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하기 싫고 성적은 잘 받고 싶다고? - 신앙에도 공짜는 없다!
‘자기 주도 학습’ 대한민국의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르지 않을 용어입니다. 이 말을 가장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마 교육관계자일 것이고 특히 학습지 관계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주도 학습’의 반대말은 아마 ‘‘교사 주도 학습’ 일’ 것입니다. 학습의 주도권을 학생 자신이 갖느냐 교사가 갖느냐(때론 학부모가)에 의해 구분되는 셈인데 오늘날 자기 주도 학습은 학습의 성공적 성취를 위해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기 주도 학습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학습을 계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습을 해 간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학력고사나 예비고사 수능 등의 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사람들의 단골 메뉴가“학교 수업에 충실했다”라는 비결은 학교 수업에만 충실하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학교 수업에서 개념이나 방법을 제대로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주도학습을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봐야 합니다. 학교수업에만 집중하고 방과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천재가 아닌 이상(놀랍게도 그런 천재들이 있기는 합니다) 좋은 성적은 절대 불가하죠.
예전에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비교적 학원에서의 교육 경험이 적은 저이기에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초중고에 관한한 과외와 학습지 같이 1대1 또는 1대 소수의 교육 경험이 압도적입니다.) 결론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주도 학습을 하거나 했던 학생이 일반적으로 성취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것을 현장에서 경험해야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스스로를 돌아보셔도 알 겁니다. 자신 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왜 공부를 잘하고 왜 못 하는지.
그런데도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공부는 안 하고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공부비법에 대한 강의나 세미나 등이 만연하고 있죠. 물론 어차피 공부할 것이니 가성비 좋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노력 없이 머리에 지식과 이해를 주입시켜 성적을 올리는 비결은 없을 것입니다. 한 번만 읽으면 다 암기된다는 천재라도 일단 읽어는 보아야 하겠지요?
어려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던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평범해지거나 심지어 아둔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머리가 좋아 듣는 족족 암기되고 이해되는 아이가 왜 그렇게 될까요? 학습이 복잡해지면 머리를 써야 하는데 편하게 좋은 성적을 올리던 아이니까 그런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 때문에 기피하게 됩니다.
스타플레이어가 명감독이 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 선수들은 대개 선천적으로 소질이 있어 성공한 사람들인데 감독이 되면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지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선수들이 왜 못하는지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성공한 선수출신선수 출신 혹은 끝내 소질이 없어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 출신들은 그들을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지도를 함으로써 명장이 됩니다. 자기주도훈련으로 성공한 셈이니 선수에게도 그것을 제대로 시킨다는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은혜’가 강조되면서 자칫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있습니다. “다 하나님 은혜인데 인간의 노력이 왜 필요하나?”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말은 안 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더 많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신앙이 좋다고 하면 “그게 그 사람이 잘 나서 그래? 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은혜를 주신 거지”라고 치부합니다. 물론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생활의 나태함에 대한 완벽한 합리화는 되지 않겠지요? 은혜=선물=공짜 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왜 누군가에게 선물을 줍니까? 물론 선물을 주며 대가를 청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이거 받으세요. 공짜에요”라고 말하며 선물을 주지는 않습니다. 제정신이라면. 무슨 판촉물을 나눠주는 것은 선물을 준다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선물을 주는 것은 상대가 선물을 주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모가 자식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애인에게 애인이 주는 것도 이유가 확고합니다. 내 자식이 이쁜 짓을 하니까 애인이 사랑스럽게 구니까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물의 대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짜라고 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믿음을 아무리 깊고 크고 높고 넓게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과 축복의 대가는 될 수 없습니다. 어린 자식이 정성껏 편지를 쓰고 작은 선물을 마련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아이에게 주어지는 부모의 보호에 대한 대가가 될 수 없겠지요. 완전히 기울어집니다. 비중이 가치가.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그것이 너무 기특하니 선물을 줍니다. 그래서 은혜가 공짜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지 정말 아무것도 없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맨날 말썽이나 피우고 말도 안 듣고 사는 자식에게 선물을 주고 싶을까요? 물론 그럼에도 부모의 의무로 줄 수 있는데 그것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맘에 드는 삶을 산다면 부모의 지갑이 더 잘 열리지 않을까요?
우리가 더 많은 은혜의 선물을 받는 비결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돈이나 뭐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갖가지 아양을 떠는 자식에게 부모는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반대로 늘 연락도 자주 하고 인사하러 오고 부모 안부를 걱정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진심을 보여주는 자식의 부탁이라면 더 잘 들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이겠지요. 그 부탁에 의해 지는 부담이 그들이 해 온 것과 비교해 훨씬 더 클지라도.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자기주도신앙’이라고 해야 할까요? 교회에 나가 목사님 설교 듣고 예배하고 그걸로 끝이 나는 신자가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기란 애당초 불가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신앙의 거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알려 주세요. 공부엔 천재가 있을지 모르나 신앙에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신앙은 택함에 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신앙에 대한 대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No Cross No Crown!” “고난 없이 영광 없다”는” 말이 생긴 거 아닙니까?
오늘의 필자는 그것을 말해줍니다. ‘균형 잡힌 삶’이라는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균형하면 뭔가 치우친 것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가 있는데 본문의 내용은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고이니까요. 오히려 ‘신앙 성장의 길’ 이런 식이 나을 듯합니다.. 아니면 ‘‘자기 주도 신앙’이라고 해도 좋고요. 하지만 필자의 주장에는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것을 필자는 ‘멈춤의 시간’ ‘재설정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자기주도 신앙의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자기의 계획을 세워 학습을 하면서 수업이 그 중심에 있는 것처럼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한 자기 주도 신앙에 대한 계획을 세워 이를 꾸준히 실천한다면 우리의 삶은 진정 신앙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지진아’ ‘신앙의 영양실조’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필자도 강조한 것처럼 기도와 말씀 거기에 더하여 찬양과 전도 봉사 등이 필요합니다. 뻔한 것이라고요? 그런 뻔한 것을 왜 여러분을 하지 않습니까? 공부 잘 하는 비법이 별 것입니까? 꾸준히 공부하는 거죠. 예전에 영어를 가르치러 다닐 때 학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하나요”라고” 물으시면 “영어공부를 하면 됩니다”라고” 답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영어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거든요. 남의 언어를 그저 일주일에 2,3시간 많아야 10시간 공부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니 참으로 배포가 좋습니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건가요?
하물며 영어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신앙을 거저먹겠다고요?? 그 배포 하나는 우주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런 배포는 없거나 작을수록 좋습니다. 신앙에는 좀 더 쫌생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 알맞은 대가를 치를 수 없는 것이기에 공짜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을 자격이 1도 필요없을까요? 내가 은혜를 바라지도 사모하지도 않고 사는데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받은 사람의 피눈물 나는 고난의 극복 등에 의해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홍예숙 사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병을 치유할 때 그 병자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합니까? 이것이 은혜의 대가라면 대가입니다. 그런 것도 없이 그저 받기만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사람들을 타락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시련을 통해 연단하시어 정금같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애당초 축복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연단과 성장을 위한 수단이니까요.
중국 공산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모택동(마오쩌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망은 밝다. 그러나 길은 험하다“ 참으로 진리입니다. 방법을 몰라서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이 너무나 험해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라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앙 성공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여 성공하려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성공이 어려운 것입니다. 더 이상 공부 안 하고 성적 올리려는 생각 마시고 ’’ 멈춤의 시간’ ‘재설정의 시간'을 통해 자기 주도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보다 크고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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