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맡겨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쉬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는 살아갈 미래에 대한 고민을 꽤나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청소년들이나 대학생이 보다 많은 꿈을 가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물론 여성에게는 역으로 지금보다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진학률은 낮고 (30%정도) 여성의 경우 20%정도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아 제법 사는 집 귀한 딸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대졸여성을 뽑는 기업도 매우 드물었기에 전문직이 아니면 대졸여성이 사회활동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경제성장률은 평균 10%대로 지금의 4,5배정도이니 취업시장은 완전히 공급자(취업지망생)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졸 남성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시대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대졸남성에게 또 다른 의미의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기회가 주는 ‘행복한 고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다양한 기회를 놓고 고민하는 사치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우리에겐 그런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학생들이 스팩을 쌓으면서 청춘을 불태우는 시기에 대학 생할의 낭만을 만끽하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밤을 새며 인생과 세계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여유도 있었습니다. 저의 고민도 그런 여유를 전제로 하는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제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바로 어떻게 살아야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가였습니다. 10%의 성장률은 절대적으로 인력의 부족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요즘 일반화된 주5일제 근무란 꿈과 같았을 정도로 우리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주6일제는 기본이고 휴일근무도 다반사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저는 그런 직장에서 근무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어쨌는지 모릅니다. 물론 취업한 친구들을 통해 또는 매스컴의 보도를 통해 그러한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노동시간에 대한 대가는 높은 급여와 보장된 미래였습니다. 30대 초반에 과장을 다는 것은 기본이고 30대 후반에 임원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니었을 정도였으니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0이 채 안 되어 현대건설 사장이 된 것은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그 시대이기에 가능했던 조금 특별한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회사 규모는 급속히 커지는데 인력은 적으니 고속성장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치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에 30대 초반의 인물이 군 참모총장을 하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35세에 별을 달았는데 그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빠른 편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최초의 정규 육사생이 되어 4년간의 교육을 받게 되어 한국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도리어 늦은 승진을 가져왔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모두가 고속승진을 했기 때문이죠.
경제에서의 이러한 황금시대는 조금 늦게 찾아왔습니다. 해방이 되어 일본의 지배자들이 사라지고 관공서에서는 이러한 초고속승진이 일반화되었지만 경제계에서는 생각보다 그런 현상이 적게 일어났습니다. 중요 산업시설이 북한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점도 있고 경제규모 자체가 식민지 경제라는 한계 때문에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원조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확장성이 미약했다는 것도 작용했습니다. 1960년 초까지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 가까이가 해외원조에 의해 충당되었다니 당시 한국경제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며 고도성장시대가 열리자 경제계의 황금시대가 시작되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환경에도 힘입어 이른바 ‘셀러리맨의 신화’를 쓰게 된 것입니다.
요즘에는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라는 교사와 공무원 군인이 비인기 직업으로 전락한 것은 이러한 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여 파이가 갑자기 커지는데 이런 직업들은 그렇게 생긴 확장을 제대로 흡수할 수가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꾸준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는 도리어 뒤처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죠. 역으로 외환위기로 경제성장률이 현격히 떨어져도 이러한 직업들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높일 수가 있었습니다.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교사들은 자신들이 맞선 시장에서 가치가 급상승했음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새옹지마라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민간 기업에 들어가 샐러리맨의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입니다. 저의 대학 동기들은 앞을 다투어 그런 길을 걸어갔습니다. 학과 중에서 제일 인기가 없었던 사학과임에도 그랬으니 인기학과의 졸업생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 친구들은 오늘날 한 재산 모으고 제법 살고 있으니 그나마 성공한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586세대는 기득권세력으로 몰려 젊은 세대에게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기득권 세력을 가장 싫어하고 저항에 가장 적극적인 세대가 그런 입장에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당시에 안성기라는 전설적 배우가 주연한 ‘성공시대’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조미료 회사의 라이벌인 미원과 미풍의 대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안성기 배우는 거기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쓰려고 몸부림치다가 추락하여 허무하게 죽어가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라이벌 회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그들이 자주 가는 술집의 마담(여사장)을 유혹하여 그녀로 하여금 기업의 고급정보를 빼돌리게 하는 방법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결국 그녀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죽어갔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그렇게 성공시대를 꿈꾸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이러한 풍토가 너무나 혐오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노동자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분신자살을 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태일 열사가 경험한 노동환경을 586대졸남성에게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지만 삶의 모든 것을 일에 몰두하여 성공을 거머쥐려는 것이 제겐 너무나 비참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을 한 들 과연 제 삶은 무엇이 될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노동기계’가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가족은 행복할지 모르나 제 자신의 인생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 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 남성이 그것도 대졸 남성이 성공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이 반쯤은 의무교육이 된 오늘과 달리 한정된 비율만이 대학을 진학하던 시절 부모들은 대학을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출세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불효를 의미합니다. 당시에 불효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주홍 글씨’와 같은 것이었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불명예였습니다. 더구나 제법 산다는 집 장남에게 주어지는 기대는 너무나 컸기에 저로서는 도저히 감수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제가 희망하던 교사직을 포기하는 대신에 유학을 가서 교수의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라면 교사보다 더 여유 있는 직업처럼 여겨졌고(실제로도 그렇습니다)부모님 입장에서는 일반직장인 보다 훨씬 명예로운 직업이니 불효자가 될 염려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히 신의 한수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맹렬히 공부하여 국비유학생이 되었고 마침내 유학길에 올라 성공적으로 학위를 받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40이 되었을 무렵입니다. 갑자기 저는 제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살아온 삶 심지어 친구과의 관계마저 희생시키며 책과 씨름한 세월 (나중에는 컴퓨터도 포함)들이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여 왔지만 삶에 대한 진정한 기쁨이나 행복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게 되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일본에 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말하는데 제가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애당초 여유 있는 삶을 위해 이 길을 택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는 기쁨은 잠시이고 결국 남은 것은 허탈함과 피로감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니 삶의 의욕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죠.
그로부터 저는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적 성장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사업을 일으켰으나 제대로 되지 않아 빚만 지게 되었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통해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은 급히 응답을 주시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빚은 사라지고 경제적 여유를 되찾았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제 힘으로 해결하려고 버둥대던 지난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었던 제가 그렇게도 경멸했던 출세지향적인 삶을 살아 왔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그로부터 2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저의 삶은 여유로웠습니다. 적어도 쫓기는 것처럼 살아 삶의 이미와 기치를 모른 채 허겁지겁 하루하루를 보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나태하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살기는 했죠. 그러나 그것은 제 자신이 보람을 느끼는 방법에 의한 것이기에 더 이상 지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납득할 수 있는 바쁨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때론 여유를 위해 과감히 쉬어가는 결단을 할 용기도 생겼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앞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생은 아니니까요.
오늘의 필자의 글을 읽고 공감이 빨리 간 것은 필자의 삶이 저와 비슷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성이지만 미친 듯이 달려온 그녀에게도 저와 비슷한 허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여유를 가지려니 자신이 살아온 삶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죠. 여유를 게으름이나 나태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식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느끼는 일종의 병적인 심리상태라 할 것입니다. ‘여유가 죄다’라는 식의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손짓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필자에게도 저에게도 이 말은 참으로 고맙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참다운 평안과 여유를 가지게 되니 인생이 무척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예수님이 우리가 할 일을 다 해주실 것이기 때문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집안 일은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마술의 종교가 아닙니다. 누가 대신 직장에 출근하는 것도 청소와 빨래를 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좀 더 편하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가르침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저 그리고 필자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추구하는 그 목표가 과연 얼마나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또 “너희가 갖고 있는 염려가 과연 진실로 중요한 것이냐? 아니면 헛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냐”고도 하십니다. 우리는 진리를 모르기에 너무나 많은 짐을 들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것을 버리고 가볍게 다니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에 따라 살게 될 경우에 주어지는 축복을 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가르침은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죠.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 많던 짐을 대부분 내려놓고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지기 쉽다’는 말씀처럼 가볍고 편한 짐만을 멍에만을 진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삶을 맡기면 이러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삶은 자신이 책임지는 삶에 비해 자유롭고 평안합니다.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힘겹게 사시고 계십니까? 고도성장은 끝났고 이제는 저성장의 시대가 펼쳐지니 거기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도성장의 꿈을 깨지 못하고 헛된 꿈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어 그들의 짐은 무거워지고 삶은 힘들기만 합니다. 모두가 남들처럼 살 수 없는데 여전히 남들처럼 살고자 애쓰니 좌절감만 커집니다. 삼포니 오포니 흙수저니 하는 자조적인 말이 나온 것은 이러한 잘못된 가치관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삶이 없이 그저 남이 하는 것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살아가는 것은 다수의 사람을 좌절감에 빠뜨립니다. 모두가 일렬로 줄을 서서 경쟁을 하면 소수의 승리자만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수 믿는 사람의 행복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에게 축복을 받아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때문도 아니고 예수님을 고용하여 자신은 편하게 지내기 때문도 아닙니다. 삶은 그대로이지만 진리를 깨닫고 헛된 것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느 이렇게 살아야 돼’라는 왜곡된 가치관을 버리고 가장 자신답게 사는 것 그렇기에 자신을 내려놓고 살 수 있기에 참된 평화를 누리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여러분의 짐을 예수님께 맡기고 가벼운 짐만 진 채 인생길을 살아가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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