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랑이 된 우정
‘관포지교’라는 말을 아시나요?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천하를 지배하던 주(周)나라의 천자가 그 힘을 잃고 제후국들이 서로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시대가 춘추전국시대입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구별은 공자의 저서 ‘춘추’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사실상 큰 차이는 없었고 다만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감에 따라 천자의 권위는 완전히 부정되고 천하를 지배할 쟁패전이 전개되었다는 점이 달라집니다. 주나라의 천자는 일개 제후로 전락하였고 이긴 자가 새로운 천자로 등극하게 된 시대가 전국시대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천자를 대신해 질서를 잡는 패자가 연이어 등장하여 ‘존왕양이’(왕을 받들어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 때만 해도 제후들은 왕위를 참칭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의 공식명칭은 공후백자남(작위)에 머물렀습니다. 최초의 패자의 이름도 제나라 환공(桓公)이었습니다. 제나라는 주나라가 은(殷)나라를 멸하고 천자 위에 등극했을 때 공을 세운 강태공(姜太公낚시꾼의 대명사)의 나라입니다. 강태공은 70이 되도록 낚시를 하면서 천하를 지배할 경륜을 닦다가 주나라 무왕에게 발탁되어 천하 제패의 공신이 되어 한 나라의 제후가 되었습니다. 그런 강태공의 후손이 첫 번째 패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제 환공의 패권 수립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관중(管仲)입니다. 훗날 ‘관자(管子)’라고 불릴 정도로 숭앙을 받은 관중은 “사람은 곳간이 넉넉할 때 예절을 알고, 의식의 부족함이 없어야 부끄러움을 안다.”라는 말로 유명한데 이는 그가 경제를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려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부국강병’ 정책을 실행한 인물로 그의 행실은 ‘관자’라는 책으로 기록되어 남아 있을 정도로 그는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관중이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절친인 포숙(鮑叔또는 포숙아 鮑叔牙)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관포지교’로 알려질 정도로 유명합니다. 관중은 제나라에서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각각 따로 줄을 서서 싸우기도 했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자 패배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관중을 포숙아가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군에게 “제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저 하나로 족합니다만, 천하를 도모하실 것이라면 관중이 필요합니다”라고 읍소하여 자신보다 관중을 위에 발탁시켜 주었습니다. 훗날 관중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고 회고하며 그의 우정에 감사했습니다. 이들의 우정을 ‘관포지교’라고 부릅니다.
포숙아는 관중이 단지 유능했기 때문에 그를 살려주고 천거했을까요? 하지만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비자와 이사는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동문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학생이 수백 명 수천 명이나 되는 시절과 달리 그 당시에는 동문수학하는 친구는 잘해야 몇십 명이었을 것이며 둘은 가장 뛰어난 제자들이었기에 서로 가까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는 한비자가 자신의 나라인 진(秦)나라에 왔을 때 그를 모함하고 심지어 암살하고 말았습니다. 이사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유능한 것을 알기에 그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유능하니까 천거하는 것 보다 제거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는 낫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포숙아의 천거는 우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포숙아의 우정은 그들이 출세하기 전부터 빛났습니다. 관중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함께 장사를 했을 때 내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도 그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도망을 쳐도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노모가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를 해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때를 못 만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포숙아의 생각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는 관중을 친구로서 무척이나 사랑했기에 그 모든 것을 감싸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우정이 두 사람을 세상에서 빛나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마음의 사랑은 남녀관계나 부모자식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포숙아는 진심으로 관중을 아끼고 사랑했고 그래서 그를 이해했으며 죽음에서 건져주고 심지어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내란에서 승리한 측의 공신인 포숙아는 마음만 먹었으면 관중을 죽이고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그를 살려주고 최고위를 양보한 것입니다. 포숙아가 진정으로 관중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비자와 이사의 경우처럼 우정도 권력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도 이러한 사랑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자는 안회(顏回)라는 제자가 죽었을 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라며 통곡을 했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지 모르나 세상에는 스승과 제자가 원수가 되어 싸우는 경우조차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사랑처럼 공자의 안회에 대한 사랑도 그저 그가 유능하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 역시 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제자에 대한 사랑 역시 마음의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스승을 ‘마음의 어버이’라고 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 관포지교와 같은 우정이 남아 있을지 의문입니다. 성경에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목숨은커녕 조그만 손해라도 함께 할 친구가 있을까요? 학교가 거대해져서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도 사라져가는 오늘 스승의 사랑과 제자의 존경이 과연 남아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친구와의 우정 스승과 제자의 사랑과 존경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사회를 보다 밝게 해줄 아름다운 유산이 아닐까요?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랑으로만 가득 찬 세상은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관포지교를 통해 우정을 안회와 공자의 관계에서 사랑과 존경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한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세계에 들어와 있을 때 세상은 보다 행복한 곳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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