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준비된 자를 원한다
여자배구의 슈퍼스타 ‘김연경’ 설령 배구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 쯤을 들어 본 이름일 것이다. 그녀의 위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조금 기량이 쇠락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한때 여자배구 남자배구 통틀어 연봉 세계 1 위를 자랑하던 선수였고 지금도 탑5에 드는 수준이다. 한때 김연경의 별명은 ‘여자배구의 메시’ ‘여자배구의 호날두’ 나아가 ‘여자배구의 메날두’였다. 여자배구의 인기가 축구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그렇지 가히 김연경의 위상은 여자배구에서는 메시나 호날두에 비견될 정도였다.
현재 김연경은 여자배구의 세계 최고리그라 할 수 있는 터키리그에서 최강 엑자시바시 비트라팀에서 세계최고의 선수들인 티아나 보스코비치(세르비아), 조던 라르손(미국)과 삼각편대를 이루어 활약하고 있다. 올해로 한국 나이로 30이 된 김연경은 비록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젊은 보스코비치와 라르손에게 주공격수의 자리를 내 주었음에도 그들보다 높은 연봉을 주고라도 데려와야 할 선수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여전함을 과시하고 있다.
김연경에게는 늘 ‘세계 최고의 완성형 레프트’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레프트란 ‘윙스파이커’라고도 불리는 포지션인데 주공격수로서 왼쪽 사이드에서 공격을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에 비해 ‘아포짓 스파이커’라 불리는 라이트 포지선은 보조공격수로서 오른쪽 사이드에서 공격을 담당한다.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는 라이트에 비하여 레프트는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능력이 뛰어나야 감당할 수 있는 위치이다. 게다가 스파이크 서브가 일상화된 현대 배구에서 레프트는 목적타라는(서브를 특정선수에게 집중시켜 그 선수의 공격력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서브전략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강한 서브를 세터에게 정확히 전달해 주는 리시브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데 김연경만큼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는 레프트는 현재 여자배구계에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적어도 세계적인 수준에서는)
게다가 지금은 약해졌지만 공격력 역시 세계최강의 수준이었다. 유럽챔피언결정전에서 최우수선수상과 최우수공격상을 수상할 정도로 강했고(실은 더 많은 상을 받아야 했지만 규정이 한 선수가 2개까지 밖에 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이 4위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최우수선수상과 최우수공격상을 받을 정도로 가공할 수준이었다.
배구선수가 그것도 여자선수가 공격력과 리시브 능력 디그(수비)능력을 함께 갖추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연경만큼 공격력이 뛰어난 공격수는 어느 정도 있지만 그들은 수비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 수비전담 포지션인 리베로는 센터포지션의 대타로만 쓰여질 뿐이고 선수교체도 한 세트 6번에 한정되어 있는 가운데 로테이션으로 경기를 치루는 배구에서 공격수들의 수비를 누군가 대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연경이 ‘완성형 레프트’라고 불리는 것은 공격은 물론 수비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이다. 192센티의 장신이 몸을 날리며 하는 수비는 수비전담선수 리베로에 버금갈 수준이고 그로 인해 수비능력 랭킹에서 때때로 리베로들을 누르고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연경은 실제로 ‘우승청부사’로서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국내리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4년 연속(김연경의 소속 기간도 4년이니 매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 3번의 우승을 거둔 뒤 일본의 JT마블러스에 이적하여 만년 최하위였던 팀을 리그 우승 1번 종합우승 1번을 거두게 한다. 이어 터키리그에 진출하여 페네르바체 팀을 1번의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비롯하여 각종 우승을 거두게 하고 중국리그에 진출하여 상하이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결코 강팀이 아니었다)이끌었다. 하지만 종합우승에는 실패했는데 이는 중국리그의 이상한 규정 탓이라고 봐야 한다. 4강토너멘트에 오르면 탈락팀의 선수를 데리고 와서 임시로 뛰게 할 수 있는 규정으로 인해 김연경의 상하이는 거의 중국대표팀이라 할 상대와 시합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연경이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것을 꺼려 제대로 활약하도록 하지 못하게 했다(세터가 좋은 공을 안 주는 식으로)는 소문도 있었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중국리그라면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김연경의 배구 인생이 속칭 ‘꽃길’만의 길은 아니었다. 김연경은 현재 192센티라는 여자배구선수로는 훌륭한 피지컬의 소유자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작은 신장으로 배구를 포기할 위기를 여러 번 가졌던 아픈 추억의 소유자이다. 초등 4학년 시절 147센티였던 꼬마 김연경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도 173센티의 단신에(배구선수로는)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절친이자 초중고를 함께 한 김수지(센터)가 이미 고등학교 진학시 이미 180센티를 넘겨 (현재 186센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김연경은 후보선수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하지만 김연경에게 그러한 시절은 도리어 새옹지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결과적으로 축복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키가 작은 김연경은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도록 길러졌다. 특히 수비능력을 강화하여 수비보강을 위해 게임에 출전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완성형 레프트’로 성장하는 기반이 될 줄은 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가 고3이 되어 187센티로 성장하자 (여고생으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성장) 이러한 수비능력이 호랑이의 날개가 된 것이다. 그녀가 소속된 한일전상여고는 무적의 팀-원래도 강팀인데-이 되었고 당시 프로리그에서는 김연경을 잡기 위해 꼴찌경연을 벌이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전년도의 순위의 역순으로 선수를 지명하는 드레프트 규칙 때문에 꼴찌를 하면 드레프트지명 1순위가 되어 김연경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우승이 불가능해진 하위팀들은 꼴찌라도(?)해서 김연경을 잡는 것이 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그후 규정이 바뀌어 순위를 추첨으로 정하되 하위팀이 유리하게 하게 하였다. 김연경의 존재는 리그의 규정을 바꿀 정도의 엄청난 무게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김연경은 세계무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한국여자배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게 된다. 일본의 배구관계자들은 ‘100년에 한 번 나올 재목’이라고 극찬했다. 그녀가 JT마블러스 시절 어느 경기에서 조금 부진(?)해서 25점을 얻는 데 그치자(그 정도면 다른 선수에게는 최고의 활약이다)“김연경도 사람이긴 하군요”라고 해설자가 말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김연경은 런던올림픽에서 한국팀을 36년만에 올림픽 4강에 올리는 공신이 되어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세계에 떨쳤다. 물론 그 전에 유럽리그를 평정하였지만.
만일 김연경이 키가 작은 시절 배구를 포기했다면? 포기하지 않았어도 연습을 소홀히 하며 지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녀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지만 한국여자배구는 100년에 한 번 나올 재목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김연경은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악발이같이 연습에 매달린다. 그런 그녀이기에 하물며 그 시절에는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기회는 누구에게는 한 두 번씩 온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을 살릴 수 있느냐이다. 가수 장윤정이 뛰어난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무명이었다가 백지영이 양보한 ‘어머나’를 눈물 흘리며(트로트가 싫어서)부른 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것처럼 실력이 곧 성공은 아니지만 실력을 쌓아두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성공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연경은 그러한 것이 진리임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비록 오늘 내일 성공은 하지 못할지라도 꾸준히 실력을 쌓아간다면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자신을 구할 능력이 될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를 원한다’고 했다. 3포 세대 6포 세대라는 말처럼 포기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설령 기회가 온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눈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노력해 보기 바란다.
주나라 무왕을 도와 천하를 제패한 강태공은 70세까지 낚시질만 하고 있다가 아내에게 버림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천하를 손에 넣을 경륜과 전략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무왕의 부름을 받아 그의 천하제패를 도왔고 자신은 제나라의 제후가 되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다.
강태공의 아내는 그러나 그것을 함께 누리지 못했다. 강태공이 제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아내는 한걸음에 달려가 “저를 다시 받아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강태공은 물을 떠오라고 했다. 아내가 물을 떠오자 그것을 바닥에 쏟아버리고 “이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면 내가 다시 당신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이 거기서 유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강태공의 아내는 준비를 하지 않아 결국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이 겠는가? 우리는 강태공이 되어야지 강태공의 아내처럼 어리석은 길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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