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생각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변화(3) 시장과 불평등의 관계2

닥터 양 2021. 5. 20. 05:57

생각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변화(3) 시장과 불평등의 관계 22

 

  자유주의가 만능이라는 생각은 과연 역사적으로 사실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시작할 무렵 그들은 강력한 보호정책을 다수 갖고 있었다. 항해조례는 그중 하나인데 영국 선박 또는 식민지 이외의 나라의 선박이 식민지와 영국 사이의 중개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이다. 이런 터무니 없는 규제를 외국에 강요한 것이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자유방임인지 묻고 싶다. 군대를 동원해 해외식민지를 개척하고 그곳에의 진출을 도운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스미스는 항해조례를 지지했는데 그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영국의 해군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국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조차 필요에 의한 규제를 전면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오늘날 이른바 주류경제학자들은 끊임없이 시장지상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은 커다란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고 있는 박정희 시절이 과연 자유주의적 경제사상을 실현한 시기인가? 국가의 돈으로 제철소를 짓고 건설회사에게 손해를 감수하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도록 강요하였으며 8.3 조치 같이 초법적인 조처를 통해 금융시장을 통제한 것이 자유주의라면 세상이 웃을 일이다. 일본 자동차의 수입을 극도로 억제하여 자동차를 육성한 것은 숨길 수 없는 비밀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완전한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는 책에서 말하듯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밀어준 기업에게는 국민에 대한 큰 부채가 있다 질 좋은 수입품을 거부하고 국산품을 애용한 것 쌀밥의 유혹을 이기고 혼식을 하며 외화를 절약한 것 심지어 폐품수집 저축 장려운동에 적극 동참한 것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며 경제발전에 동참한 것 등등 경제논리나 자유주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감내한 점을 그들은 잊었다는 것일까?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는데 그런데 마치 자신들만의 힘으로 성장한 것처럼 뻔뻔하게 완전한 자유주의를 내세워 자신들만의 번영을 추구한다면 일종의 배은망덕이라 할 것이다.

  이제와서 서양식 자유주의를 논한다면 과거에 자신들이 누린 모든 혜택에 대한 대가를 모두 지불하고 할 것이다. 수출금융으로 역마진을 얻은 것부터 각종 세제혜택 등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국민이 우리 기업을 위해 지불한 대가 말이다. 지금도 외국으로부터의 압력이 들어오면 애국심을 호소하며 협조를 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 국민이 협력한 사실을 잊었는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그토록 인기를 얻던 일본 제품의 유혹까지 이겨내며 국민이 국가경제를 위해 희생한 좋은 사례이다. 이래도 감히 자유주의만 앞 세울 것인가?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자본적 시민운동은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파리 시민의 저항을 연상케 한다.    식민지 통치와 미군의 진주 그리고 그것에 의해 주어진 형식민주주의의 시작 이어진 군부 쿠데타와 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는 프랑스가 한 번에 해치운 부르주아지 혁명을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룬 것이라 하겠다. 19876월민주항쟁은 한때는 동반자였던 군부세력과 부르주아지 세력의 대립을 민중의 힘으로 종결시킨 사건이다. 1949년 농지걔혁으로 정리된 봉건 세력에 대신하여 등장한 군부세력마저 청산한 한국사회는 부르주아지들의 나라가 된 것이다. 반자본적 시민운동은 다음 단계를 위한 투쟁이다.

  대통령직선이라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이 민중의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약화시킨 꼴이 되었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게 되었으니 더 이상의 혁명은 필요 없다고 여기는 민중들은 부르주아지들이 깔아 놓은 길을 따라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대중으로 전환하여 갔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러한 길은 더욱 잘 정비되어 박정희식의 개발정책은 종지부를 찍고 부르주아지를 위한 자유주의 국가로 탈바꿈해 온 것이다. 막강한 금전적인 힘으로 정치권력을 좌우하게 된 부르주아지에 의해 국민은 사육되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자유주의에 있어서 모든 결과는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가난도 부도 모두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따라서 양극화의 현상이 발생해도 그것은 어디까지 개인적인 문제일 뿐 국가나 사회가 개입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자벨경감은 그러한 신념을 믿는 인물이고 따라서 법과 질서를 깨뜨리는 그 어떠한 존재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의 소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한마디로 그는 19세기적인 자유주의의 화신이었다 하겠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장발장이 보여준 자비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 버린다. 악한 자들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라는 자벨의 신념에 의하면 장발장의 자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악한 인간들은 구제불능이고 따라서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믿는 그에게 장발장의 자비는 그가 평생 동안 지켜온 자유주의적인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였다. 범죄자=악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혼란을 견디지 못해 자벨이 택한 선택은 자살이었다. 미워해야 할 상대의 자비로 인해 그는 자신을 합리화시킬 명분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19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유주의만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었다. 대량으로 발생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대조적인 부르주아들의 부유한 삶은 자본주의적 억압이 과거에 존재한 봉건적 억압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각종 사상이 탄생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과격한 것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기대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다..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커간 자본주의는 결국 이윤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자본가들 간의 분쟁과 노동자 계급의 봉기로 붕괴될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종말론을 마르크스는 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