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믿음과 자녀 양육 ‘영적인 자양분’

닥터 양 2022. 1. 13. 17:47

믿음과 자녀 양육 영적인 자양분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생존에 큰 힘이 됩니다. 뒤의 세대가 앞의 세대보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쓰고 교육을 받는다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들의 삶에 지나치게 힘을 기울여 결과적으로 자녀들의 양육을 소홀히 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2세가 자라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가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마태복음 711)라는 말처럼 부모를 하나님으로 비유하며 가장 좋은 것을 자녀에게 제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은 그들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자녀양육에는 그들이 가치관이 담겨져 있다고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바로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가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부모의 가치관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였습니다.

 흔히들 돈많은 부모는 사교육을 많이 시켜 자녀를 잘 키우고 가난한 부모는 그렇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그것은 반쪽짜리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열의가 상대적으로 돈많은 부모가 낫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 영향을 받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력이 있는 부모일수록 자신이 배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잘 알지만 가난한 부모의 경우 배움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 아이의 성적에 반영됩니다.

  어떤 아이의 엄마가 저에게 학습을 중단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묻자 아이가 공부하느라고 놀지를 못해서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요즘 세상에도 이런 엄마가 있나하며 의아해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중단이유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학습지에 소요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엄마가 학습보다 노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결정인가 아닌가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 아이는 결국 엄마의 가치관에 의해 학습에 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에게 학습에 지항을 주는 결정이나 행동을 합니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들입니다. 학교를 보내지 않고 놀러다니거나 학습을 해야 할 시간에 자주 외식을 하러 나가거나 해서 교사를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식으로. 그들에게는 공부보다 노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시키는 것이죠. 부모의 무절제함이 그대로 아이의 무절제함으로 이어지기 쉬운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야말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들을 모른 채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빈곤의 대물림을 경제적 원인에 돌립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사교육을 못 받아 공부를 못하니 다시 가난해진다는 식으로. 이러한 분석을 1도 맞지 않는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미 언급한 대로 반쪽만의 진실입니다. 물론 어느 쪽이 진실이든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능력과 학습능력이 비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의 가치관이 생각보다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신앙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 주고 싶어 하나 생각대로 되지 않아 걱정을 합니다. 오죽하면 모태신앙못해신앙이라고 비아냥대겠습니까? 부모에게 주어진 신앙이라 구원의 감격이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니 그런 결과를 낳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요? 모태 신앙인들은 모두가 무기력할까요? 결코 아닙니다. 제가 다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담임 목사이신 이영훈 목사님은 4대째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난 분이시지만 누구보다도 믿음이 좋으십니다. 게다가 인격적으로는 최고의 수준을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흠이 없으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태 신앙인이라 무기력하다는 것은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여겨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이미 설명한 것처럼 부모의 가치관과 관계가 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누구나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나 실제로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의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믿음을 우선시하는 양육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키우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으니 자녀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교인들이 자녀에게 주는 것 열을 올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을 최우선으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들이 믿음을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됩니다. 아닐까요? 맞지요? 그들에게는 믿음이 우선순위가 아니고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상태를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의 교육을 특히 사교육을 더욱 신봉합니다. 세상의 교육에는 엄청난 교육비를 쓰면서 신앙교육에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매일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신앙교육에는 관심을 그다지 두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맡아 인도했는데 교사들이 수련회를 12일로 하자고 해서(제 계획은 23)이유를 물었더니 아이가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기 때문에 1주일밖에 쉬지 못하니까 더 쉬게 하고 싶어서요라고 했습니다. 명색이 교사의 수준이 이 정도면 다른 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오늘의 필자는 그와는 대조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폐결핵으로 누워지내야 했던 필자의 어머니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가난한 나라 인도에서 폐결핵은 우리의 암만큼이나 무서운 병인가 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폐결핵은 암보다 무서웠으니까요. 결국 어머니는 자녀들 곁을 오래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자녀들은 남들의 신앙적 멘토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까지 신앙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오로지 어머니의 신앙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열악한 조건이라도 부모가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들 자신이 믿음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에게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없으니 소홀히 할 수 밖에요. 아닐까요?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 전승의 실패의 책임을 자녀에게 떠넘기지 마십시오. 그런 자세가 실패를 가져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인상이 좋아 보여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예수님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이요 외식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믿음은 열매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사도바울이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행위가 없다면 그가 과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모로서 자녀에게 주는 가장 좋은 것이 믿음이 아니라면 그들의 가치관의 중심이 믿음이 아님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믿음을 우선시하지 않는 사람에게 참된 믿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앙의 전승이 어려운 것은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하얀 도화지와 같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느냐에 따라 그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자신들이 정말로 믿음을 우선시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실천하는데 아이들이 딴짓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바람둥이 부모의 아이가 바람둥이가 되기 쉽고 술주정꾼의 아이가 술주정꾼이 되기 쉽다는 말은 허언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그만큼 부모의 영향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녀들을 정죄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믿음없음을 합리화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의 아이는 없다. 문제의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새기십시오. 죽어가면서도 신앙만은 남기겠다고 한 필자의 어머니의 마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 신앙인이라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믿음이 제2 3순위이라면 결코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너의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보내라고 하신다면 순종하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 저는 주님처럼 되고 싶습니다가 진심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여러분이 자녀에게 하는 행동이 바로 곧 여러분의 믿음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녀에게 제대로 신앙을 전승하고 있지 않다면 자녀를 탓하지 말고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자녀에 대한 신앙의 전승을 양육의 최우선과제로 놓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