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움을 제한하지 마세요. - 주님의 나의 5분 대기조
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121편 1-3절)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부부가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3,4살 연상이고 아내가 저의 직장동료였던 고로 먼저 친하게 지내다가 그녀가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도 친해진 조금은 특이한 케이스였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난 것도 교회)여러모로 서로 통하기가 쉬웠고 그래서 급속히 친해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고부터 우리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중의 하나로 신앙적인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어느 순간부터 퇴보하기 시작했고 특히 남편 쪽의 경우는 거의 불신자 수준으로 떨어져 갔으며 부창부수인지 아내 쪽도 비슷하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들과 더 이상 신앙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로부터 우리는 거리를 두기 시작해 결국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어 인연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불신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지옥을 만들었느냐 같은 기초적인 문제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할 수 있겠느냐 이 우주가 얼마나 큰데 한갓 우리 같은 사람에게 등등 여러 가지 수준의 의문이 그들에게 강하게 다가온 모양입니다. 누구나 신앙생활하면서 가져볼 수 있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저와 교제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설명은 그들을 조금도 만족시킬 수 없었고 저 자신은 갑작스럽게 변한 그들의 모습에 그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하세요”라는 저의 답은 도리어 그들의 의문과 불신에 불을 지핀 것 같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믿어 왔던 것에 대하여 갑작스럽게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성으로 신앙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저는 믿고 있으나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좋고 성경과 교리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라서 이해해 가는 것이 필 요한데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죠. 전형적인 신앙상실의 과정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우리의 생각으로 제한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마치 개미나 나비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 분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성으로 보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에 계신다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분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들을 이해하가 어렵다는 것은 아실테죠? 그 아이가 어른들을 판단한다면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우주에는 무수한 별들이 있고 그중에는 생명이 살고 있는 별도 제법 있을 것이다.(이것은 과학자들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들 그 많은 별의 그 많은 생명체들의 삶을 어떻게 주관하시겠는가?’라고. 언 듯 보기에는 매우 그럴 듯하게 여길 수 있는 의문입니다. 지구에만 해도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전 우주에는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도대체 얼마나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다 주관하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근거가 될까요? 아이가 어른들을 이해 못하면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을 금방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면 얼마나 경솔한 판단일지 알 수 있겠지요?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이 하나님뿐입니까? 저는 컴퓨터의 원리도 잘 모르고 휴대전화의 특징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엄연히 존재하며 저는 그것들을 아주 편리하게 쓰고 있습니다. 인간이 왜 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저는 엄연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르니까 없다? 이런 주장 자체가 대단히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사람과 사람 관계조차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부부 사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보다는 믿음이 먼저이고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교제를 깊게 하게 되며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니 우리 이혼하자 하는 부부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도 그런 어리서은 생각을 합니다. “이해가 안 되니 없는 것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병마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일이 이성으로 이해가 됩니까? 적어도 우리가 아는 이성으로는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최소한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떠한 합리적 이유(이거야말로 진정한 합리주의)도 없이 무조건 부정한다면 그들이 내세우는 이성의 잣대에도 맞지 않는 불합리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일일이 챙겨?” 이런 의문을 느끼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생각하기만 해도 이것을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는 우리가 사용하는 개인 컴퓨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정보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으로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슈퍼컴퓨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신 분인데 그것을 우리의 제한된 이해능력으로 완전히 이해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하나님에게 잊혀진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불신자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신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잊혀질까 두려워합니다. 때로는 그로 인해 기도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바쁘셔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거야’라고 단정지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격은 달라도 이 또한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군대에는 ‘5분 대기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나. 저는 이 이름을 보며 ‘5분 동안 대기하다 물러나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5분 내로 출동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실제로 제 친구 하나가 그곳에 속해 있었는데 부대 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빠르게 출동한 것이 자신들이라고 자랑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24시간 대기하고 계시 5분 대기조와 같은 분이십니다. 실제의 ‘5분 대기조’와 다르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5분이 아니라 5초 아니 0.00000000001초 안에라도 대응이 가능하신 분이라는 것이죠. 그 분이 늦게 대응을 하신다면 그분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아마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좀 다르죠?
게다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우리의 도움’이라는 집단적인 개입에만 머물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도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각각의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이행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이 마치 각국을 대표햐는 대사처럼 하나님의 대사로서 그 뜻을 대행하시니 한치의 어긋나지 않게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는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성령님을 통해 개입하시는 분이시니 그 분에게 잊혀진 존재가 될 자녀는 단 한 명도 없으며 단 한 순간의 공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가 아무리 광활해도 그곳에 아무리 많은 생명체가 살아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분을 믿고 우리의 삶을 맡기세요. 절대로 우리의 능력이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시기에 우리의 생각으로 그분을 판단하는 것은 그 분을 우리의 생각으로 제한하는 어리석은 짓임을 명심하세요.
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껴진 그 아이들의 무한한 신뢰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서고 무능한 저에게도 아이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뭐든 하실 수 있으니 믿고 따르면 돼” 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신 모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감으로써 걱정과 염려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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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잊혀진 존재, 무한한 신뢰
기도 –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우리의 생각으로 제한하여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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