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을 키워야 우리의 미래가 밝아진다. 다양성이 힘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문명국 중국!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의 중국 4대 발명품은 중국 그 위대함을 상징한다. 근대 이전에 세계 삼대 문명지는 중국 인도 그리고 중동+동남유럽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은 하나의 일관된 제국인 채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중국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은 오랜 세월 유지된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대립구조이다. 중국은 ‘중원’이라는 지역과 기타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중원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친숙해진 지역으로 온도와 강수량 기름진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경 생활을 통한 높은 생산력으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타 지역에서는 농경이 적합하지 않은 토지와 춥고 건조한 날씨 등으로 주로 유목 생활이 영위하면서 풍요로운 중원으로의 진출을 호시탐탐 엿보았다. 때론 침략으로 때론 무역으로 나타나는 유목민들의 출현 때문에 만리장성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이 세워진다.
이와 같은 대립구조는 중국을 정체되지 않게 하면서 하나의 통합적인 국가로 유지되도록 하였다. 중원의 다수를 이루는 한족은 자신의 문명을 지키고자 이민족들과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그럼에도 중원은 오랫동안 이민족들의 차지가 되었다. 이것은 농경민족인 한족과 유목민족인 이민족이 공존하는 ‘황금조합’을 형성하게 된다. ‘황금조합’은 유목민의 역동성과 농경민의 안정성의 결합으로 커다란 시너효과를 가져와 중국의 문명을 크게 발전을 시켰다.
실제로 중국 역사상 강력하고 찬란한 시대를 열었던 왕조는 이러한 ‘황금조합’의 나라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는 서방 이민족 후예의 나라이고 5호16국과 이어지는 남북조시대의 북위 수나라 당나라 그리고 몽골족의 원나라 여진족의 청나라 역시 이민족과 한족의 연합제국이었다. 이에 비해 한나라 삼국시대 이를 통합한 진나라 남북조 시대에서 남조를 세운 나라들 송나라 명나라는 한족의 나라였다. 이민족지배의 시대가 훨씬 길었음을 알 수 있다.
‘황금조합’의 중요성은 한족의 나라들 보다 이민족의 나라들이 훨씬 강하고 찬란한 제국이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중국사에서 가장 허약한 나라 송나라가 가장 한족적인 나라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문화 대국이라는 점에서 송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나 문화가 국가평가의 유일한 척도는 아닐 것이다. 훌륭한 국가란 경제 국방 등에서도 뛰어나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청나라에 의해 절정의 국력을 완성하고 쇠퇴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국이 완전한 농경민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영토는 몽골의 원나라를 제외하고는 가장 컸으며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의 원형이 되었다. 중원에 대한 저항세력인 이민족들이 청나라의 지붕 아래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팍스시니카’의 성립은 중국사의 역동성의 원천인 유목민과 농경민의 대립구조의 붕괴와 유목민들의 농경민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 중국의 약화와 대조적으로 유럽은 민족간의 대립구조격화로 세계 최강의 힘을 갖게 된다. 게르만의 이동과 서로마제국의 해체 이후 유럽은 유목민인 게르만과 농경민인 라틴족의 결합에 의한 ‘황금조합’이 성립된다. 중국과 달리 유럽에는 거대 제국의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혼란과 분열 속에서 이루어진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많은 민족국가가 세워지면서 내부의 대립과 항쟁은 더욱 격렬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황금조합은 힘을 발휘하였고 그것이 유럽으로 하여금 가장 강력한 지역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우리도 한때 ‘황금조합’이 성립되어 국력을 떨치던 시대가 있었다. 고구려는 유목민(만주)과 농경민(한반도)의 ‘황금조합’으로 동북아 최강국이 되었다. 이민족이 중원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인구의 수나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유목민 역동성 때문이다. 고구려는 그런 이민족의 역동성에 더하여 농경민의 안정성을 겸비하고 있기에 한층 더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런 역동성이 미약하다. 우리에겐 농경민의 안정성만이 가득하다. 수많은 공시생의 존재는 그것을 말해준다. 고구려와 발해가 망하고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만 머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우리 민족이 남북분단으로 그나마 북으로의 통로를 빼앗긴 채 섬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서 유목민의 역동성은 앗아가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에 잠깐의 예외가 존재했다. 그것이 박정희 시대이다. 숨죽이며 살았던 수 많은 유목민들이 세상에 나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고 발전시켰다. 김우중 정주영 박정희는 그런 유목민들의 대표였다. 그들은 결코 관습과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을 통해 이 나라를 바꾸었다. 그것은 ‘황금조합’의 부활이다. 유목민들의 역동성을 기반으로 많은 농경민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목민만의 나라의 수명은 안정성의 결여에 따른 분열과 대립으로 인해 짧았다. 우리에겐 농경민이 넘쳐났으니 오랫동안 억압된 유목민들에게 기회를 주면 되었다. 박정희가 그렇게 대한민국을 깨웠고 많은 유목민들이 활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숨죽이고 있는 유목민들을 깨워야 한다. 억지로 농경민이 되고 있는 유목민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살게 해주고 또 이 사회가 소외하고 있는 유목민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박정희 시대와 지금 시대의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유목민들에 대한 시대적 환경 뿐이다. 정주영 김우중 박정희는 지금도 어디선가 숨을 죽이고 살고 있다. 그들이 역동성을 회복시켜 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웅비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시대를 도전하고 모험하는 시대로 바꿀 수 있는 초인이 기다려진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경제의 빛과 그림자 (1) 분배경제로 성장한 일본의 에도시대 (0) | 2020.12.26 |
---|---|
입국금지는 신중해야 한다. 유승준의 입국을 허하라! (1) | 2020.12.26 |
연애는 사랑을 느낄 때 하는 것! 지나친 연애는 인생에 해로우니 삼갑시다. (0) | 2020.12.24 |
여성의 교육주도는 한국경제의 저성장의 원인일까? (0) | 2020.12.24 |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고? 팩트체크 해 보자! (0) | 2020.12.24 |