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심음의 법칙 ‘설득’

닥터 양 2022. 1. 16. 19:34

심음의 법칙 설득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니 하니라(학개 113)

 

  저의 신앙의 멘토 손선미 선교사(인터넷 한가족 교회)심음의 법칙을 강조하며 먼저 심으라고 역설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그리고 그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홍해가 요단강이 먼저 갈라지고 그곳을 건너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갈라지기 전에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내가 먼저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먼저 심어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라고 해야 할까요?

  얼마 전 젊은 청년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제 나름대로 설명을 했습니다. “네게 누군가가 1억을 주면서 천만원을 내게 달라고 한다면 줄 수 있겠는가?” “” “그럼 먼저 천만원을 달라, 그러면 1억을 줄게 라고” “.....” “주기 어렵지?” “” “바로 그것야 그럴 때 믿고 천만원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믿음이야. 상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하지만 먼저 1억을 받는다면 누가 못 믿겠는가? 그건 믿음이 아니라 팩트야, 그렇습니다. 먼저 1억을 받았다면 천만원을 내 주는 것이 100%가능합니다. 돈에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이미 1억을 받았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먼저 천만원을 내라고 하면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천만원 받고 속된 말로 튀어버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는 것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하지요.

  어떤 펀드매니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수익을 100% 200% 올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맡깁니다. 그가 투자를 하라고 하면 누구나 순종합니다. 그것이 왜 가능하겠습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바로 실적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그렇게 해서 커집니다. 우선 자신이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믿음이 싹트게 됩니다. 하나님이 때론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헌금을 얼마 해라 든지 누구에게 돈을 주라든지 아니면 어느 방법으로 일을 하라든지. 그런 것이 맞아 떨어져 좋은 결과를 낳으면 믿음이 더욱 굳건해 질 수 있겠지요.

  그것과 아울러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간증책이나 간증영상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제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고 또 만약 제가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 간증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간증책이나 영상을 경멸하기조차 합니다. 천박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어떤 분야에서 달인이 되려면 선배들의 경험을 배우는 게 좋습니다. 아닙니까? 신앙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응답받고 그것을 헤쳐나간 사람들의 간증은 큰 힘이 되며 실제로 어려움에 닥치면 그것을 따라하면서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런 책을 거의 읽지 않은 분들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쩔 줄 모르거나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 헤매이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아이러니하죠.

  손선교사의 심음의 법칙에 대한 설교는 저에게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피아노가 필요해 주님께 기도하고 피아노 가격의 10분의 정도를 헌금했더니 누군가가 피아노가격에 해당되는 돈을 가져왔다거나 중고 자동차를 사려고 했는데 1/00도 안 돼는 돈을 헌금하며 기도했는데 누군가가 그 돈을 가져온 것 등 놀라운 간증이 쏟아지는게 아닙니까? 먼저 심어라 는 것은 바로 홍해나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먼저 믿음을 보여라 그리하면 주리라!

  사람들은 반대의 것을 요구합니다. “주님 제게 먼저 주세요. 그럼 드릴 게요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요구입니다. 먼저 받은 다음에 주는 것은 믿음이 필요없습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1억 먼저 주고 내놓으라고 하면 믿음이 아니라 팩트인 것입니다. 이미 돈을 들어왔으니까요. 그렇게 그냥 줘 버리면 진정한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마치 답을 알려주고 시험을 보는 것 같으니 실력이 늘겠습니까?

  저의 심음의 법칙에 대한 간증을 하죠. ‘천국 3층천의 비밀’(하늘출판사,2021)의 저자 서숙희 목사님의 예수님 교회에서 개최하는 부흥회에 자주 갑니다. 처음에는 부흥회니까 갔는데 나중에는 그것에 더하여 다른 이유가 있어 가게되었습니다. 그곳에 참가하면 반드시 굵직한 기도응답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천에 있는 김치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옮기려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서를 내고 기다리는 중에 부흥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근무기간을 일부 빼서 갔기 때문에 급여에서 몇 만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잔업수당까지 포함하면 이틀동안 적어도 10만원이상의 손해를 보았고 게다가 왕복 교통비 감사헌금까지 포함하면 최소 20만원이상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던 취업이 부흥회가 끝난 직후 결정되었습니다. 20만원의 손해가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 아니냐고요? 그것이 딱 한 번 뿐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3,4번 이어지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이러한 결과를 보고 움직이니까 쉽지만 처음엔 손해를 감수하고 참가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언제나 그렇듯이 반드시 채워주실 거라고 믿기 때문에 먼저 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를 한 번도 실망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심은 액수의 50100배로 채워주신 것입니다. 심음의 법칙은 믿음이자 실화였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이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하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같은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올 때 법칙이 됩니다. 저에겐 심음의 법칙이 한 번도 어긋날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야말로 과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있어?”라며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생각 아닌가요? 명백한 증거를 아무 근거도 없이 부인하고 자기 생각대로 주장을 하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가에 대한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근거를 물으면 대부분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와 이럴 수가! 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생각입니까? 심지어 중학교 때 이미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기에 근거를 물으면 그냥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근거를 찾거나 합리적인 이유를 대거나 하는 노력도 없이 자신들이 그냥 그렇게 생각되니까 그렇다니 이거야말로 근거없는 믿음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성경에서 나오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분들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응답을 받을까요?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에게 응답할 신은 없을 테니까요? 신을 아예 부정하는데 신이 뭐가 아쉬워 응답하겠습니까? 제가 신이라면 기분 나빠서라도 무시할 겁니다.

  오늘의 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반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믿음을 소홀히 하여 결과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심음의 법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먼저 반응해야 일어나는 법칙이라 하겠습니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감을 심어 열매를 따먹는 법칙인 셈이죠.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축복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기에 우리의 반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심어라 그리하면 응답하리라 하며.

  예전에 박한상이라는 청년이 자신의 부모님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한의원을 하시는데 워낙 명의라 억수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마구잡이로 준 것인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주었지만 결과는 없으니 부모님은 그에게 돈을 덜 주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유산상속을 노리고 부모님을 수십군데 찔러 살해 했습니다. 살해현장은 피와 살이 튈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자식에게 함부로 퍼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이시라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학개라는 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에게 선포한 말씀인데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짓지 않으면 토지의 소산에 대한 축복을 주지 않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심으라는 메시지이지요.

  만일 어린 자식이 적은 용든을 모아 부모님의 선물을 마련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무척이나 기쁘지 않을까요? 저의 큰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저에게 수첩을 선물했습니다. 어디서 생긴 돈으로 샀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기뻤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돈이 없어 돈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믿음을 보여야 주셨을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버릇없는 자식을 만드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원하지 않으시니 그런 번거러움을 마다하시지 않으실 뿐임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심음의 법칙을 믿고 절대순종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함으로써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