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가끔은 머뭇거려야 인생 이란다
제4부 아들아 아름다운 삶을 위해 출발하자
(2) 아들아 너의 인생의 주인이 되거라!
나츠메소세키(이름이 무슨 욕같지?) 라고 하는 유명한 일본의 작가가 있단다. 혹시 들어 봤니? 일본근대문학의 아버지 뻘 인 사람인데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나는 고양이다’ ‘도련님’ ‘산시로’ 등으로 모리오가이, 아쿠타가와류노스케 등과 함께 일본문학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한 작가란다. 한국으로 치면 춘원 이광수나 육당 최남선 등과 같다고 할 수 있지.
그가 국비유학생으로 영국에 유학을 갔을 때 일이다. 갑자기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빠졌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고민하며 세월을 보냈지. 국비유학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과제가 주어진 것도 아니라 방황한 것인지 몰라.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바로 ‘자기 본위’ 라는 것이지. ‘나는 일본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내가 삶의 중심이 되면 된다. 내가 원하고 내게 이롭고 그런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도리어 일본을 위하고 가족을 위한 것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야. 그리고 나서 그의 삶은 달라졌어. 그의 대표작은 그 후에 나온 것들이란다.
‘자기 본위’란 이기주의나 자기중심주의와는 다르다. 살아가는 것의 기준을 자신으로 삼는다는 거지. 남의 생각이나 주위의 의견 기대에 따라 살던 삶을 자기 자신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살아가게 되었다는 거야. 물론 남의 의견을 참고는 하겠지만 어디까나 최종결정은 자기를 기준으로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단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판단이나 기대 등에 의해 살아가고 있지. 대표적인 예가 부모의 요구와 기대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심해.
예전에 삼종지도라는 말이 있었지. 여자는 어려서 부모의 뜻을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의 뜻을 심지어 늙으면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이야. 사실 이렇게 살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 여자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던 예전에는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
하지만 복잡하고 선택의 폭이 커진 현대사회에서조차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지. 아빠가 여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아직도 이런 성향을 엿볼 수가 있어. 왜 공부하느냐라는 의식이 약하고 그저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사랑받기 위해 공부하는 거야. 그래서 학년이 높아질수록 주체적 학습이 어려워져서 고민하게 되지. 심지어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해도 마마 걸로 살아가려고 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여자들만 이런 것은 아니야. 남자들 중에도 자신이 진정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그저 부모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은 마마보이로 살다가 결혼하면 와이프보이가 되지. 뭐든지 아내의 말 대로 하는 수동적 인간 말이야. 그래서 경제권도 중요한 결정권도 다 넘기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며 살아간단다. 그걸 가정적인 삶이라는 착각 하에.
하지만 이 세상에 나 자신을 완전히 대신해 줄 사람은 절대 없다고 본다. 완벽하게 내 입장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삶을 알려 줄 사람은 없다는 거지. 사람들은 다 자기 입장이 있고 이해관계가 있지. 아무리 부모라도 그것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거야.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잘못된 이야기를 하지. 또 사람의 판단력은 한계가 있기에 그래서도 그럴 수 있어. 부모에게는 부모세대의 경험이 있고 자식에게는 자식세대의 상황이 있는 데 그걸 그대로 적용하면 과연 올바를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부모만이 아니라 학교선생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모두가 자기 입장이 있고 판단 능력의 한계가 있지. 아빠는 친구에 대하여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친구란 나를 위해주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봤거든. 어리든 나이가 있든 간에. 그리고 우정을 내세워 속이지. 속인다고 해서 꼭 의도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경우도 꽤 있어.
예전에 내 후배 하나가 그런 짓을 했단다. 그 후배는 교양영어학점을 못 따서 4학년 때 재수강을 하게 되었다. 재수강이란 들었던 수업을 다시 듣는 거야. 그런데 그 수업에 자신이 과거에 알고 지냈던 남학생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챙피하니까 수업을 안 들어가게 되었지. 문제는 자신만 안 들어가면 좋은데 함께 듣는 친구에게도 들어가지 말자고 해서 같이 안 들어가서 둘은 결국 다시 낙제를 하고 말았어. 그런데 자신이 수업에 안 들어 간 것이 친구탓이라고 소문을 내서 그 친구가 곤욕을 치뤘단다. 말이 되니?
이렇듯 친구라는 존재가 나를 바르게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했다가 큰 코 다칠수 있단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이런 경향이 심하지. 어떤 여학생은 아빠 강의 시간에 대 놓고 이야기 하더라. 친구가 장학금 받으면 속상하다고. 친구라면 같이 기뻐해야 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야. 하지만 남자라고 해서 다 순수하게 친구를 위하는 것은 아님을 아빠는 여러 번 경험했단다.
학교선생님은 어떻고? 세상에는 선생님이 될 실력도 자격도 없는 선생님이 많이 있단다. 촌지를 주지 않는다고 아이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대입원서를 쓸 때 당연히 해 줘야 할 일인데도 돈을 받고 추천서를 써주는 사람도 있지. 선생님은 많으나 스승은 적다고 했지? 그러니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턱대고 의지해서는 안 된단다.
대학에 들어가면 너는 더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비교적 정해진 과정을 이수하면 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 무슨 강의를 들을 것인지 동아리 활동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성교제는 스팩 쌓기는 등등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방에서 올라 온 학생들은 집구하기부터 알바 등등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할지 몰라. 물론 부모님이나 지도교수님 친구 선배 등등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지만 결국 결정은 본인이 해야지.
우리나라 교육은 그런 선택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어렵단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대신 적응하고 순종하며 정답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세상은 교과서나 문제집처럼 단순하지 않건만 우리는 그것을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지.
아빠가 전에 읽은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하버드가 선정한 미국 최고 명문고의 1% 창의 인재 교육법’ 이 라는 책이 있어. 책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보자꾸나.
“미국 최고의 명문 학교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1781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하버드로부터 ‘최고의 명문고’로 인정받은 바 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코드》의 댄 브라운,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모두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졸업생이다. 그렇다면, 하버드가 선정한 ‘최고의 학교’인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의 힘은 무엇일까?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는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의 인재교육법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단순히지식만을갖춘인간에그치지않고자신이속한사회와조화롭게어울리는사람, 남을 배려하는 사람,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전념해 왔다. ‘세계 최고의 학교’의 이러한 인성교육은 한국교육의 현실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읽어 보면 얼마나 우리와는 다른지 알 수 있을 거야. 생각을 못하게 막고 오로지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만 힘을 들이는 우리교육이 저렇게 될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구나. 아빠 생각에는 100년 지나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녀들을 해외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데 물론 영어교육이 주목적이라 하지만 이런 점을 생각해서 그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거야.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입시가 교육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학교는 그것을 위한 준비기관이 되어 버렸단다. 그러니 너의 인생을 너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능력을 거의 없단다. ‘닥치고 입시’ 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입시가 끝나면 어떻게 하란 말은 없어.
그런 수동적인 인간을 양성하니 한국에는 주커버그도 빌게이츠도 스티브잡스도 나오기 어렵단다. 그저 공부해서 재벌기업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길만 생각하지. 주커버그나 빌게이츠 스티브잡스는 애초부터 그런 길을 걷지 않았어. 빌과 스티브 잡스는 학교교육에 수동적으로 적응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들을 중심으로 이용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요없다고 느꼈을 때 학교를 뛰쳐나온 거지. 하지만 누가 그들을 중퇴생이라고 비난하겠니?
아빠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법이 거의 없단다. 간혹 필요에 의해 전독을 하기도 하지만 매우 드물지. 책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게다가 처음 부분을 보면 대략 저자의 의도가 읽혀지지, 나머지는 그것을 보충설명하거나 증명하는 내용이란다. 그러니 앞부분을 읽고 중간에 흥미 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읽고 마지막 부분을 확인하는 선에서 독서를 끝내지. 그러기에 일 년에 수 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거란다. 아빠의 독해능력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못하거든. 그래서 익힌 방법이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지. 예전에는 정독을 많이 했어. 그러다가 책에 대하여 생각이 달라진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지. 아빠가 문학서적을 잘 안 읽게 된 것도 그 때문이야. 문학서적은 전부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얻어지는 정보가 너무 빈약하지. 그래서 그런 것들은 보다 젊었을 때 읽어 두어야 할 듯하네. 아빠가 읽은 문학책의 90%이상은 젊은 시절에 읽은 거란다.
지난 해 에 한 달간 마음먹고 소설을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어. 거의 100권 넘게 읽었지.소설이니 정독을 해야 했어. 목적은 소설을 쓰기 위한 거지. 소설을 쓰려니 소설문체와 구성을 익혀야 했지. 오래 동안 소설을 읽지 않아 막상 쓰려니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열심히 읽어 댔지. 하지만 내용이 비교적 쉽고 짧은 걸로만 읽었어. 어차피 내용을 음미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그리고 나서 아빠는 두 주 만에 소설을 썼단다. 목적은 달성된 거지.
학교교육이든 독서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갈 인생에 필요 때문에 존재하는 거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 목적인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 작가들 뿐 이지. 우리가 모두 그런 사람들이 되는 건 아니잖니? 우리는 그런 걸 잘 이용하면 되지.
아빠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늘 고민하는 것이 있단다. 학생들이 내 강의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 가를. 아빠는 전공강의를 해 본적이 거의 없어. 지식을 위한 교육을 거의 한 적이 없다는 거지. 대부분 교양이었단다. 개중에는 일본어강의처럼 지식이 요구되는 과목도 있었지. 하지만 그조차 아빠는 그저 지식을 주는 교육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
교양과목이란 특정한 지식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강의는 아니란다.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인식을 새롭게 하여 자신의 삶의 재료로 삼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정한 사실을 많이 가르치거나 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재료를 주려고 노력하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나누는 것에 힘을 기울인다. 이러한 것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라고 질문하지.
그래서 학기 초에 시험문제를 가르쳐 준단다. 그것을 한 학기 동안 고민하고 공부하라고 하지. 시험을 채점할 때도 많은 것을 쓴 답안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객관적 근거에 의해 펼치는 답안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아빠는 그런 훈련이 그들의 인생에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역할을 그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게 이끄는 것 뿐 이지.
세상을 사는데 정답은 없지만 판단의 근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골방에 틀어박혀 명상만 한다고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는 법은 없지. 하지만 이것저것 주어 듣고 읽고 배워서 많은 것을 안다고 해서 판단을 잘 하리라는 법도 없고.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아빠는 신문을 몇 가지 구독하고 매일 포털 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하며 오늘의 세계를 알아본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서적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자 애쓴다.
아들아 아빠가 이미 남을 위해 살지 말고 너를 위해 살라고 말했지?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것은 그 이야기를 확장시킨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너의 사고 너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에 남의 판단 남의 이해가 불필요하게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의 앞에 놓인 모든 것들 사람이든 학교든 교육이든 그것들에 의해 네가 지배되어서는 안 되고 네가 그것을 이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빌게이츠가 하버드를 얌전히 졸업했다면?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생을 마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는 좋은 성적을 올리려고 맹렬히 공부해서 우등생으로 졸업해 IBM같은 컴퓨터회사에 입사해 고액연봉을 받으며 평안한 삶을 살았겠지?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계적 기업MS도 없었을 것이고. 스티브잡스가 대학을 그냥 참으며 나왔으면? 글쎄 사회 부적응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불같은 성격을 미루어 보건대.
심지어 가족조차 너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족에게 지배된 채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했고 가족을 가진 것인데 어느 덧 그 가족의 노예(?)가 되어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그 가족은 결국 그를 지켜주지 못하지. 이미 말했지만 여자에게는 가족이 보호막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남자에게 가족은 그렇지 못함을 아빠는 수없이 보아 왔다. 그러니 가족보다 너를 중심으로 살기 바란다.
세상은 어느 때부터 가족을 우상처럼 숭배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들의 삶의 날개를 부러뜨리게 한다.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왜 나오겠니? 왜 사람들은 굴종적인 삶을 감수하겠니? 그들은 꿈 대신 돈을 쫓는 삶을 살까? 가족이라는 우상 때문이다. 가족의 행복이라는 정체불명의 우상 때문이다. 가족의 행복? 그럼 너의 삶은 뭐니? 너의 꿈은 뭐니? 그런 것은 그대로 다 버려야 할 쓰레기이니?
세상은 이런 질문을 위험시 한다. “잔말 말고 가족을 위해 살아라. 그게 가장의 임무이다” 가장이라고? 가장이면 적어도 권한은 주어져야지 그런 것도 없이 의무만 강요당하는 가장 의 직위 따위는 버려라.
아빠도 그렇게 이용당한 적이 있지. 예전에 아빠는 학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학원의 원장은 나를 부원장이라고 불러줬다. “부원장님 열심히 해서 학원이 잘 되면 그때는 좋은 대우를 해 드리겠으니 수고 좀 해 주세요” 라 고 하더구나. 그 말에 아빠는 속았지.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원장이 느즈막하게 나와 일찌감치 퇴근을 해도 아빠는 열심히 일했지. 하지만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아이들의 성적이 나왔거든. 생각보다 좋지 않았어. 그러자 원장은 모든 것을 아빠의 책임이라고 하는 거였어. 자신은 시험기간에도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편하게 지내놓고 말이다. 학원이 크면 말도 안 해. 30명 정도의 학생이 다니는 학원에서 자신이 원장이라고 게으름을 피울 처지는 아닌데도 그렇게 하고서 아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다니. 어이가 없어 그만 두었지.
하지만 두고두고 분을 참을 수 없었단다. 월급은 쥐꼬리만치 주고 부원장이라는 책임을 주어서 이용한 원장에 대한 분노 말이야. 게다가 마지막달 월급은 아예 받지도 못했지. 갑자기 그만 두어서 못 주겠다는 거지. 말이 되니? 생각 같아서는 고소를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곧바로 다른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걸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빠는 삼 남매중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자기 의견을 마음대로 펴보지 못하고 살아 왔단다. 그저 주어진 대로 이끌려 살아왔지. 그런 아빠에게 고모가 늘 불만을 토로했단다. 오빠가 너무 부모님 말을 잘 들어서 자신이 부모님과 싸워야 할 일이 많다고. 고모나 삼촌은 그렇게 살았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했단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속 에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을 고대했단다. 결국 그 꿈은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지만. 인생을 다시 산다면? 아빠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 것이다. 공부는 덜 하고 책도 덜 읽고(하지만 역시 책은 읽고 싶구나) 음악은 더 듣고 연애는 좀 더 하고(인생에 낭비가 안 될 만큼. 요즘 젊은이들은 솔직히 너무한 것 같다.)꿈은 더 많이 꾸고 생각도 더 많이 하고. 경험도 더 하고 싶구나.
“신에겐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지. “아빠에게는 아직 50년의 인생이 남아 있단다” 라 고 외치고 싶구나. 인생 100년 시대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래 살게 돼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너무나 앞서가고 있는 듯하다. 뭐든지 다 준비하고 사는 인생이 뭐가 재미있니? 조금은 불안 속에서 긴장하고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 그래서 남은 50년이 기대된단다. 과연 그곳에 무엇을 그리게 될까?
아들아 네겐 80년 이상의 인생이 남아 있다. 아니 그 이상일지 모른다. 우리가 100세 인생이라면 아마 너희들은 120세 인생이 아닐까? 그럼 100년이 남아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20대에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20대에 결정된 인생은 40대면 끝난다. 잘해야 50대까지 간다. 그리고 또 70년의 인생이 남아 있다. 두 번은 더 살 수 있다. 그러니 길게 보고 살거라.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널 재촉해도 상관 말고.
아빠는 그런 너를 응원한다.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너를 존중한다. 네가 조언을 필요로 하면 아빠는 최선을 다해 응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시는 마라. 아빠도 아빠의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최종결정은 니가 하는 거다. 하지만 니가 머뭇거려도 방황해도 나는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다. 내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평가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나의 자식은 나의 자식이기에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지 출세하고 똑똑하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아들아 ! 누구의 지배도 간섭도 받지 말고 너의 인생을 만들어 가라. 필요한 조언은 듣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요해라. 하지만 그런 것에 의존하거나 휘둘리지 말라. 그 누구도 너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아빠가 주는 이 이야기도 그냥 참고이니 맹종하지는 마라. 좋은 재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 너만의 답을 찾아 쉼 없이 노력하기만 해다오. 아들아 인생의 주인이 되어 당당히 살아가는 너를 보고 싶구나.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기왕이면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