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빛과 그림자 (4) 전후 개혁과 일본의 고도성장
(해설)우리는 일본경제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그들이 보여준 경제사에서의 놀라운 업적은 결코 무시해서도 잊어도 안 될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경제도 영원한 번영은 불가하다. 현재의 실패나 침체 때문에 번영의 시대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경제의 번영과 침체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기로 하자.
1945년 8월 15일 우리에게는 해방의 날이었던 이 날이 일본에게는 패전의 날이기도 하였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사례라 하겠다. 물론 일본의 불행은 운이 아니라 자신들이 자초한 것이니까 그 자체로는 동정을 받을 여지가 없다. 19세기 후반에 서양 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평화롭게 번영하는 길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일본이 서양열강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무모하게 벌인 전쟁의 결과로 파멸을 맞이한 것이 우리에겐 결과적으로 ‘해방’이라는 선물을 받도록 한 것이다. 그 무모함이 없었다면 우리의 해방은 언제 이루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동아시아의 민족들을 포함해 많은 나라의 민중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우리의 해방을 이유로 전쟁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전성기가 전세계에게 미친 긍정적 영향은 부인하기 어렵다. 산업혁명의 결과인 물질문명의 발전이 전세계에 확대되었고 서양의 민주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정신적 혁명의 소산이 인류에 기여한 바라를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제국주의의 죄악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서 저지른 만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방’은 그런 의미에서 ‘선물’이 아니라 죄인이 치러야 할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대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패전을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것은 일본 자신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민중을 옥죄이던 메이지유신체제와 그로 인해 생긴 파시즘체제를 종식시켜 민중을 해방시킨 것은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바로 패전에 따른 점령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이 자체적으로 이룬 진보가 적지 않았음은 부인하기 어려우나 궁극적으로 그것을 완성시킨 것은 바로 패전과 점령에 따른 철저한 개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봉건제를 타파하고 근대국가 일본을 이룬 그들이지만 근대에서 현대로의 발전은 외부세력의 힘을 빌려 완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상 일본을 단독으로 점령한 미국은 일본의 체제는 물론 사회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전후 일본’를 탄생시켰다. 천황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한 헌법을 국민을 주권의 근원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으로 바꾼 것은 이러한 개혁의 상징이라 하겠다. 군대를 해산하고 국민을 옥죄는 각종 권력기관을 해체하고 전쟁에 적극적인 협조를 한 권력자들을 공직에서 추방한 것은 헌법을 바탕으로 철저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평화헌법 9조는 이러한 조치에 의해 비로서 힘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개혁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개혁이 이루어졌으니 그것은 전후 일본이 보인 놀라운 경제적 기적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전쟁을 통해 굴복시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경제대국화를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에 의해 단행된 경제개혁은 재벌해체와 경제적 집중 배제, 노동조합의 합법화, 농지개혁이 그 핵심이었다. 이러한 개혁은 메이지 이래 꾸준하게 성장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던 일본이 세계 정상급 경제적 슈퍼 파워가 되도록 한 도약의 원인이 되었다. 일본인들조차 일본이 원래 빈곤한 나라였는데 전후 고도성장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는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패전 후의 어려움으로 인해 생긴 오해일 뿐이다. 미국의 경제대국은 패전 이전의 일본경제가 안고 있던 한계를 제거하여 줌으로써 새로운 경제적 도약을 가능하게 하여 주었다.
경제개혁의 효과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유로운 경쟁의 촉구와 구매력의 확대가 핵심이라 하겠다. 재벌해체와 경제적 집중 배제는 소수의 독점기업과 재벌에 의해 지배되던 일본의 시장을 해방시켜 격렬한 경쟁을 유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재벌해체는 재벌의 연결고리를 끊었을 뿐 아니라 재벌 가족의 철저한 배제를 통해 그 부활의 길마저 봉쇄하였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의 개혁이었다. 독점기업의 분해를 통해 보다 작은 기업이 난립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점령군의 핵심 세력이 뉴딜정책을 일본에서 보다 강력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과격한 진보주의자들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미국의 독점자본에 대한 반감을 일본에서의 개혁으로 현실화시키는 것으로 만족시켰다. 오죽하면 미국 내 여론이 “일본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셈인가”라는 비판을 하였을까?
구매력의 향상이라는 점에서도 이 개혁은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재벌의 오너와 그들의 충복들이 떠난 기업은 직원 출신의 경영진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노조의 협조를 조건으로 일본적 고용관행이라는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를 승인하였다. 이로서 노와 사가 일체가 된 것이다. 회사의 성장은 곧 사원들의 삶의 향상을 가져오는 것이 되었고 주주를 비롯한 외부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고도성장의 과실은 기업의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으니 세계가 주목하던 평등화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농지개혁은 농업분야에서 지주의 독점이익을 소멸시켜 경작자인 소작인들의 구매력을 급상승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재벌해체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져왔다. 일부 자본가와 지주에게 집중되던 이익이 일본 사회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어 생긴 구매력의 전체적 향상은 고도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교훈을 준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도 바로 경제력의 집중과 구매력의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재벌을 필두로 한 소수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는 경쟁에 의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유리한 조건은 아닐 것이다. 또 부와 소득의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 전체의 구매력의 저하를 가져왔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의 패전 이전의 경제가 안고 있던 문제를 우리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나온 셈이다. 경쟁의 강화와 사회 전체의 구매력의 향상이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도약의 전제 조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 대기업이 갖고 있는 우월적 지위가 경쟁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과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구매력의 저하를 가져오지 않도록 부와 소득의 평등화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에 대하여 실행한 과감하고도 철저한 개혁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뼈를 도려내는 개혁 없이 우리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는 점을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거는가가 아닐까 싶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거벗은 민주주의에 옷을 입히자.(양의모) (0) | 2021.02.26 |
---|---|
대학은 졸업장 자판기? 무책임하고 무질서한 대학교육의 현실 (0) | 2021.02.26 |
부동산 어떻게 해야 하나?(4) 부동산은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될 수 없다. (0) | 2021.02.26 |
예수의 경제학(5) 예수 자선을 말하다. (부자 관원과 삭개오 이야기) (0) | 2021.02.26 |
배구협회와 연맹의 학폭 조치는 꼬리 자르기를 통한 몸통보호이다. (0) | 2021.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