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4)
인생 드라마 인생 노래가 있다면 인생소설도 있겠지요. 제 인생 소설 1위는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입니다. 우리에게는 장발장으로 더 친숙한 소설이죠.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7년의 감옥생활을 한 가련한 인간 그가 훌륭한 천주교 주교를 만나 회심하고 시장으로서 새출발을 한 이야기 고아 소녀를 키워 훌륭한 청년과 결혼시킨 이야기 그의 필생의 라이벌 자벨경감과의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이야기 그런 자벨에게 자비를 베풀자 자벨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살한 이야기 당시 프랑스 사회를 흔들던 혁명의 열기 등등 스케일이나 재미 감동 등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저는 무인도에 책을 한 권만 가져가야 한다면 성경을 택할 것이고 두 권이라면 +레미제라블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은 레미제라블이 아닙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아닙니다. 한국소설 심훈의 ‘상록수’도 김홍신의 ‘인간시장’도 아닙니다. (인간시장은 빼야 하나?)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으니 인생 소설이라 할 수 있으나 제대로 된 판본을 읽은 것은 3,4번 밖에 안 되니 (나머지는 축약본) 빼야겠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소설을 여러 번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는 것인데 저는 이 소설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습니다. (최소 5번 이상, 참고로 성경은 최소 15번에서 20번)
이 소설도 철두철미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연령이 25년 이상 나는. 물론 여성이 어립니다. 반대라도 상관없지만 보통 나이차이 많이 나는 커플이라면 여성이 젊게 설정되기 마련이지요. 실제로도 그렇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로 중고년 여성과 젊은 남성이 사랑을 나누는 일은 매우 드문일이죠. 그래서 저는 중고년 여성이 젊은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결합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 아닐까요?
루이제 린저의 소설은 일관되게 여성에 의한 남성의 정신적 구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적 명작 ‘완전한 기쁨’도 비슷한 분위기를 가집니다. 이 작품도 제법 감동을 주었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생의 한 가운데에서’만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니나라는 생동감 넘치는 여성 캐릭터와 슈타인이라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매력입니다. 특히 니나의 인기는 높아서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작품이 나왔을 때의 시대(1950년)에 그녀의 모습은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기본적 내용은 자유로운 영혼의 니나와 극도로 신중하고 보수적인 슈타인이라는 대조적 인물의 사랑입니다. 슈타인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의사이자 교수이며 재산도 제법 있는 유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앞 길은 순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의사 교수 둘다 그런 직업인데 그것을 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으니 더욱 그의 삶은 여유롭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신중하고 보수적이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랑에 대하여 지극히 소극적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너는’수준이라 할 겁니다. 사랑은 하지만 서두를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랑은 그저 취미수준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마음으로 니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것을 걸고서. 다만 행동을 주저할 뿐입니다.
이에 비해 니나는 슈타인의 사랑을 알지만 그에게 맞춰 살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찌보면 밀당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슈타인의 사랑에 머물 생각도 없습니다. 슈타인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을 때 “저랑 결혼하실래요?”라고 했지만 진지함에서라기보다는 “보답으로 결혼해 드릴까요?”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슈타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척 하지만 그녀는 슈타인의 소극적 태도에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에 나를 놓지 말아요” (이선희 ‘인연’에서)라고 말하는 여성의 심리라고 할까요?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자유를 만끽하지만 내심은 그가 자신을 잡아주기 바라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슈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니나는 이렇게 비난합니다. “선생님은 한 번도 생을 살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생의 한 가운데에 계신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라고. 인생의 불안을 끊임없이 겪으면서도 편하고 안정된 삶을 거부하는 자신과 달리 가진 것에 안주하는 그래서 진정한 삶의 고통과 번뇌를 모른 채 사는 슈타인의 소극적 자세를 지적한 것이죠.
슈타인은 그런 니나의 치열한 삶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따라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20년간 꾸준히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의 지루할 정도의 안정된 삶에 있어서 유일한 삶의 이유고 의미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 자신에게 주는 끊임없는 도전 때문이죠. “난 인생을 살지 못했어”라며 자책까지 하면서. 그런 이중적 태도는 니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나를 원하는 겁니까? 아닙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머뭇거릴 겁니다.”
그런 점에서는 니나가 아무리 자유롭고 파격적이어도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끝내 돌파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혹시 제가 오독을 한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 니나가 실은 그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있고 그에게서 벗어나 떠나가면서도 여전히 그가 자신을 잡아주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것은 시대적 한계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의 리드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니나가 영국으로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실은 자신의 언니에게 그렇게 말하게 시킨 것)슈타인이 내뱉은 깊고 긴 한숨은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둘은 서로를 원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니나는 그의 곁을 떠났고 슈타인은 암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도리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20년간의 사랑은 변함없이 두 사람을 묶어 주었고 그래서 그들의 삶은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결혼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하니 결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결혼에 사랑이 필수품인 것도 아닙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사랑과 결혼이 지금처럼 결합이 된 시대는 없었지 않습니까? 이른바 ‘연애결혼’의 신화가 탄생한 것도 근대나 현대에 와서가 아닐까요? 하지만 사랑은 인류역사와 함께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과 결혼을 분리시켜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슈타인과 니나의 사랑은 성공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보다 훨씬.
이 소설은 니나가 그의 언니와 만나 함께 슈타인과 주고 받은 편지나 슈타인의 일기 등을 읽어가면서 전개됩니다. 슈타인이 그녀에게 일기와 편지 등을 마지막으로 보내주었고 니나는 그것을 언니에게 읽게 합니다. 언니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로 사는. 그 언니는 니나의 삶에 열등감과 동경심을 품어왔고 낭독을 통해 그것을 확대시킵니다. 끊임없는 설레임과 감동으로 살아온 니나의 삶에 대한 언니의 마음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느낌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니나와 슈타인의 변함없는 20년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릭 프롬은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Having’이 아니라 ‘Doing’이라는 것이죠. ‘존재냐 소유냐’라는 그의 저서에서 나온 이 말은 무엇이든 소유하려고 하는 현대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유하는 순간 하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는 순간 사랑도 멈춰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유했으니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사랑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소유를 포기한(본의는 아니지만) 니나와 슈타인의 사랑은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Loving(사랑하는)’의 관계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소유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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