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다른 종류의 기적’

닥터 양 2021. 12. 22. 18:48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다른 종류의 기적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복이 된다는 너무나 유명한 말인데 실제로 이런 일은 기적이 아니라도 비교적 자주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 번에 문상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모여 함께 가기로 했는데 저는 그만 늦 어서 혼자 장례식장으로 직행했습니다.갔을 때 이미 위로예배는 끝나고 먼저 간 교우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문상을 하고 상주와 마주했습니다. 순간 느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라고. 여럿이 같이 왔을 때보다 상주와 밀도 있는 만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문상이 끝나고 식사를 할 때 상주는 제 곁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늦게 온 덕이 아닙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만일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졌다면 어떻겠습니까? 처음에는 일이 잘못된 줄 알고 실망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행운을 가져왔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칭송하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이 얼마나 있으십니까?

  저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을 받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형식적인 신앙 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배 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일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예배를 인간의 행사로 여기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실로 전화위복으로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유학생활 후반부에 참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가족을 먼저 귀국시키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지도교수님과 맞지 않아 학위를 거의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맞아 주지 않는 빈 집에서 한숨을 쉬며 술을 매일 마셨습니다. 그렇게 학위 문제도 있지만 외로움도 컸고 금전적인 어려움도 느껴야 했습니다. 귀국한 가족들의 생활비를 보내고 나면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국비 유학생으로 비교적 여유있게 살던 저에게는 처음으로 닥친 금전적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인 주()자 주님이 아니라 술 주()님에 매달려 지냈습니다. 밤마다 혼자 벌이는 술판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마침내 위스키 한 병을 그대로 해치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조금도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원래 주량이 많은 데다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취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와인이나 맥주를 더 마시고 나서야 조금 취해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술독에 빠져 사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인교회의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일단 심리적 안정을 얻고 주량을 줄일 수가 있었고 마침내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량은 평소대로 가끔 마시는 맥주 1,2병 와인 몇 잔 정도로 줄었습니다. 더 이상 매일 술독에 빠지는 일은 없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응답? 기대 안했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지도교수님이 저를 칭찬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학위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고 거기에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게다가 외로움도 어느 정도 사라져 살기 좋아졌습니다. 이래저래 저는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삶게 되었으니 이것이 응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학위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에 저는 기도응답을 받았음을 느끼고 결심했습니다. ‘이젠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을 수 있어. 평생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것이다라고.

  그것은 전화위복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순조롭게 학위를 받고 또 가족과 헤어지지 않아 외롭지 않고 거기에 금전적인 문제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좋아하던 술도 단박에 끊어버렸으니 그야말로 금삼첨화였죠. 제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술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시간과 여력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거기에 건강은 보너스로 주어졌습니다. 십이지장궤양을 안고 있던 저는 술을 끊음으로 거의 완치되어 더 이상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으면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 그리고 생각은 우리와 다르지만 그쪽이 훨씬 좋은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어른들이 뭔가를 시킬 때 원망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게 더 좋았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 갔을 때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유명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가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왕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굳게 믿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기대대로 풀무불에서 구해주는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그런 기적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전폭적 믿음으로 맞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라는 찬양은 그러한 믿음을 노래한 곡입니다.

  ‘지선아 사랑해의 작가 이지선 자매는 한동대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되기 어려운 교수가 되었으니 만족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교수가 되기 훨씬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고 해도 저는 거절할 것입니다. 지금의 제가 훨씬 좋습니다그녀는 교통사고로 얼굴에 끔찍하게 흉한 흉터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경험한 행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누구나 그런 일을 당하면 원망과 불평과 나올 법도 한데 그녀는 그것으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지선씨 화끈하시네요” “아니요. 저는 홀랑 타버린 여자입니다이지선 자매의 긍정적 사고가 엿보이는 대화입니다. 이런 유모를 말할 수 있는 그녀의 마음은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화상으로 힘들었던 것도 나중에 생각하면 전화위복을 위한 하나님의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가진 것을 잃었을 때 느껴지는 풍성함에 의해 도리어 큰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을 놓기 싫어 붙들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래서 우리는 내려놓음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하기 어려우니 하나님이 강제로 그렇게 만드시는 경우를 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  하나님의 계획이 이런 것이었구나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필자는 친구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하나의 기적을 기다리던 친구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비로 그 모습에 서럽게 울었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기대했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거기에 만족하고 적응해 가는 친구에게서 전화위복의 기적을 본 것입니다. 이지선 자매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는 기적 대신 현재의 모습에서 또 다른 기적을 발견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기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뻐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결코 나를 혼자 내버려 뒤시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그러한 기적은 일어납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어떠한 결과가 찾아와도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마음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또 하나의 기적을 찾아내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오늘의 필자의 친구도 이지선 자매도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기적으로 행복을 누리고 살아 가는 모습을 보였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감명을 가져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믿음으로 또 하나의 기적을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