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믿음은 맡기는 것 ‘걱정에 굴복하면’ (걱정을 맡겨라)

닥터 양 2021. 12. 18. 14:36

믿음은 맡기는 것 걱정에 굴복하면’ (주님께 걱정을 맡겨라)

* 교재에는 걱정에 굴복하면으로 되어 있으나 명백한 오역입니다.

원제는 ‘surrendering worry’ 인데 surrender는 목적어를 양도한다 버린다는 것이지 에게 항복한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일 대상이 필요하면 ‘to’를 덧붙여야 합니다. 번역대로라면 ‘surrendering to worry’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편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였노라. (요한복음 103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2년 전 저는 이 말씀이 성경구절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연히(?) 구입한 찬양 테이프에서 들은 찬양의 가사가 바로 이 구절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가사 기가 막히게 지었네. 할렐루야!’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성경을 딱 한 번 통독한 상태라 성경전체의 구조와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지만 특정 성경구절을 암기하거나 하지 않아(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잘 안 되네요)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신앙 연륜이 꽤 있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믿는 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11년 전 제가 어느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할 때였습니다. 학년의 벽을 허문 무학년반을 맡고 있었는데 고3 아이가 이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는 간호사를 꿈꾸는 친구였고 교회 반주를 할 정도로 피아노 실력도 뛰어났으며 가족 모두가 신앙생활을 할 정도로 신앙적 기반도 튼튼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공부에 바쁜 고3이 그런 말을 하니 기뻤죠. 그만큼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아뢰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지키고 있을까요? 염려는 우리의 정신을 마음을 갉아 먹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늘 염려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릇 지킬 것 중에 으뜸은 마음이며 그것은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염려의 공격에서 마음을 지키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믿음이 작거나 또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믿음이라는 말을 잘 쓰지만 (특히 금융회사에서 자주 쓰죠. 또 악플에도 사용합니다. ‘믿고 거르는 000’)신앙생활에 대하여는 그것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니 믿음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것도 김영삼에게 가면 쉬워지고 쉬운 것도 김대중에게 가면 어워 진다두 정치가의 특징이 이렇게 잘 나타나는 표현도 없을 것입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참으로 멋진 말이죠? 누가 한 말일까요? 박학다식한 지성적 정치가 김대중의 말일가요? 아닙니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무식한(?) 김영삼의 말입니다.

  한마디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김대중은 생각이 많고 지식이 넘치니 쉬운 것도 어렵게 풀어버리는 악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설은 기가막히지만(정말 대단한 연설가입니다. 인터넷으로 찾아 들어 보십시오. 혀를 찰 겁니다) 이름과는 달리 대중에게는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은 무식해서 이래저래 말하지를 못하니 핵심을 파악해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니 대중을 열광시킵니다. 속된 말로 동네 아줌마 아저씨도 알아들을 이야기만 하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거죠.

  우리가 믿음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학문적으로 지식적으로 풀려고 하니 어려워집니다. 여러분이 재테크를 위해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된 펀드 매니저가 있는데 그에게 맡겼더니 꽤나 좋은 수익이 나왔다고 합시다. 그래서 더 큰 돈을 맡기고 또 맡겼는데 계속 수익을 많이 내줘 원금의 몇 배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하기를 수십 번! 아마 여러분은 그를 엄청나게 신뢰하여 그에게서 나온 투자자문은 무조건 믿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그로 인해 엄청난 자산가가 되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물을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럼 여러분의 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했나요? 000님이 하셨죠. 저는 그저 믿고 맡긴 것 뿐입니다참 쉽죠? !

  이게 믿음입니다. 너무 쉬워 싱겁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계속 헤매고 계십시오. 그러다 깨달음이 오시면 돌아오세요. 저는 하나님만큼은 아니지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 결코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고요? 저도 공짜로 얻은 거니 자랑할 수가 없기 때문이고 또 여러분들처럼 어렵게 생각하다 개고생한 경험이 있거든요.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하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그런 과정을 거쳐 믿음을 키우는 것이니 믿어지지 않더라도 좌절하거나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계시면 그것이 어느 날 큰 나무가 되어 새와 짐승이 모여들 날이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믿음에 대한 갈급함조차 없이 그저 형식적 신앙생활에 만족하는 분들이지요. 우등생은 공부에 대한 고민도 많고 질문도 많지만 열등생은 고민도 없고 질문도 없지 않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게 된다면 우등생이라는 증거니 그 간절함으로 계속 정진하시면 됩니다. 그 역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실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믿음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저의 신앙적 멘토이신 손선미 선교사의 강의를 듣다가 한 가지 느낀 불만이 있습니다. 이 분이 믿음이 너무 좋으니까 왜 믿음이 없는지를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마치 어려서부터 스타플레이로 각광을 받은 선수가 실력없는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왜 믿지 못하는 겁니까?“라고 언성을 높이십니다.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야 바보들아! 왜 못 믿어? 나처럼 그냥 믿어!’라는 느낌이 들어 듣기에 따라서는 심히 불편할 수 있으니 그건 일종의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난 너희하고 달라. 그러니 이렇게 잘 믿지!’라는 식으로 들릴 수 있거든요. 제가 오해한 것인가요? 그러면 좋겠습니다. 물론 손선교사에게 그런 마음이 있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신앙의 엘리트는커녕 잡초처럼 신앙을 겨우 이어온 (현실의 경력과는 정반대로)저는 엘리트 선수가 아니라 연습생출신의 무명선수였기에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제 여동생은 저에게 타고난 교사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 공부에 대하여도 지능이 아니라 하나하나 익혀가며 이해한 것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이 생겨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 수업 중에도 나 같으면 이렇게 설명할텐데 너무 어렵게 말씀하시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김대중 선생을 더 존경하지만 자신은 무식한 김영삼 선생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하긴 그러니까 김대중을 더 존경하는 것 같네요. 다르니까.

  선수들도 엘리트출신이 있고 무명에서 어렵게 올라온 경우가 있는 것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심이 부족하던 시절 아니 믿음이 뭔지 잘 모를 때는 간증을 들을 때 은혜가 되기는커녕 시험에 들었습니다. ‘뭐야 짜증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난 그런 게 없어. 저렇게 해 주시면 나도 저 정도 하겠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하나님은 차별주의자이신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차별주의자이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입니다. 그것의 깊고 깊은 뜻은 아직도 정확히 모르지만 이젠 그것이 전혀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제가 성인군자라서? 절대 아닙니다.

  이 또한 기본원칙만 알면 깨달을 수 있는 평이한 것인데 자꾸 어렵게 생각하니 쉬운 것이 어려워집니다. 무식한 제 말씀을 들으세요. 믿음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좋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선한 존재가 아니거든요. 선물은 차별될 때 위력을 발휘합니다. 능력에 의한 것이라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줘야 하지만 선물은 다릅니다. 차별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택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물을 주어 그를 일하게 하십니다. 남보다 더. 모두가 사도일 수 없고 교사일 수 없고 각각의 직분과 은사에 따라 일하라고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죠. 그런데 모두가 같은 은사 은혜를 받으면 누가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별다른 감격도 없는데. 그것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시니 당사자는 그 은혜에 감동하여 자신의 생명조차 내주고 싶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하나님이라고 예외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스러운 신하를 키우는 방법은 특정인을 편애하여 그에게 큰 은혜를 베풀면 됩니다. 잘난 사람에게 주면 지가 잘나서 된 줄 아니 당연시할 뿐이죠. 맞죠?

  그렇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드라마는 여전히 이어집니다. 신앙의 엘리트에게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엄청난 은사와 은혜가 내려 감동을 하고 그래서 미친 듯이 주님에게 충성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되어 버립니다. 교만이라고 하죠. 그래서 은사가 은혜가 큰 사람들이 자주 교만에 빠집니다. 저 자신 대단한 것을 (신앙엘리트에 비하면)받은 것도 아니지만 작은 것에도 그런 마음이 생기니 그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잘나가던 사역자들이 어느 날 충격적인 뉴스를 우리에게 전하죠. ‘아무개 목사 스캔들’ ‘아무개 목사 교회헌금 00억원 횡령...

  하지만 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비엘리트 출신들은 다릅니다. 엄청난 은혜도 없었지만 그러기에 한 걸음 한 걸음 높은 곳을 향해 가면서 자그마한 것에도 감사하고 감동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등산으로 치면 한쪽은 헬리콥터 타고 산 정상에 올라 당장은 좋지만 더 이상 감격이 없는데 한쪽은 한 걸음씩 힘들게 올라가니 감격이 끊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앞선 자가 뒤지고 뒤에 있는 자가 앞 선다는 원리의 실사판입니다.

  그러니 스타플레이어가 명감독이 되기 어렵죠. 일본야구 최고의 명장 중에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와 모리 마사아키(森祇晶)는 다르면서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모리가 앞서 갔지만 그래서 일본최고의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성에 성공했고 반면 노루라는 연습생으로 겨우 인기 없는 구단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의 경력은 노무라가 압도적이었습니다. 노무라는 3관왕을 비롯하여 각종 기록에서 화려한 성적을 남기고(홈련 660개 등) 최다출장기록(3,017)도 세웠습니다. 여기까지를 보면 서로 다른 것 같지요?

  하지만 둘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일단 둘 다 포수 출신이라는 것이죠. 노무라는 이만수와 같은 공격형 포수였지만 그렇다고 포수로서의 리드나 전술능력이 뒤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반면 모리는 수비형 포수로 공격은 그리 화려하지 않아 빛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둘은 대단한 명장이라는 것이 같습니다. 모리는 세이브라이온스라는 팀에서 9년간 감독으로 재임 중에 무려 8번의 리그우승과 6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둡니다. 세이브라이온스는 원래 멤버가 좋은 강팀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라도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는 없을 겁니다. 노무라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라는 하위 팀을 맡아(14년간 3위 내에 들지 못함)9년 간 리그 우승4번 일본시리즈 우승 3번을 해냄니다. 둘의 성적 차이는 자신들의 능력보다 팀의 수준을 감안해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비엘리트 출신으로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그 자리에 섰기에 명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연습생 출신인 노무라는 말할 것도 없지만 모리도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요미우리의 주전포수자리를 지켰습니다. 요미우리는 그가 있던 시절 일본시리즈를 무려 9연패하게 되는데 그런 강팀에서 주전포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상으로 공을 받을 때마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아파도 그저 참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기에 선수를 육성하고 팀을 이끄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죠.

  믿음의 엘리트가 아니라도 좌절할 필요도 시험에 들 이유도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큰 은혜를 받아 높은 수준의 믿음을 가지게 되면 도리어 그에 대한 감격도 일찍 사라지고 그래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됩니다. 결국 그것을 지키지 못해 교만에 빠져 타락한 목회자나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교제하면서 믿음을 키운 사람들은 늘 기쁨과 감격이 이어집니다. 마치 지능이 낮은 사람이 배움을 즐기는 것처럼.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큰 스승이 되었는가 라 는 것에 대하여 나는 능력이 아니라 배움을 좋아하고 즐겼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다. 능력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듣죠? 즐겨라 그럼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공자는 25백 년 전에 이미 이를 깨닫고 실천한 사람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하랴”(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는 말이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오늘의 필자는 믿음이란 믿고 맡김으로써 염려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유능한 편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기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잠을 자도 놀러 다녀도 돈은 늘어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무려면 일개 편드매니저만큼도 못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펀드매니저만큼도. 그렇다면 염려가 끊이지 않겠지요. 저 역시 말로는 믿음을 외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믿음도 하루아침에 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특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시어 택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꺼번에 믿음을 주지 않으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을 그릇이 만들어져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게 과다한 은혜를 받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해서 연단하신 것 같습니다. 교만해지지 말라고. 축복이란 그저 많이 받으면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염려입니다. ‘왜 나는 믿음이 작을까염려하는 것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아뢰라’ ‘하나님의 평강이’ ‘너를 지키시리라하는 가르침은 믿음에 대하여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지나치게 집착하면 탐욕이 됩니다. 심지어 주님이 주신 비전도 그것이 우선시 되는 순간 우상이 된다고 합니다.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근심하지 마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는 말씀을 굳게 믿고 염려를 떨쳐 버리십시오. 이미 우리는 주님의 택함으로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에 제대로 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함으로써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겁니다. 그러니 기도와 간구로믿음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구하십시오. ’믿고 기도한 것은 다 주신다고 하는 약속을 굳게 믿으시고.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