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과 마음의 사랑(1)
예전에는 대중가요에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었습니다. 오히려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기쁨을 노래한 곡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지요. 김수철의 ‘못다 핀 꽃 한송이’ 윤수일의 ‘아파트’ 등등 헤아릴 수 없는 곡들이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곡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천편일률적 이별곡이 싫었습니다. ‘아니 왜 사랑을 그리지 않고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만 이렇게 많은 거야’라는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외국노래는 사랑 자체를 노래한 곡도 많았기에 좋았습니다. 카펜터스의 명곡 ‘탑오브더 월드(Top of the world세상의 꼭대기)나 존 덴버의 ‘선샤인(Sunshine)’ 바바라 스트라샌드의 ‘우먼인 러브(Woman in love 사랑에 빠진 여자)’ 등등은 사랑의 행복을 노래하여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습니다. ‘코이비토요(연인이여)’를 불러 우리나라에도 인기를 끈 일본가수 이츠와마유미(五輪真弓)의 노래도 이런 성격의 곡이 많아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츠와 마유미는 아마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일본 가수라고 생각하는데 엄청난 가창력과 함께 한국인의 정서에도 맞는 사랑노래를 많이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 들어서 우리 대중가요도 더 이상 떠난 사랑에만 매달리지 않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떠난 사람에 매달리는 것은 너무 궁상맞지 않습니까? 물론 그 중에는 아름답게 그려진 노래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치우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저는 지나간 노래보다 21세기에 나온 Kpop을 더 좋아합니다. 소녀시대의 1집처럼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한 곡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들은 21세기곡을 들어보지도 않고 싫어하는 모양인데 아마 제대로 들으면 예전의 팝송과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사랑이 깊었고 마음의 사랑이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않고 다만 추억의 앨범 속에서 고이 간직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맥아더 원수는 말했지만(물론 그가 만든 말은 아니다) ‘마음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가슴에 묻혀 있을 뿐이다’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앨범에 어떤 마음의 사랑이 간직되어 있습니까?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도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것은 이별을 부정하고 미련을 노래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이별의 아픔을 승화시킨 것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앞의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마 현대인이라면 이런 사랑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랑이 너무 쉽게 이뤄지는 오늘날 떠난 사랑에 매달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예전에는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또 그 사랑을 누리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놓친 사랑에 대한 그리움도 더욱 컸을 것입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고 한 김소월의 시도 마찬가지로 그런 마음을 노래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김소월의 또 다른 시 ‘개여울’에서도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며 무슨 약속이 있었겠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말라는 부탁인지요” 지금처럼 전화 메일 카톡 등으로 상대를 마크하는 시대와 달리 당시에는 떠나면 연락할 길도 막막했습니다. 그러니 떠난 사람이 정말 떠난 것이 아니라 돌아 올거라고 믿으며 마음을 달래야 했을지 모르죠. 상상해 보십시오. 상대와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떠났다면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망부석이 된 여인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사랑이 귀하던 시절의 사랑은 대부분 마음의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남녀가 길에서 애정행각을 벌여도(포옹 키스 애무 등등) 그다지 주목을 받지 않는 오늘과 달리 남녀가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던 시대라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대놓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여간 마음이 가지 않으면 할 수 없었죠. 지금처럼 옆구리 시리니 만나보자는 식의 연애는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였으니까요. 사랑을 느껴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키우겠다는 시대에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거짓된 믿음까지 갖는 사람들의 처절한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님의 침묵’과 같은 승화된 이별과 마음의 사랑을 노래하는 대중가요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20세기의 대중가요는 떠난 사랑을 그저 그리워할 뿐이지만 21세기의 대중가요 중에는 아픔을 승화시킬 뿐 아니라 그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이들 노래들을 들으며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중가요를 폄하하고 클래식만 진정한 음악이라고 여겨온 제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우리의 대중가요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진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좋은 곡들이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앨범을 사보면 타이틀 곡이 아닌 곡 중에 정말 좋은 곡들이 제법 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거나 노래방에 가서 부르려고 하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 시대적 상황과는 맞지 않을서일까요? 그러니까 타이틀곡이 되지 못하고 인기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런 곡이 만들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작가와 대중 사이의 인식의 갭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앨범을 구입하시면 숨겨진 보화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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