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졸업장 자판기? 무책임하고 무질서한 대학교육의 현실
교양 일본어 수업에 나타난 일문과 4학년 학생들! 이들은 왜 그곳에 있어야 했는가? 일문과 4학년생이면 가장 기초부터 시작하는 교양 일본어 수업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영문과 4학년 학생이 교양영어수업에 들어오는 것과도 차원이 다른 것이다. 교양영어가 쉽다고 해도 대학영어인 이상 일정 수준의 내용을 다루게 되어 있다. 이미 6년 이상 영어를 공부하고 수능영어공부도 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아닌가? 하지만 교양 일본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지 않은 학생들이 대상이라는 전제 때문에 알파벳부터 (히라가나 가타가나)시작하는 수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일본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배운 일문과 4학년 학생들이 이런 쌩(?)기초 수업에 들어온단 말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나 노력을 하지 않고 학점을 따고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이다. 3년이상 일본어를 배운 학생들에게 그것은 글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나 ‘누워서 떡먹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시험을 치루면 5분도 되지 않고 정답을 제출하고 나간다. 다른 학생들이 끙끙매며 문제를 풀고 있는 시간임에도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과제를 마친다. 그렇게 해도 그들의 성적표에는 학점과 함께 A+의 성적이 기록될 것이다. 처음엔 그들이 왜 들어오는지 몰라 당황했고 심지어 별의별 상상을 다 했는데(‘혹시 내가 인기 강사가 되었나’라는 생각까지) 그 이유를 다른 학생들에게 듣고 분노 이전에 허탈감이 느껴졌다.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아무 의미 없는 수업을 그저 학점과 성적을 위해 신청을 하다니 이게 교육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학생에게 들은 기가 막힌 사례를 소개하겠다. 전문대에서 편입한 학생이 교양강의만 듣고 졸업했는데 대부분이 1, 2학년이 수강생인 강의이니 그는 모두 A+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편입이란 보다 높은 수준의 학업을 쌓기 위해 보통 2,3년제 학교 졸업생들이나 다른 4년제 2년 수료 학생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교양과목만 듣고 졸업을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편입생이 교양과목만으로 졸업이 되도록 한 학교는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허용한 것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졸업장을 주어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이 내는 등록금인가?
대학의 이러한 비리(?)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학생들의 수강신청매매는 무질서의 절정이라 하겠다. 학생들이 몰리는 과목을 미리 신청해 놓고 다른 학생에게 그것을 팔아먹는 수강신청매매는 대학이 더 이상 지성의 전당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문제는 사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수강신청매매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수강을 원하는 학생에 비해 수강가능 인원이 적기 때문이니까 강좌를 늘리거나 수강생수를 늘리고 대신 수강신청이 적은 과목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면 된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부담스러워하며 기피하고 있다.
게다가 수강생에 대한 안내나 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혼란도 적지 않다. 기초지식이 필요한 과목을 아무런 기초지식이 없는 학생이 수강신청을 하거나 또는 순서대로 들어야 합리적인 과목을 바꿔 듣도록 방치하는 일도 있다. 심지어 필수과목이 전혀 없이 마음대로 듣게 하여 성적을 잘 주는 과목 같이 특정 과목에 학생이 쏠리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학교가 학원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학사운영을 해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학생들이란 쉽게 공부해서 학점과 성적을 얻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학교는 학원처럼 영리사업체가 아니라 분명히 교육이라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익기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적에 대하여도 파행적인 모습은 나타나고 있다. 오죽하면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내가 기업의 인사담당자라면 대학의 성적은 참고용으로만 쓰겠다’고. 전국의 기업관계자 여러분! 대학성적은 부풀리기가 너무 심하니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이다. 학생들에게 성적을 잘 주라는 압박을 가하는 일조차 드물지 않다. 심지어 한 학기 동안 얼굴 한 번 안 보이던 학생이 기말고사도 끝난 시점에서 전화를 걸어 학점을 달라고 애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대학을 졸업장 수령을 위한 기관으로 여기는 학생들도 있다. 2학년 1학기를 끝내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학생이 레포트 만으로 나머지 2년 반을 마치려는 학생도 있었다. 공무원이라면 보류를 하고 졸업 후에 임용되면 좋을 것이니 대학생활을 제대로 해 볼 수 있을 터인데 왜 그런 기회를 포기하는 것일까? 대학 졸업 학기에 미리 취업이 된 경우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지만 2년 반이면 절반이 넘는다. 이 정도면 대학 졸업장을 받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필자는 수업출석을 요구했고 학생은 이를 따랐지만 그래도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오늘날 우리의 대학은 무책임의 극치를 이루는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극단적으로 말해 졸업장자판기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과정의 중요성은 완전히 무시되고 수업료만 내면 어려움 없이 학점과 성적을 얻고 학위를 취득하여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상태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게 생산과정이 허술하다면 그곳에 만들어진 생산품의 질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학은 지금이라도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철저한 규제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학의 교육의 질은 곧 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지금처럼 불량품을 양산하는 대학교육이라면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할지 모른다. 저출산은 앞으로 쉽게 나아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경쟁력 없는 대학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학생을 받을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며 또한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주영은 어떻게 쌀가게를 인수하게 되었나? (0) | 2021.02.28 |
---|---|
벌거벗은 민주주의에 옷을 입히자.(양의모) (0) | 2021.02.26 |
일본경제의 빛과 그림자 (4) 전후 개혁과 일본의 고도성장 (0) | 2021.02.26 |
부동산 어떻게 해야 하나?(4) 부동산은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될 수 없다. (0) | 2021.02.26 |
예수의 경제학(5) 예수 자선을 말하다. (부자 관원과 삭개오 이야기) (0) | 2021.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