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대신 세대화합으로 행복한 미래 사회 만들자.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은 언제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떠도는 편견과 선입견은 우리 사회에 분열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편견과 선입견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의 출현? 과연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라면 왜 이런 편견과 선입견이 태어났을까 확인해 보자.
우선 자산 격차부터 생각해 보자.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2,30여 년간 하여 나름대로 자산을 보유한 기성세대와 취업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젊은 세대 사이에 자산 격차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게다가 지금의 기성세대가 모두 비슷하게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에서 정년까지 일하며 퇴직금까지 제대로 챙겨나온 사람과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 같을 수 있겠는가? 필자 세대의(586) 대학진학률은 30% 내외이고 현재는 70%(한때 80%까지 오름)이며 이것도 대학진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거나 다른 선택을 한 결과임을 생각하기 바란다.
대학진학률 30%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뜻 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여학생의 대학진학률 20% 남학생은 40%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같은 586이라도 80년대 전반과 후반은 다르지만 평균치로 계산하기로 하자. (후반이 되면 여학생의 진학률이 어느 정도 높을 것)1970년대만 해도(675세대)여성의 대학진학은 있는 집의 사치에 가까웠다. 80년대에 들어서 사정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입학한 81년만 해도 여대생은 특권계급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실제로 필자의 클래스 메이트 여학생들은 모두 중상류층 이상의 집안 출신들이었다.
남학생들의 경우는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진학을 이룬 학생들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찬가지로 중상류층 이상의 출신이다. 필자도 그렇지만 우리는 알바와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알바를 한다는 이유로 필자는 꾸지람을 들었다. “내가 도대체 뭘 못 해 줘서 니가 알바를 하니? 용돈을 얼마 줘야 안 하겠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뿐이 아니라 우리 집에는 가사도우미가 상주하고 있어 필자의 어머니는 가사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인건비가 저렴한 시대이니까 가능했을지 모르나 필자의 친구들 중에도 비슷한 가정이 제법 있었다. 물론 시골에서 아들 하나 잘 키우자고 무리하게 대학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세대격차론을 반박할 또 다른 사실을 제시하겠다. 당시 여대생이 취업하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취업을 하는 것이 대세이고 특히 여학생의 경우 그것이 정해진 코스라고 할 정도인 시절 대졸 여성을 찾는 직장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필자의 졸업동기 중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한 여학생은 (48/64로 완전한 여초학과였다)손으로 꼽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나마 연금관리 공단처럼 차별이 적은 곳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남자동기들은 적은 수에 불과하고 대학원진학 사업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기업이나 대기업에 준하는 직장을 얻었다. 성차별과 연령차별을 대놓고 해도 좋은 시절이기에 나타난 결과이다. 여대생은 채용대상도 되기 어렵지만 그나마 연령 제한이 심해 재수라도 하면 위험했으니까.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586세대가 혜택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극소수의 대졸 남성에 한정된다. 60%의 고졸 남성과 80%의 고졸 여성 그리고 20%의 대졸 여성은 그런 혜택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대다수가 그렇게 되었다. 반대로 그런 혜택을 누린 것은 대부분이 남성인 20% 남짓에 불과하다. 물론 20%가 전부 대기업에 들어간 것은 절대 아니다. 지방대 차별은 그 당시에도 있었고 대학서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성장률이 높아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위권 대학의 경우 대기업 취업이 용이한 것 뿐이지만 그 비율이 오늘에 비해 2,3배 높았을까 의문이다.
이러한 전제로 좀 더 다양한 비교를 통해 586세대와 현세대의 실태에 접근해 보자. 잡코리아가 771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4년제 대졸초임 연봉은 대기업이 4,130만원 공기업이 3,810만원 중소기업이 2,800만원이다. 586의 경우는 어떨까? 1987년 한양대 공대 졸업생 후 삼성전자에 입사한 학생의 경우 42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연봉으로 치면 얼마일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당시엔 연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보너스를 포함하면 어림잡아 6,7백 수준일 것이다. (필자의 동기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필자는 해외 유학을 해서 취업경험이 없다)그렇다면 현재 대기업 초임 연봉의 1/6에서 1/7 수준이다.
이것은 높은 수준일까? 물가를 통해 확인해 보자. 필자가 유학을 떠나기 직전인 88년에 서울전철 기본요금은 250원 정도이다. 지금은 1,250원이니 5배이다. 짜장면값은 정확한 것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1,000원 정도였던것 같고 식당에서 먹는 라면값은 500원 정도였다.(대학생들의 단골 메뉴이다. 지금 학생들은 점심을 라면으로 떼울까?) 그렇다면 대략 5,6배 정도. 서울에서 대구까지 무궁화 기차 요금. 1988년 당시 필자가 6,7천원 정도로 갔는데 현재는 2만원 정도. 3배 조금 넘는 수준. 이 정도면 물가에 비해 급여가 좀 더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관심이 클(?)아파트는 어떨까? 서울 아파트 값 1992년 당시 평당 200만정도라니까(가장 저렴한 주공아파트)32평이 6,600만원 정도니 10배 수준. 현재 서울 평균 10억. 하지만 지역격차가 극심해 도봉구는 5.6억 강남구는 18.2억이라고 한다. 아파트의 경우 당시 군부독재정부가 강력한 규제를 한 것은 감안하면 사실상 10배 수준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는 상당히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되지만 하지만 이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학력별 성별 임금 격차 등을 감안하면 이 차이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20%의 남성 대졸 중에 대기업입사에 성공한 비율을 10%로 잡으면 90%는 대부분 고졸이하. 1990년대 대학의 급증으로 대학진학률이 높아지기 이전 학력별 격차는 대략 40%(고졸과 대졸)정도로 잡으면 대기업의 경우 360-400만이다. 현재의 대졸고졸의 차이는 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현재는 대졸이 70%이고 성차별이 적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쟁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80%에 가까운 취업자가 고졸이하 (중졸이하도 제법 되었다)의 급여를 받던 80년대와 30%만이 고졸 이하의 급여를 받는 현재는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대학생들의 집안은 대부분 중상류층이었다. 필자의 경우도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최소 20평 정도의 아파트를 부모에게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소 전세는 문제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친척들 중에 그런 혜택을 누린 사람은 없었다. 대졸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필자는 외가 친가 통틀어 장손이었고 그래서 양가에서 대학입학 1호였다)비교하자면 필자 또래이지만 서열은 위인 친척 들 중에 아파트로 출발한 신혼부부는 1쌍도 없었다. 화장실도 공동이고 화장실을 겸한 욕실도 없는 허름한 일반주택(지금의 다세대와 비교해도 훨씬 열악한)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도 586세대가 혜택을 받았다는 소리는 왜 나올까? 극소수의 남성 586세대가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한 것을 일반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확실히 혜택을 받았으나 따지고 보면 이전세대만큼은 아니다. 필자의 경우를 보자. 예전에는 석사를 가지고 대학교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필자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외국명문대를 졸업해도 교수가 되기 어려워졌다. 이명박은 30 후반에 사장에 올랐으나 우리는 30대 후반에 부장을 달면 성공이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대졸이 적으니 그들이 누린 혜택은 커질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로 건국 초기 30대 초반의 군인이 참모총장을 하고 사단장을 하지 않았나? 심지어 학사출신이 교수가 되지 않았나? 고졸이 학교 교사를 했지 않았나? 그런데 왜 586세 대만 혜택을 받았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는 것일까? 왜 지금의 젊은 세대를 불행한 세대로 보는가?
자잘한 이야기를 더 보태보자. 우리는 해외여행이 달나라 여행같이 어려웠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해외연수다 교환 유학생이다 해외여행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 우리는 자동차를 먼저 사지 않고 집을 샀지만 지금은 직장인은 물론 대학생까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컴퓨터를 혼자 소유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 아닌가? 우리는 형편이 좋은 집안출신이지만 라면이나 우동 맛 없고 메뉴도 한정된 학교 구내 식당의 식사 등 저렴한 음식 또는 도시락으로 (필자는 늘 도시락이었다) 식사를 해결하였지만 요즘 학생들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집 사기가 어렵다고? 서울 도봉구의 아파트 32평은 5억 6천만원이라고 한다. 중소기업 초임연봉 20년치 정도의 수준이다. 80%가 고졸 이하의 임금을 받던 80년대에 가정 저렴한 주공아파트가 고졸 노동자의 대략 20년 어치 수준이다. 뭐가 달라졌는지 묻고 싶다. 요즘처럼 아파트 못지 않게 좋은 다세대주택이 즐비한 시대에 굳이 아파트를 고집하는 이유도 집사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이유 아닐까?
우리 시대에 그런 집에서 살 수 있었다면 아파트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화장실과 욕실 신 안 신어도 되는 부엌은 우리 시대에는 로망이었지만 지금 시대는 당연한 일상이 아닌가? 그런데도 모두가 아파트를 찾으니 그 이유는 재테크나 허영심 외에 무슨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스타벅스에서 비싼 커피 마시고 밥도 비싼 거 사 먹고(듣기로는 비싼 식사를 젊은이들이 더 찾는다고 하는데)자동차 굴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면서 그런 것 없이 절약해서 살며 집을 마련한 우리세대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게다가 극소수의 출세한 대졸남성에만 포커스를 맞춰 비교를 하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한 가지 더 추가하자. 우리는 군 생활 30개월 지금은 20개월? 그나마 소수의 대졸이 교련수업을 받고 가면 27개월(해군 공군은 35개월에 31개월)! 박탈감을 느낀다. 군대 1개월이 사회 10개월에 맞먹는 것이니 우리는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가? 신혼여행 해외로 가는 것은 생각도 못 해 겨우 제주도에서 며칠 지낸 것 어떻게 보상받을까? 우린 청년 주택이니 청년수당이니 그런 거 받은 기억도 없는데 이를 어쩌나? 학자금대출 제도 자체가 없어 공부 피나게 해서 성적장학금 받지 못하면 가난한 집 자식들은 대학 포기해야 했는데 그대들은 학자금 대출 덕에 그나마 대학도 맘 편히(?) 다닐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학자금 대출받는 학생도 명문대로 갈수록 극소수에 불과한 걸 보면 대학 학비 걱정은 우리 때 보다 적은 것 같다. 하긴 우리도 적었다. 돈 없거나 장학금 받을 능력이 안 되면 아예 포기해야 했으니까.
지금 젊은 세대가 누리는 혜택 누가 준 것일까? 그대들이 쟁취했나? 민주화 운동 해 본 적 있나? 돌 던지다 최루탄 맞아본 적 있나? 정보부나 보안사 경찰서에서 물고문 전기고문 당해 보았나? 그 덕분에 더 좋은 오늘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았나? 자신들이 쌓은 스팩 누구 덕에 가능했을까? 그대들이 알바 해서 쌓았나? 아니면 부모들의 희생으로 쌓았나?
우리 좀 더 냉정해지는 것이 어떨까? 필자는 젊은 세대에게 고생을 강요할 생각은 1도 없다. 왜 남에게 굳이 고생을 하라고 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의 근거 없는 기성세대 공격을 그대로 수용할 생각도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 하지만 ‘아프니까 인생’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재벌집이나 큰 부잣집 외동아들이나 딸로 태어나서 뭐든지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 한 그렇다. 다만 세대마다 고통이나 고민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요즘 애들은 호강한다..”이러면 좋겠는가?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경제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 청춘을 구가하는 모습에 때론 우리도 질투가 느껴진다. 그걸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근거 없고 소모적인 세대전쟁 대신 계급전쟁으로 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다. 물론 계급전쟁도 궁극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 모두가 화합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종목표여야 하지 않는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을 제대로 알아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성세대에게도 그렇지만 그대들도 우리를 제대로 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중동의 모래바람에서 가족과 떨어져 고생하시던 아버지들 그런 아버지들을 뒷바라지하며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들에게 조금은 존경심을 갖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이것은 팩트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변화(1) 경제는 사상이다1 (0) | 2021.01.09 |
---|---|
대한민국 왜 싸우고 있을까? (2)내부 지향적 자세 (0) | 2021.01.09 |
그만두라는 가족과 거부하는 아버지! 우리에게 이런 날이 올까? (0) | 2021.01.09 |
부동산 어떻게 해야 하나?(2)토지공개념의 강력한 실현이 필요하다. (0) | 2021.01.09 |
예수의 경제학(3) 예수 채무면제를 말하다. (용서에 대한 비유) (0) | 2021.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