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반도 교량론의 허구 –우리는 수난의 민족이 아니다.

닥터 양 2020. 12. 26. 03:24

한반도 교량론의 허구 우리는 수난의 민족이 아니다.

 

  모름지기 유대인만큼 수난을 많이 받은 민족은 없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400년간 더부살이를 하며 노예처럼 혹사당했다고 한다. 그들이 겨우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것이 대략 기원전 1,500년 경이며 그곳에서 블레셋이라 성경에 기록된 팔레스타인 세력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한때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나 그들의 지배를 받은 시기도 제법 있었다.

  그 후에 남북으로 분열되어 서로 다투다가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등에 의해 지배를 당하였다. 심지어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끌려가는 바빌론 유수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거듭되는 외세의 지배하에 놓이며 저항운동을 전개하다가 마침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들에 대한 격렬한 저항을 거듭하다 로마의 철저한 진압으로 결국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추방되고 세계를 떠도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디아스포라가 부분적으로 있었지만 민족적 디아스포라 상대가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일 것이다.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차별과 박해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 절정은 물론 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이지만 그것은 오랜 유대인 차별과 박해의 역사가 만들어낸 참극일 뿐 전부는 아니다.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픠스 사건은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드레픠스라는 프랑스군의 대위는 억울하게 스파이의 누명을 썼지만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은 그의 무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을 불을 당긴 마틴 루터 역시 유대인을 저주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대문호라 일컫는 세익스피어도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을 지독하게 탐욕스러운 존재라고 묙사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악의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성경에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에 대한 배려가 신의 명령이라는 형식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나그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지금과 달리 치안을 위한 각종 제도나 시스템이 미비한 과거에는 사람들의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현지인과 나그네간의 분쟁은 절대적으로 나그네들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자기 가족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이 적지 않은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도덕과 윤리의식이 약했던 시대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걸 미끼로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은 클 수 밖에 없는데 유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유대인들의 수난의 역사는 그들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되게 하였다. 노벨상 수상자 30%라는 결과는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철저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길을 걸어야 했던 그들의 삶이 가져온 선물이며 유대인이 인류사에 남긴 업적을 상징한다 하겠다. 프랑스혁명 러시아 혁명 등 인류역사의 찬란한 발자취의 중심에 유대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수난을 통해 얼마나 보편적 이념에 기초하여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만약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이러한 업적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경에 보이는 유대인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에 유대인처럼 수난을 당한 민족을 동양에서 찾는다면 중국의 한족을 들 수 있다. 길고 긴 중국역사를 장식한 많은 왕조들 중에 한족의 왕조는 의외로 적다. 명백히 한족의 왕조라 할 수 있는 나라는 진한제국과 송나라 명나라 정도이며 나머지는 이민족 정복왕조이다. 삼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가 북방 5호족에게 멸망 당한 이후의 중원은 이민족의 놀이터였고 한족은 그러한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이 오히려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한족 국가로 등장한 송나라와 명나라는 이민족 정복왕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약한 국력의 나라였다. 세계를 누빈 몽골의 원나라는 물론이지만 현재의 중국영토를 형성한 청나라와 비교해도 그렇다. 이민족 정복왕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중원을 겨우 지배하는 국가로 머물렀을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수난의 민족이라는 인식과 달리 비교적 평화 속에 살아온 행운의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세계사를 통틀어 우리처럼 외침에 시달리지 않은 민족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외침이란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왜구의 약탈은 정복전쟁이 아니니 제외해야 할 것이다. 지난 천년 간 우리가 맞이한 외침은 대부분 중원을 지배하고자 한 북방민족의 견제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지 우리를 지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우리가 수난의 민족이라고 생각되는 이유 중에 이른바 한반도 교량론이 있다. 한반도가 대륙세력의 해양진출 해양세력의 대륙 진출을 교량이 되는 지정학적 위치이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수난을 당했다고 하는 한반도 교량론은 역사적 실체가 없는 허구에 불구하다. 동아시아의 세력다툼의 중심은 중원이며 따라서 모든 세력들은 중원을 향해 치달렸다. 한반도가 굳이 교량역할을 했다고 하면 전근대사에서는 도요토미의 침략 정도이고 근대사에서는 일본의 대륙진출인데 그나마 일본의 국력이 비대해졌을 때의 예외적 사건이다. 대륙 세력이 한반도를 교량으로 해서 해양진출을 노린다? 그런 일은 없었다.

   따라서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세력다툼의 사각지대였고 한민족은 그곳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한반도의 지형을 보면 대륙에 매달린 위치에 있어 극단적으로 사라져도 별다른 영향이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북방민족이 대륙을 향할 때 거쳐가야 할 곳이 절대 아니다. 일본이 대륙을 노릴 때는 교량이 될 수 있으나 일본이 그런 국력을 가지거나 그러한 의도로 한반도를 침략한 것은 길고 긴 역사 속의 한토막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시간 한일관계는 왜구의 소란을 제외하면 평화롭고 우호적이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수난의 민족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근현대사의 강렬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0년간 한민족은 수난의 민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경험을 했다. 일제의 침략 남북분단 그리고 한국전쟁 이렇게 숨가쁜 격동의 시간을 보낸 우리가 스스로를 수난의 민족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 하겠다. 인간은 먼 과거보다 최근의 일을 훨씬 더 잘 기억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침략 자체가 적었으니 그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다. 매일 남들과 치고 받고 한 사람보다 어쩌다 한 번 얻어맞은 사람이 더 큰 한을 품을 수 있다.

  한민족은 의 민족이라 여겨지게 된 이유는 뭘까? 외침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일상화된 착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왕조 말기에 이르면서 착취는 극에 달해 심지어 세금을 피하려고 남성이 스스로 거세를 하는 일조차 벌어졌다고 한다. 죽은 사람 어린 아이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잔혹한 착취는 우리에게 을 심어주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프랑스 혁명을 가져온 앙시앙레짐이 조선의 착취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유교적 윤리기반이 나라를 지배하는 우리와 달리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는 착취를 제어할 도덕윤리적 기반은 허약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념이란 고작해야 비현실적인 색채가 강해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미약한 기독교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교량론을 기반으로 한 수난의 민족이라는 역사인식은 우리를 왜소하게 만들려는 식민사관적 사고라 하겠다. 우리 민족이 대류과 해양으로부터의 침략에 시달려 온 무능하고 허약한 민족이라는 그래서 마음에 한을 품은 염세적 사고의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 외세지배를 숙명으로 여기게 만들려는 조작질이 아닐 수 없다.

  애초부터 지정학적 역사관은 서양인들이 만들어낸, 편견과 무지에 기초한 사이비 역사학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만의 역사에 갇혀 그것을 일방적으로 보편화하는 서양인들의 못된 버릇이 그럴듯하게 포장된 결과일 뿐이다. 지리적 환경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으나 결코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님을 한반도 교량론’(반도 교량론의 응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시대에 특정한 조건하에서 일어난 사례를 억지로 꿰어맞춰 이론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그에 비하면 피터터친이 제국의 탄생에서 소개한 이븐 할둔의 아사비야이론은 보다 더 객관적이고 정교한 역사이론이라 하겠다. 더 이상 서양중심적 사관에 농락되지 말자.

  우리 민족의 길고 긴 역사에서 수난의 역사는 매우 짧고 미미한 부분에 불과하다. 과거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광이 드높던 시절은 물론이지만 고려 전기까지만 해도 북방민족의 대군을 격파하며 나라를 스스로 지킨 자랑스러운 역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나약한 조선과 일제강점기 등을 이유로 스스로를 수난의 민족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식민사관에 사로잡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 따른 자학에 불과하다. 우리 역사를 10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1,2정도에 불과한 수난의 역사로 우리 스스로를 폄하하게 하는 역사교육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그리고 중원에 이르는 지역을 아우르는 위세를 가졌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