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빛과 그림자 (7) 한국전쟁과 일본경제의 부흥
(해설)우리는 일본경제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그들이 보여준 경제사에서의 놀라운 업적은 결코 무시해서도 잊어도 안 될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경제도 영원한 번영은 불가하다. 현재의 실패나 침체 때문에 번영의 시대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경제의 번영과 침체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기로 하자.
전쟁은 파괴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을지 모른다. 전쟁은 경제와 기술 사회 정치 등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기도 한다. 전쟁을 통해 경제가 발전하고 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핵폭탄의 개발은 좋은 예이다. 제2차 대전이 없었다면 핵폭탄도 어쩌면 원자력발전도 오늘날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전후의 세계정치도 우리의 삶도 바뀌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의 유명 카메라 메이커 니콘은 제2차 대전 때 잠수함의 잠망경을 개발한 것을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이 되었다. 니콘 이외에도 많은 일본의 기업들이 전쟁 물자를 생산하면서 성장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이 한 때 세계 제1의 조선왕국이 된 것도 전쟁 때 군함건조를 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전쟁이 현대 우리 재벌기업들의 탄생을 가져온 계기임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전쟁처럼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1904-05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은 일본에게 국제사회에서의 명예와 위상을 얻게 하였지만 영일동맹의 또 다른 당사자인 영국은 명분도 실리도 얻어 ‘남의 불행’을 이용해 ‘나의 행복’을 얻는데 성공했다. 당시 군수물자(주로 병기와 군함)의 자체 조달능력이 미약한 일본은 영국을 통해 많은 군수물자를 수입하였고 그를 위한 자금은 런던에서 조달하였고 영국에게 눈의 가시같은 러시아와의 전쟁에 엄청난 피를 흘렸으니 요즘 말로 영국의 완전한 ‘호갱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제1차 대전이 터지자 입장은 역전되었다. 이번엔 일본이 자금과 군수물자를 대주고 자신들의 피는 거의 흘리지 않았으니 영국이 ‘호갱이’가 되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유럽 전체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만들려고 해도 어느 정도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월남전으로 우리도 많은 피를 흘리면서 실리와 명분(자유세계의 수호)을 챙겼지만 일본 만큼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일본이 피를 전혀 흘리지 않고서도 우리보다 훨씬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경제력이 우리보다 월등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태평양 너머 자국에서 각종 물자를 운반하기보다 가까운 일본을 이용하는 것이 편함을 알았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한국은 그것을 감당할 경제력과 기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떡고물은 일본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코리아패싱’이라 할 수 있다.
‘코리아 패싱’은 물론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은 ‘공로병’(Russophobia恐露病러시아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영토확장에 대한 집념은 엄청났고 나이팅게일과 앙리 뒤낭이 활약한 크림전쟁도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열강의 대응에서 일어났다. 동아시아에서도 러시아는 청나라에게 침략의 마수를 펴며 연해주를 손에 넣고 만주철도를 부설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었기에 열강의 긴장감을 높였다. 동유럽에서는 터키가 러시아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던 것처럼 동아시아에서 방파제 역할을 나라가 필요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일본이 낙점되었다. 조선에 대하여도 일시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나 곧 탈락하고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도 탈락한 후의 일이다. 이것도 일종의 ‘코리아 패싱’인데 그 덕분에 일본이 우리를 단독으로 지배하는 것이 수월해진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적대감을 갖는 두 번째 이유(첫 번째는 식민지지배일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전쟁과 일본경제의 부흥이라는 사실이다. 요즘은 몰라도 예전에는 일본이 한국전쟁 덕에 경제발전을 했다는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2019년에도 강의실에서 그런 주장을 되풀이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이니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우리의 불행을 이용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분노를 심어준 것이다. 다른 말로 일본의 경제발전은 그저 운이 좋아 가능했다는 또 다른 편견도 낳았다고 하겠다.
이미 짐작을 하였겠지만 이것은 일부 맞는 말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한국전쟁이 일본경제의 부흥에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일본이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행운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제2차 대전으로 군수공업이 발달했던 일본은 전후에 군수의 소멸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 과정에서 민수를 최소화하면서 군수산업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전후 5년가까이 일본경제의 부흥은 그다지 빠르게 진행되지 못했는데 한국전쟁은 일본의 군수산업에게 젖줄이 되었고 군수산업의 부흥은 곧 일본경제 전체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일본경제의 발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미미한 정도라 하겠다. 월남전에서 우리가 얻은 이익과 비교해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일본은 제2차 대전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과 4년 가까이 전쟁을 한 나라이니 월남전 당시의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 대국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도 탱크도 잠수함 항공모함까지 만들 정도였으니 가히 그 경제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 (필요성도 적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일본경제가 발전했다는 식의 인식은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특히 우리의 불행을 이용해서 운 좋게 발전했다는 터무니없는 편견은 우리의 일본에 대한 적대심만 키울 뿐이니 절대 버려야 할 것이다. 물론 식민지지배로 인한 침략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것은 양국 관계는 물론 우리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보다 냉정한 자세로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도록 노력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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