과 모방을 함으로써 완전한 신앙인이 되어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